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처음 '하제'를 알게 된 건, 우연히 서점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만화책 때문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종이 위, 한 작가가 그려낸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그 만화는 모든 이에게 잊혀져 힘을 잃어가는 한 단어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흐릿해지는 소녀. 그녀의 이름이 바로, 하제였다.
이야기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단어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내 완결되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는 텅 빈 여백을 마주했다. '계속...'이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한 작가의 이야기는 아이에게 큰 울림을 주기 너무 충분했다. 어린 나는 그 만화를 읽고 그 세계관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그 이야기가 끊어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상상 속에서 그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그날 이후 매일 밤, 이불 속에서 낡은 플래시를 켜고 그 만화의 세계를 떠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 소녀를 만나고, 함께 폐허가 된 도시를 여행하며, 사라진 빛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나에게 '하제'는 단순한 만화 속 이름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하제'를 알아가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하제'가 '내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 아이에게 '하제'의 진정한 의미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제'라는 이름을 품고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세상은,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곳이었다. 모두가 '오늘'만을 살아내려 발버둥 쳤고, '내일'은 마치 사어처럼 힘을 잃어갔다. 나 역시 그렇게 되었다. 끝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나의 내일은 희미해졌고, 어린 시절의 '하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러다 문득, 멈춰버린 내 삶의 한가운데, 다시금 '하제'가 나타났다.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죽은 그녀가 돌아온 건, 한 아이의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일을 잃어버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잃어버렸던, 나만의 '하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