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0113' [.]휘발

활짝 웃으며 썩은 이처럼 오탈자를 드러내도

by DHeath


글씨를 적으면서 휘발하는 것들이 있다. 볼펜 잉크 냄새, 부서지는 흑심, 말에 담긴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어젯밤에는 잠을 따라 질문들이 좇아왔다. 언젠간 닿긴 할까, 씀의 끝이 온점을 그릴 수 있을까, 같은 정답이 없는 의문들은 쇼윈도를 가리켰다. 진열장에는 마음대로 빚어놓은 600개의 내가 아무렇게 놓여 있었다. 잊고 있었던 나들은 쑥스럽다가, 기뻤다가, 슬펐다가, 대견하기도 했다.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서툰 과거를 차곡차곡 정리하기로 했다. 200개의 나를 먼저 숨겼다. 매일 조금씩 지난 나는 사라지겠지만 이따금씩 서랍을 열고 삐뚤빼뚤하게 쓰인, 활짝 웃으며 썩은 이처럼 오탈자를 드러내는 나를 오랫동안 품에 안아보려고 한다. 조용히 어딘가로 사라지기 전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