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
눈 내린 땅의 경계를 따라 정했다고 해서 (雪울)서울이 되었다는 설이나 과거 행정 기관이었던 부청이 있는 마을, 붓골이 한자로 옮겨 쓰이면서 필동이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지명의 유래를 알게 되면 그곳을 특별히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서울은 사는 곳이 아니라 여행하는 곳이라고 정하고 나서부터 서울행은 늘 여행 같은 기분이 들었으므로 그날도 평양냉면을 먹고 서울역까지 걸어가 볼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서 무얼 더 할지 고민하며 지도를 열자 필동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좋아한다고 했더라. 평양면옥에서 이미 배를 불렸지만, 다음에는 꼭 필동면옥을 가봐야지 같은 사소한 다짐을 하고 필동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그날의 하늘은 쾌청했고 가는 길에 보이던 남산타워가 괜히 반가웠다.
우연히 필동이 되었겠지만, 이름 덕분인지 수많은 문장들이 탄생했다는 동네에서 에스프레소 마티니라는 생소한 메뉴를 홀짝거리며 잠깐 '여행'을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변치 않는 나의 꿈, 내가 곧 누군가에게 여행이 되는 것의 확장. 누군가 내게 오는 과정이 모두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무엇이 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같은 생각과 망상이 옅은 구름처럼 이어졌다. 누군가 좋아하는 동네에 찾아가면 꼭 같이 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일처럼, 내게 오는 여행도 꼭 나와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