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역사

by Actor

나는 정말로 착하고 순수한 부모님 아래 태어났다. 누구보다 사랑을 주셨고 헌신적이었으며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항상 왕자님으로 불렸고 귀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입에 닳도록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본인의 삶의 온기를 모두 옮겨주시려는 듯, 매 순간 순간을 우리를 생각하며 사랑해주셨다.


내 유년 시절의 이야기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 그 한 단어로 표현되어도 손색이 없었다. 받았던 사랑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타인을 사랑함에 부자연스러움이 없었고, 착하고 순수한 내면의 부모 아래 자라며 조금은 날카롭고 나쁜 친구들에게선 자연스레 멀어지고 피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 선함이 느껴지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 동물을 좋아했고 부모의 행복한 모습이 너무 좋아 공부를 했으며 친구와의 시간이 행복했고 좋았다. 그 것이 내 전부였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조금은 바뀌었을까, 공부보다 친구와의 시간이 먼저고 착하지만 공부는 안하고 조용히 있는 그냥 그런 아이가 되었다. 친구의 영향이 많았다. 가장 친한 착한 친구들은,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다. 그냥 놀기만 좋아하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내 1순위는 사람이었기에, 그 속에서 행복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3년을 그냥 놀았다. 유쾌하게도 아니고, 온라인 세상을 즐겼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중학교 때 무시를 당했었나보다. 착하기만 했던 온실 속 화초였던 탓일까, 만만하게 보던 아이들이 많았고 그에 분노했나보다.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그 대학의 의미 조차 몰랐지만 독기 하나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3년간 몰두했다. 공부를 뒤로한 세월이 길었고 사설 인강이니 뭐니 그런게 있는지 조차 몰랐으며 제대로 된 가이드를 해줄 누군가 조차 없어 무식하게 글만 읽었다. 집중력도 바닥이어서 결과는 처참했고, 3년간 나는 단 한번의 하락세 없이 무지성 노력만으로 성적을 올렸다.


입시를 치뤘다. 수시 전형으로 들어간 대학, 그런데 그 시기에 내게 큰 영감을 줬던 영상이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성공을 너무 하고싶었다. 부모님, 친구들, 내 주위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그냥 더 높고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런 시기에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라는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보게되었다. 이건희라는 상징은 성공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성공에 미쳐있던 나는 그 말에 따라 대학을 고르는 가장 높은 기준으로 '집에서 독립 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대학'을 골랐다. 어딜 가든 어차피 세상은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니, 당시 죽을 때 까지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가치관이었던 나는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집 앞에 있는 더 좋은 대학엔 도전조차 하지 않고 3시간 가량 거리의 대학에 붙어 등록금을 내게 된다.


군대를 갔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건물주 아들도 있었고 대부분 스카이중경외시, 내가 싫어하던 학벌지상주의의 흐름에 위에 있던 이들이 주류를 이루던 공간이었다. 또한 내가 중심으로 생각해왔던 양심, 옮음, 신념, 정의 등의 단어는 가벼이 묵살되는 이성과 상식, 계산적이며 때에 따라 나은 것을 위해 가치판단은 뒤바뀌는 그러한 사회였다. 그 곳에서 수많은 가치관의 충돌을 겪으며 고통을 겪었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당연했던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철학, 그 것에 강박적으로 매몰되기 시작했다. 유일한 탈출구였고, 성공에 대한 갈망의 길이었다.

그 끝에서 길을 보았다. 난생 처음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아로서의 선택이었다. 휴학을 결정했고 워드프레스라는 플랫폼에 1년간 미쳐보기로 한다. 월 자동수익화를 이뤄내고 나 홀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유와 함께,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주변의 이야기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자아실현의 자유를 갈망했다. 그 것이 삶을 시작하는 진짜 나로서의 첫 여정일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 정말 행복했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났다. 이제 시작! 하며 야심차게 달려가려던 그 때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길을 잃은 청년들, 번아웃으로 괴롭고 삶의 의미를 못 찾으며 성공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무턱대고 사회가 정의한 길을 따라가기에 바빠 자아를 잃고 고통 속 공허를 겪는 그러한 이들에게 진정한 자아실현, 진짜 나를 발견하고 온전히 내 삶을 내가 운행하며 내가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겠다는 그러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고 진심으로 너무도 좋았다. 자아가 실현되고 사회의 상식과 길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의 길을 만들어 나아가는 그 삶의 여정이, 너무도 설레고 행복했으며 황홀했다. 그런데 이상하네, 한 달 정도였을까, 자아라는 것은 온전히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선택하고 자유로이 만들어가는 그 여정일텐데 , 철학 위에 신학이라는 맞으면서도 부자연스러운 끼임이 발생했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철학하고 사고해도 결국 우리는 우리를 알 수 없다, 우리를 알고 있는 것은 우리를 만든 신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신은 우리를 떠날 때 성경을 통해 우리와 만날 날을 기록하였으며 우리에 대한 설명을 그 곳에 기록해두었다. 그러한 논리적 흐름과 깨달음은 사실 의심되고 그만둬야겠단 생각과 함께 흥미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맞는 말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철학하여도 결국 신이 있다라고 한다면 인간을 만든 신이 가장 우위에 있는 학문이다. 신이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왜 만들었는지, 인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면, 뜻을 알 수 있다면 그 것은 이미 인생의 미스터리를 온전히 풀고 난 후가 될 터였다. 가장 우위에 있는 학문을 가지며 세상에서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 될 터였다.


