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일어나 집을 나섰다. 도로 끝으로 보이는 하늘과 산, 그리고 그것들을 물들이는 일출의 색감. 공교롭게도 밤을 사는 내게 해가 뜨는 풍경은 아주 멀고 낯선 것으로 간만에 마주하는 기분은 반갑고 쑥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해질녘의 빛과 닮았으나 사뭇 다른, 모든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에 나는 다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출근 준비중인 갈매기씨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수평선 근처에 두 개의 등대가 보였고 그 앞으로 빛이 산란하고 있었다. 구름은 적었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볕이 좋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배가 출발하고 선착장 근처의 부표 위에 갈매기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를 꼭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이윽고 그것이 기분 탓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2층에 올라가 바람을 쐬고 수평선 너머와 윤슬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항구에 앉아있던 갈매기들이 배 주위로 날아와 무어라고 말하듯 끼룩거렸다. 함께 탄 승객들은 저마다 챙겨온 과자를 꺼내들었고, 신이 난 갈매기들은 항해 속도에 맞춰 비행했다. 가끔씩 배의 속도와 비행속도가 일치할 때 하얀 새는 꼭 공중에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도하는 선녀 바위와 해금강의 계곡
거제라는 섬을 바다에서 조망했다. 시점의 변화는 인식과 생각의 변화를 이끌었다. 수평선에 맞춰 침식된 갯바위들은 모두 제각각 불규칙하게 생겼으나 일정한 높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해금강과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름 붙여진 여러 개의 바위들은 절묘했다. (특히 해금강의 계곡에 들어갔을 때 양옆으로 높이 드리워진 절벽의 풍경과 기도하고 있는 선녀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봄이 가깝다. 외도의 풍경과 매화
해금강 투어를 마치고 외도에 입항했다. 목회자 부부가 섬 전체를 정원으로 가꾼 신비한 곳이었다. 공간을 구획별로 나눠 이름을 붙여 가꾸었고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나 색채가 특이한 초목들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특히 절벽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반짝임은 그곳에 나를 오랫동안 묶어뒀다. 꼭 낯선 이국땅에 와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혀 낯선 것에서부터 오는 짜릿함은 바다 위에서 반짝였고 2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고 나는 섬에서 여행했다.
반짝반짝
뭍으로 돌아와 바지락라멘을 선택하면서 못 갔던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마제 소바를 처음으로 먹어보기 위함이었다. 자그마한 식당이었지만 점심때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다행히 자리가 많았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데 토핑(온센다마고와 차슈, 죽순)이 보였고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으리란 판단에 모두 추가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털모자 방울이 귀엽다고 생각할 즈음 요리가 나왔다.
마제 소바(토핑 풀매수)와 털모자 방울
다진 고기와 계란 노른자, 부추와 파, 김이 기본적으로 올려져 있었는데 토핑을 추가한 덕분에 아주 풍성해 보였다. 추가한 토핑들은 옆으로 제쳐두고 우선 기본 재료만을 비볐다. 첫입은 아주 건강한 맛이었다. 생파와 부추, 다진 마늘, 김 같은 재료 덕분인지 푸릇푸릇한 맛이 먼저 닿았다. 면발은 우동 사리보다 조금 더 탄력이 있어 식감이 좋았다. 처음에는 조금 슴슴한가 싶었는데, 그다음부터 그릇 아래에 깔린 소스를 듬뿍 발라 먹으니 감칠맛이 느껴졌다. 맛달걀과 함께 먹으면 고소함이 가미됐고, 죽순과 함께 먹으면 식감이, 차슈와 함께 먹으면 밸런스가 갖춰져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만남을 가지다 보니 그릇이 텅 비었다. 사장님께서 필요한 만큼 공깃밥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한 그릇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가게를 나섰다.
태어나 2가 제일 많은 날, 두 번째 거제를 여행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윤슬에 매료되어 그을린 볼과 콧잔등을 발견했지만 그마저도 여행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