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가 건네는 응원의 힘
튀르키예 여행 7일 차에 접어들었다. 이 여행이 끝나면 파리에서 5개월 간의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아주 낯설고도 먼 나라인 튀르키예에서 그 시작을 맞이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이방인으로서 내가 얼마나 유약하고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과정이 마냥 즐겁진 않았지만 분명 필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에겐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얻어낸 하나의 믿음이 있다. 나도 몰랐지만 실로 나에게 필요했던 사람이 적절한 때에 꼭 나타난다는 믿음. 괴레메에서도 두 사람을 만났다. 이제 막 긴 해외 생활을 마친 혹은 마칠 예정인 H와 Y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간호사, H
‘안녕하세요’,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해서 오히려 긴장감을 안기는 말이 해외에서는 모든 긴장을 내려놓게 하는 한마디가 된다. 그녀가 건넨 ‘안녕하세요’가 주던 안도감을 잊지 못한다. H를 처음 만난 곳은 그린투어의 집결 장소였던 괴레메 버스 터미널이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한 젊은 여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이던 그녀는 휴가를 받아서 홀로 튀르키예에 왔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동행이 시작됐다.
H의 휴가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투어가 막바지에 이르고 나서야 처음으로 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나란히 으흘라라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너는 왜 이곳에 혼자 왔어?” 서로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1년 전, 그녀는 수년간 몸 담았던 첫 병원을 떠났고 고민 끝에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렇게 사우디의 한 병원에서 H의 두 번째 간호사 생활이 시작됐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문장을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중동 한복판에서의 병원 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랍인 의료진들과 일하면서 겪는 고충에 대해 토로했다. 중동의 병원 시스템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무책임한 지,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고립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갉아먹는지 알 수 있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갑갑해지는 경험담이었다. 그녀가 그 낯선 땅에서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을 감히 가늠해 볼 수도 없었다.
바지를 걷고 차가운 계곡 물에 발을 담그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다시 가고 싶진 않았어?”, 그녀는 자신의 앞에 떠다니는 오리를 향해 물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여기서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나면, 앞으로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냥 1년만, 딱 1년만 잘 보내보자 생각했어”
+)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술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술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효모를 사다가 직접 술을 만들어 먹는다는 언니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내가 답할 차례였다. 교환학생으로 파리에서 지낼 예정이고, 해외생활을 앞두고 혼자 여행을 해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는 그런 얘기. 그녀는 나만큼이나 내 파리 생활을 기대하고 걱정했다. 이어서 자신이 내 나이 즈음에 했던 유럽 여행에 대해 들려주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로 마음이 무거웠던 때라고 그 시절을 소개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곳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꼽았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던 날에 훌쩍 떠나 자신만의 속도로 길을 걸어갔던 경험이 살아가면서 간간히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30대에 접어든 그녀는 이제 욕심을 버리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했다.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낸 일련의 경험과 감상은 마침 그때의 나에게 너무도 필요한 것이었다.
해외생활에 관해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던 H는 분명 그때는 무섭고 버거웠던 것들이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나를 무겁게 하는 걱정들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말해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 믿음 덕분에 사우디에서의 생활을 버틸 수 있었나 보다. ‘그래, 그냥 흘러가보자’, 놀랍게도 튀르키예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내가 새겼던 깨달음이 딱 이 문장이었으므로 그녀의 조언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온 대학생, Y
생애 처음으로 인터넷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다. 그렇게 포르투갈에서 1년 간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른 Y를 만났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튀르키예에 들러 2주간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수년 전에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서 살았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이베리아 반도로 떠나왔다고 했다. 그가 리스본에서 구한 직업은 조금 특이했는데 바로 포르투갈로 레이싱 유학을 떠나온 한국인 형제의 시터였다. 레이싱에는 문외한인 나는 포르투갈이 그 방면에서 유명한 국가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레이싱 선수가 되기 위해 드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 그 직업을 꿈꾸는 이들의 삶도 모두 처음이어서 흥미로웠다. 내가 잘 몰랐던 영역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마주할 때면 늘 희열을 느낀다.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 알아갈 때면 좀 더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3.6.9 법칙’이 있다. 타지에서 일 한지 3개월, 6개월, 9개월에 접어들 때마다 한계를 느끼고 귀국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12개월을 꽉꽉 채우고 떠밀리다시피 해서 그곳을 떠났다. 자신이 머물던 동네와 리스본에 대해 소개할 때면 그의 눈은 놀라울 만큼 반짝거렸다. 낯선 도시를 사랑하게 된 그를 보면서 나는 과연 파리를 얼마나 사랑하게 될까 궁금해했다.
카파도키아를 떠나던 날
나는 H를 Y에게, Y에게 H를 소개해 주었고 그들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카파도키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우리는 각자 일정을 마치고 괴레메 마을에서 다시 모였다. 그들은 가장 먼저 이곳을 떠나는 나를 배웅해주고 싶다며 함께 셔틀버스를 기다려 주었다. 해가 질 무렵까지 흙먼지를 잔뜩 마시며 거닐었다.
타지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그들은 이제 막 해외생활을 시작하는 나를 걱정과 응원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부럽다, 잘할 수 있을 거다, 기대된다 등 다채로운 말들로 나를 북돋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1년 간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얻은 소소한 감상과 교훈을 공유해 줬다. 물건을 아껴 쓰는 방법, 한인 마트의 재미있는 점 등등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말을 이어갔다. 경계해야 할 것과 조심해야 하는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감상과 솔직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들 덕분에 앞으로의 해외생활이 더 기대됐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차에 타려는 데 H가 서둘러 다가오더니 두 팔을 벌리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갑작스럽지만 따뜻했던 그녀의 포옹에서 묵직한 응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던 둘의 모습을 꼼꼼히 눈에 담았다. 나를 태운 버스는 그렇게 괴레메 마을을 떠났다. 눈앞에 펼쳐진 너른 대지에 방금 전 그들과 보낸 따뜻한 순간이 더해져 몽롱할 정도로 행복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정말이지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무엇이 닥쳐오든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