그렇게 성경을 배웠다. 8개월 가량 남짓, 중간에 이 곳이 신천지라는 것을 알고 나오려 했음에도 내게 너무도 큰 영감과 깨달음을 줬던 스승이라 생각했던 그 누군가 때문에 내 마음은 꺾이고, 다시 한번 나는 타인에 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의도는 선했다. 그 정도도 구분못할 안목은 아니다. 그 사람들은 진심이었고, 진심으로 내가 행복해지길 바랬다. 가르치는 성경의 내용들도 논리적이었으며 그 어느 기독교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수준 높은 이야기들이었다. 모순이 없었고 모든 근거는 성경의 구절이었으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했고 그 안에 있던 강의자들은 실제로 기존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그 것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기존 교회들보다 훨씬 더 큰 깨달음과 행복을 주는 곳이었기에.

그러나 이단은 90프로는 맞고 10프로가 틀린데 사람들은 90프로가 맞으니 10프로 정도는 그냥 믿어버리게 되는 세뇌와 맹신의 영역으로 드러서게 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결국 항상 비판적 사고를 중요시 해오던 나는 그 10프로를 외면 할 수 없었고 결국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 것은 이미 내가 1년을 경제적 자유를 위해 온전히 쏟아붓고자 다짐하고 시작한지 9개월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나는 그 곳을 나오게 된다. 친해졌던 사람들, 정을 줬던 사람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 마음이 누구보다 길을 찾길 바라며 행복을 바랬을 뿐인 사람들, 그 모든 착한 이들을 뒤로하고 태초의 시작이었던 썩은 이단의 뿌리를 진심으로 증오하며 분노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등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을 빼내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그 곳에선 외부의 현혹되는 목소리들을 모두 선악과로 지칭한다. 결국 좋든 싫든, 내가 말하는 진실은 그들에겐 악이고, 태초에 빼낼 수 없을 뿐더러 본질적으로 나는 그들에게 악마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그냥 아프지 않길 바랬다. 그러면서 결국 끝내 무너질 이 종교의 최후에 그들의 자아가 무너질 것이란게 너무도 눈에 선해서 한동안 너무 괴롭고 눈물이 나서 미쳐버릴뻔 했다. 나 조차도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에 접했던 이 곳에서의 깨달음과 지혜들을 모두 버려내는 과정에서 자아가 완전히 무너졌다. 처음 만났던 스승이라는 사람에 대한 분노와 그 사람에게 들은 모든 내용들에 대한 파괴, 그 중심으로 이미 자리잡힌 가치관과 생각들이 무너지며, 나라는 근간이 무너지는 경험. 죽음 앞에 서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무뎌지는 그러한 공허의 시간을 보냈다.

9개월, 그 정도의 시간동안이었음에도 이렇게까지 무너지는데 10년 20년 이상을 속해있던 그들의 무너짐은 얼마나 거칠까. 얼마나 거세고 박살이 날까. 아니 오히려 현실을 외면할거다. 그 무너짐의 정도는 단순한 실패 정도가 아닌 인생 자체를 왜곡해야하는 자아의 괴사다. 최소한 그 부분에 대해 합리화를 하고 귀를 막아버리지 않는 이상, 그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릴거다.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자아가 생성되어질 20대 초반의 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 곳에 남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현실과 이 곳의 균형을 이루며 무너졌을 때 그들 곁에서 기둥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도 명백하게도 그 리스크와 투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부모를 속여야 했고 만나는 이들에게도 속여야 했으며 양심을 해쳐야 했다. 결정적으로 나오기로 한 것도 그 양심이었다. 솔직히 그냥 거기 있었던 편이 더 나았을거다. 자아가 무너질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거긴 훌륭한 사람이 많았다. 배울 점도 많았고 오히려 더 서로를 끈끈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도움을 서스럼 없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무너짐만 가지고 홀로 나오는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저 당시 당연하게도 계획했던 경제적자유의 길은 무너졌다. 우선순위가 이미 뒤바뀌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거다. 돈을 철저하게 소중히 여기고 모아나가며 모이는 계좌를 보고 행복을 느끼며 장기투자하라는 존리, 워런 버핏의 철학을 너무도 중심 철학으로 두었던 복리의 내가 한 순간에 몇 십 만원을 벌어버리는 리딩방에 혹해 지난 시간 동안 모아온 군적금을 포함한 1300만원을 24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모두 날려버렸던 것이.


