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숭밤 Aug 28. 2023

좋아하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23/04/25


마라탕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점심, 동료 한 명이 프로농구 이야기를 꺼냈다. 다가오는 게임에서 1층 가운데 자리를 예매하고 싶은데, 그동안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어쩌다 농구를 좋아하게 됐냐고 물어보니 순식간에 수줍은 표정이 된 W. 살짝 붉어진 얼굴을 본 그 순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하는 마음이 숨겨지지 않는 순간들. 나는 그때의 얼굴을 좋아한다. 아이돌 멤버 이야기가 나올 때 돌연 초롱초롱해지는 눈, 산책하는 강아지의 꼬리를 보며 한없이 다정해지는 목소리, 말없이 태국식 볶음밥에 집중하는 입. 고단하고 팍팍한 시간 속에서도 그런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 제법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비건조>는 영화 평론가들이 직접 영화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유튜브 콘텐츠다. 무거운 토론보다는 영화를 두고 수다를 떠는 형식에 가까운데, 본격적으로 챙겨보게 된 건 주성철 기자 때문이었다. 영화평을 쓸 때 ‘이 영화에 대해 그래도 장점을 찾고 싶은 사람들, 미덕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쓴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 얼굴을 보았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보들레르는(…) 비평을 통해 자신은 쾌감을 지식으로 바꾸려 한다고 말한다.’ 평소 비평문을 잘 찾아 읽지 않지만, 이 문장을 보고는 마음이 들썩였다. 무언가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에서 시작된 글이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주성철 기자의 얼굴.

* 수지 린필드, 『사진과 정치폭력』, p21



마침 학교 도서관에 작년 출간된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가 있었다. 목차를 훑고는 박찬욱 감독에 대한 평론을 그 자리에서 내리읽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최근작을 가로지르며, 감독 박찬욱이 열어온 문과 그간 이룩한 결실을 사려 깊게, 그러면서도 젠체하지 않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헤어질 결심>에 대한 해석이었는데, ‘서래’를 진실의 주체로 위치시키는 결말과 그 의의를 읽으며 안개 같았던 감상이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



다른 의미로 인상 깊었던 건 나홍진 감독론이었다. 내가 그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을 텐데, 솔직히는 거칠고 무서운 장르를 선호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피해 온 감독이었다. 그러나 ‘마치 유작을 만드는 것처럼 작품에 매달리는’ 감독이라는 묘사에 호기심이 생겼고, 글을 읽는 몇 분 사이 마음이 풀어져 마지막 문단을 읽지 않고 남겨두었다. 영화부터 보고 와야지.



구독하고 있는 OTT를 살펴보니 <곡성>이 있다. 작가의 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영화가 좋아지는 기적과도 같은 경험’을 바라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 기적을 본의 아니게 내가 실천하게 됐다. 안 그래도 지난번 무비건조에서 추천한 <로스트 도터>도 구매해 뒀건만. 이번 주말에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작가의 이전글 내가 나인 것 -MBTI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