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hk] ‘썸’ 같은 홍콩

동양 같지만 동양이 아닌 거 같은 서양 같지만 서양이 아닌 거 같은

by 한형주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오해한 사람들에게

이 글의 제목을 읽고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이 글이 야릇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썸’이라는 멜랑꼴랑한 단어에 ‘홍콩’이라는 단어까지 보이니 이 글이 무슨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글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착각 말라. 오늘 이 글은 온전히 ‘홍콩’만을 다룰 것이다. 그럼 왜 ‘썸’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의심할 것이다. 자 이제 그 이유를 알려주겠다.

힝키 레스토랑. 여기서 홍콩인들의 ‘영어’인식을 알게 되었다.(출처 한국일보)

그거 영어 아니에요.

여행 중 우연히 홍콩 현지인과 잠깐이나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뽀 짜이판’이라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힝키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던 찰나였다. 워낙에 북적북적거리는 데다 홍콩 특유의 귀찮은 서비스 정신에 나의 소심함까지 더해져서 주문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처량한 여행객을 측은지심으로 쳐다보던 한 홍콩인이 도와줬다. 덕분에 음식도 주문하고 더불어 음료까지 주문할 수 있었다.(이게 뭔 대수인가 싶지만 당시 나에게 첫 해외 혼행이었고 게다가 성격은 지금보다 훨씬 소심해서 이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혼자 쓸쓸히 여행하는 나에게 도움을 주어서 일까. 그에게 나도 호기심이 생겼고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용기 내어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쓰는 한국인을 향해 그 홍콩인은 지그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서로 어디서 살고 있는지부터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앉아있는 힝키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까지 화목하게 대화의 장을 열었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홍콩을 여행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영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음이었다. ‘HOT’을 ‘홋’이라고 발음하지 않나 passport를 ‘패스 폴트’가 아니라 ‘패스포트’라고 발음하는 등 기존의 미국식 영어 교육을 받아온 나에게는 모든 영어가 다른 언어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왔다. 도대체 내가 아는 미국식 영어하고 이곳의 영어는 무슨 차이냐고. 그러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하하하, 그거 영어 아니에요.

내 기억이 맞다면 ‘that is not english’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홍콩은 영국식 영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영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참으로 의아하지 아니한가. 영국인도 아닌 아시아의 한가운데 있는 홍콩에서 사는 사람이 진정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게다가 그는 젓가락을 쓰는 전형적인 동양식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그런 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미묘하다. 서양식 건물이 즐비한데 그 속에선 동양의 매력이 난무하다.

동양인지 서양인지 모를 매력

곱씹어 생각해보면 그날 그와의 대화로 홍콩이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를 보여주었다고 본다. 완벽하게 영국식 영어로 대화하면서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점심으로는 딤섬을 먹으면서 후식으로는 밀크티를 마시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마치 ‘썸’의 가사처럼 말이다.

동양 같지만 동양이 아니고 서양 같지만 서양이 아닌

아마 이 문구만큼 홍콩을 잘 표현한 말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뜻이다. 세상 어디에도 두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는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상하이같이 동양의 도시에 19세기 서양식 건축물이 남아있어 동서양이 공존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람들의 가치관이라던가 문화는 완전히 동양식인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다. 동양의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여겨 건물에 대포 모양을 만들면서도 서양의 자유롭고 평등한 조직 문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홍콩인들의 이런 독특한 가치관이 수직적이고 중화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중국 정부에 대항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전형적인 급성장한 아시아의 도심 안에서 서양에서나 볼법한 트램이 지난다.

가치관뿐만이 아니다. 공간에서도 동서양의 미묘함이 느껴진다. 홍콩 도심은 1950년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흔히 동아시아권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이고 기능주의적인 모더니즘 건축물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는 트램은 유럽에서 볼법한 오래된 트램이다. 뿐만 아니라 버스들은 모두 2층 버스이다. 홍콩을 제외하면 2층 버스가 즐비한 도시는 런던일 것이다. 이처럼 비주얼에서도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또 한편으로는 서양적인 면도 볼 수 있다.

호기심이 자극한 나의 첫 혼행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홍콩은 동서양의 썸을 타는 듯한 도시이다. 중국에 있었던 영국의 식민지라는 과거를 안 순간부터 어떤 매력이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에세이에서는 어떤 계기로 이 도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행에 나섰는지를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