워드프레스로 차근차근 모아가려했던 자유함에 대한 모든 계획이 박살나고 리딩방을 통해 경제적 상식과 철학 개념 마저도 박살이 나버렸으며, 군생활을 통해 깨닫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매일 하자했던 꾸준한 독서와 운동마저도 신천지에서의 자아의 무너짐을 통해 내버려버린지 오래였으며 자연스레 신체적인 건강도 하락세를 걷고 책을 통한 비판적 사고, 철학, 지식, 지혜, 깨달음 등도 무감각해졌으며 관계마저도 기존에 있던 이들과 조차도 연락하지 않게 되어 관계적 건강도 박살이 나고 그냥 중요시 생각해왔던 모든 기둥들이 단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박살나 무너져내렸다. 다 무너져 내려도 신념과 정신만 온전하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근간이 되는 자아와 신념 가치관 정신적 건강 그 모든게 일제이 정말 죽지 않는게 기적인 위태로운 상태였으니 산산조각을 넘어 아예 가루가 되어버린 상태였으니.. 내게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도 무엇도 없었고 처음으로 내가 죽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했고 부모라는 존재 또한 내 내면에서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무감각했고 현실감은 없었으며 영생이라는 허상에 넘어갔는지 그냥 나는 걸레짝,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자책했고 비난했으며 어떠한 동기도 없이 연명해나갔다.

그래도 그와중에 대견하게도 알바를 했더라. 야간 편의점을 하면서 날렸던 돈이라도 복구하자는 마음, 복학은 해야하니까 노트북 살 돈은 벌어야지 하는 그런 시체처럼 움직였던 그 순간들로 삶은 연명되었고, 1300만원을 날리고 미친듯이 공부했던 파생상품, 트레이딩, 주식에 대한 근간과 지식들이 쌓여 인연이 닿아 더 공부를 해나가며 트레이더의 길을 계획하기도 했었다. 그 것은 사기도 뭣도 아니었고 실제로 행했어도 됐을 길이지만, 트레이딩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 상태와 어느정도 갖춰져야 할 자본적 여유 등 완전히 무너져내린 상태였기에 미래를 기약하며 그만두고 알바를 끝으로 복학을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또 터진다. 입시 당시에 나는 학벌지상주의를 비판했고 학교보단 실력이고 증명이며 그 것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노력과 성장인 것이며 인성과 양심이 제일 중요하다는게 내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만남들 탓인지 나도 학벌지상주의의 일원이 뒤늦게 되어있었다. 또 여러 책을 통해 얻은 세상의 현실도 있기에 그 복학은 내게 가시밭 길이었다. 온전한 나였다면 아마 가지 않았을거다. 가치관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타인의 길을 걷게 된다. 바로 다시금 나오는 부모의 존재였다. 대학 졸업까진 지원해주고 졸업하고 취업하는걸 봐야 마음이 안심되는 것이 부모로서의 마음이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했었고, 그러나 이젠 외면할 수 없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1년 휴학할 당시 무슨일이있어도 내년에 복학한다라고 스스로와도 약속 했었기에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것을 24시간 코 앞에 두고 간신히 숨만 쉬고 간신히 눈만 뜨며 조종 당하는 인형같은 상태로 존재했던 나는, 산산조각난 건강 상태와 괴사 되어 희미해진 자아와 함께 복학이라는 현실을 걷는다. 이미 현실적으로도 더 크게 되기 위한 방향성도 아니었단 것도 알았고 , 나아가 애초에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동기와 의미 희망 또한 완전히 공중분해 되어버린 상태였음에도 나는 그렇게 그냥 또 다시 태엽인형처럼 굴러갔다. 그리고 그 현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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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후회들이 과거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과거에 머물게 하며 답답하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후회의 이유는 "정말 내 마음이 바랬던 선택" 이 아닌 다른 근거와 이유 목소리 상식 등에 의거한 나름 나아보이는 '세상의 선택' 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던가.


