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느낌이 항상 나쁘지만은 않다.
낯선 환경에서 여유를 찾다.
낯선 환경을 접하는 경우는 둘 중 하나인 듯싶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에 떨어지거나 잠시 낯선 환경에 발을 딛거나. 전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어야 한다. 또 적응을 했다 해도 매사 어떤 일이 잘못되지 않나 신경도 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유란 것을 가지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주변에 적응을 하면 좋은데 못해도 그만이다. 어차피 얼마 안 있어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여유란 것을 가질 수 있다. 여행이 어쩌면 이런 여유라는 것을 가지기에 최고의 도구가 아닐까 싶다.
여유라는 것이 생기면 평소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법이다.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길거리의 작은 쓰레기 통이 보일 수도 나 자신만 생각하느라 보지 못했던 사람들 속 혹은 환경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여유를 가지고 낯선 환경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막연하게 새로운 자극이 날 기다리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낯선 침사추이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발길이 향한 곳은 침사추이였다. 숙소도 이 곳에 있기에 홍콩 메트로를 이용해서 침사추이로 빠르게 이동했어야 했다. 낯선 느낌은 좋지만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육체적 고통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다. 빨리 숙소에 무거운 캐리어를 내동 쳐 놓고 이 낯선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도착한 침사추이는 나에게 홍콩이란 도시가 어떤 낯선 느낌을 가지는지 보여줬던 것 같다. 1980년대에 그대로 마무르는 듯한 빌딩들, 과거의 화려함을 간직한 듯한 화려한 네온사인들, 마지막으로 한자와 영어가 뒤섞은 간판들 까지. 레트로틱한 모습은 2010년대의 지금과 이질적이게 느껴졌고 동. 서양이 공존하는 모습은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선 도시는 그 자체로 소중한 기억이 되어 나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낯설지만 꼭 첫 끼니로 먹고 싶은 음식
낯선 분위기에 흠뻑 취하기에 바빠서 나의 육체적 고통이 무거운 캐리어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12시를 넘어 오후 1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시간을 달리게 하는지 의문이던 찰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렇다. 점심시간이다. 아무리 여행이 좋다지만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일단은 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무 음식만 먹기에는 참 그렇다. 이왕 처음 온 도시에서 그것도 나의 첫 혼행 여행지에서 의미 없는 첫 끼니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이 도시가 사랑하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곰곰이 이 도시가 사랑을 독차지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수많은 음식이 있겠지만 홍콩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코 딤섬이다. 침사추이에 딤섬으로 유명한 식당이 널려 있었다. 마침 홍콩의 풍경을 즐기면서도 딤섬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있다 하여 찾아갔다.
딤섬에 대해 아는 것은 얼마 없었다. 간단하게 먹는 식사에서 출발했다는 것 외에는 이 음식이 어떤 미각을 선사해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미지가 나에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 호기심을 가지고 첫 끼니를 마주했다.
한 입 베어 먹어먹자 촉촉한 딤섬 피를 넘어 숨겨져 있던 담백한 소가 약간의 기름진 육즙과 함께 입 안에서 터졌다. 고기와 해산물로 뭉쳐진 소는 담백함 그 자체였다. 신기했던 것은 기름진 육즙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느끼하다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다. 적당히 살찌는 듯한 기름짐과 과하지 않은 담백함이 입을 넘어 목으로 흘러가는 맛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포만감과 담담한 미각의 오묘한 경계가 참으로 좋았다.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도파민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굶주리던 배도 빠르게 채워져 갔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이때 한 끼로 무려 388 홍콩 달러를 냈다. 한화로 약 5만 원 정도였다.
한 끼에 무려 5만 원이라니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호화로운 끼니도 이왕 낯선 여행지에 왔으니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에서는 매 끼니 돈 걱정을 하고 지인과의 식사에서도 되려 지인을 의식해 비싼 값의 한 끼도 얻어먹기란 참 힘든 일이다. 낯선 곳에선 그 어떤 제약도 없다. 돈도 마음껏 써도 되고(물론 여행 예산이 잡혀있으나 현실에 비해서 돈은 많이 쓰는 것도 사실이다.) 타인의 눈치 역시 볼 필요가 없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이 소중한 느낌은 그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느낌을 지금도 간직하며 가끔씩 힘들 때마다 이때의 느낌을 꺼내어 상상하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듯싶다.
낯섦이 소중함으로
낯선 도시에서 경험했던 첫 풍경, 첫 음식, 첫 느낌 이 모두가 시간이 2년이나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좋아서 마음속 깊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던데 아닐까 싶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는 무기력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2년 전의 낯섦을 마음속에서 꺼내면 무기력감은 잊히고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누군가에게 낯섦은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두려움이 아니라 다음을 힘차게 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아마도 2년 전 낯선 도시에서 막연하게 기대했던 자극이 바로 이 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