후회는 죄가 아니라 '길을 알아채는 감각' 이라고.


후회로 가득 한 과거를 부정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나의 언어'로 다시 쓰기 위한 앞으로의 걸음들이 결국 지난 발자국들에 의미를 부여 할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이 곳에 나의 언어를 남길 생각이다. 지난 발자국을 만들었던 과거의 스스로를 자책하고 모든 악의 근원인 것 처럼 매몰던 나에게 "걸어줘서 고맙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그러한 언어를 앞으로 걸어감을 멈추지 않으며 다시금 써내려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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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육체, 영혼, 경제, 관계, 사회적인 모든 측면에서 나는 단 1년만에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처절할 정도로 가루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이미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될 근거들을 나열하기에 충분했고, 작은 자극 하나만 있었다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에 망설임이 없었을 정도로 나를 죽음의 문턱 앞에 문이 열린 상태로 직면하게 만들었다.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 나는 정말 그 곳에서의 감각이 생생하다.


사실 지금도 온전치 않다. 그러나 조금은 알겠는 것은 그 정도로 내 중심이었던 본질이 모두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살아 견뎌냈던 이 경험은, 만약 내가 이 시간들을 견뎌내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 처럼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게 된다면 그 때의 나는 절대로 그냥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나는 나를 찾으려 했으며 작은 실조차 잡으려 했고 무너졌으며 그 와중에도 나는 매순간 양심이라는 기준을 벗어나기 직전 그 모든 피해와 고통을 온전히 감수하고 정면으로 맞이하는 선택을 하고 그 양심을 지켜냈다. 매 순간 한점 부끄럼 없이 나는 나의 양심에게 씻지 못할 선택을 하지 않아냈다.

앞으로의 삶을 다시금 나의 삶으로 되찾아오며 회복하고, 여러 측면의 건강들을 다시금 나답게 되찾아오는 회복의 시간들은 더디지만 천천히 오다가, 그 것들이 아물어 더 깨끗한 피부가 되었을 무렵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닐테다.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작은 꿈, 누군가를 모두 포용 할 수 있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그 마음이, 어쩌면 뿌리가 완전히 뽑혀나갈뻔한 경험을 통해 그 꿈을 이뤄주고자 강한 시련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0살이 되던 해 삶에서 겪어야 할 시련이 있다면 20대 초반의 나이에 모두 다 달라고, 반드시 이겨내보겠노라 진심어리게 기도했던 나의 기도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뤄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다시금 온전히 마주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천천히 다시금 회복하며 진짜 내 자아의 회복과 함께 진정한 내 꿈과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 때, 그리고 비로서 나아가기 시작할 때, 그 과정 속에서의 나는 그 누구보다 깊고 단단한 뿌리를, 동시에 타인을 보듬을 수 있는 넓은 가지와 잎사귀들과 바람들에 쉽게 흔들려 줄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수 밖에 없게 된 것 같다.


"나만의 언어로 다시금 써내려 가 그 언어들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닿기를.

그래서 그들의 앞날엔 뿌리가 뽑힐만한 경험 없이 처음부터 뿌리 깊고 유연한 나무로 자라날 미래만 기다리고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하나님, 이제 모든 시련을 달라했던 기도를 마치오니, 다쳤던 상처들을 조금씩 회복되게 하시고 그 아묾이 온전케 하시며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제 자아를 허락하여 주시옵고 깊게 내려진 뿌리와 넓게 펼쳐진 가지를 허락하시며 바람에 쉽게 흔들려 줄 수 있는 유연한 기둥으로 삶을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군가가 쉬어가는 작은 쉼터가 되게 하여주시고 세상의 풍파를 막아내기에 거뜬한 거목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작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더 큰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평생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들을 제 곁에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들과의 동행이 지나가는 길마다 축복을 일으키게 하시고 세상의 물듦이 아닌 빛이 되어 세상에 이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과 할머니, 그 모두에게 진정한 치유와 행복과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들의 앞날에 축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 모든 인도와 길이 주님의 뜻 아래에 거룩하게 이루어지기를, 작은 이의 마음으로 거룩하게 이름 올리어 기도 드리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 지나왔던 그 모든 찰나의 인연들에 대해서도 , 진심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 안아주세요. 그들의 삶을 져버리지 말아주세요. 목자를 잃은 양들을 외면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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