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밖으로 나와라, 진짜 데이터는 거기에 없다.

챗GPT가 아무리 똑똑해도, 1,400억을 만들 수 없는 이유

by 브랜드 디렉터 한



챗GPT가 카피를 쓰고, AI가 상세페이지 이미지를 3초 만에 뽑아내는 세상이다.


많은 마케터들이 두려워한다.

"나의 직감은 AI보다 부정확하지 않을까?"

실제로 데이터 분석 속도와 효율성 면에서 인간은 AI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10년간 K-뷰티의 최전선에서, 바닥부터 1,400억 매출의 정점까지 경험하며 깨달은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Zero to One)은 결코 모니터 속 엑셀 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데이터에 열광할 때, 나는 오히려 '사람'을 파고들었다.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화려한 마케팅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직관'에 대한 이야기다.







1. 야생에서 배운 감각, 책상에서 배운 이론


나에게 '직관'의 씨앗은 아주 작은, 하지만 강렬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나는 남들이 다 하는 스펙 쌓기 대신 무모한 도전을 했다.

시장에는 없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빈틈, 그 아이템을 직접 발굴해 밤새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팔아본 것이다.

번듯한 공장도, 마케팅 예산도 없었다.


오직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 거야"라는 순수한 하나로 부딪혔다.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몸은 고되었지만, 고객이 내 물건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시장의 반응'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핸드메이드 '귀도리'는 당시 시장에 없던 아이템이었다.



훗날, 지금은 거대 유니콘 기업이 된 APR의 김병훈 대표님이 내 이력을 보시고 건네신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경험이 진짜예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직접 만들어본 그 야생의 감각,
그게 디렉터님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지금은 국내 뷰티 시가 총액 1위 기업이 된 김병훈 대표




하지만 그 '야생의 감각'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직관'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험의 도서관을 쌓기 시작했다.






2.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 나의 '경험 도서관'


흔히 '직관'을 타고난 감각이나 천재들의 영감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직관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들이 뇌 속에 차곡차곡 쌓여 만든 '경험의 도서관'이다.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마케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경영학보다는 인문학과 예술이 좋아 복수 전공을 했고, 낯선 땅에서 교환학생으로 살며 이방인의 외로움을 겪었다. 화장품 회사가 아닌 전혀 다른 산업군에서 일하며 쓴맛을 보기도 했고, 아모레퍼시픽 대외활동을 하며 뷰티의 겉면을 핥아보기도 했다.


당시엔 이 흩어진 경험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실무에 들어와 BX(브랜드경험), 마케팅 운영, IMC, 퍼포먼스 마케팅, PM(상품기획) 등 5개의 팀을 거치며 깨달았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었다.


문학책에서 읽은 인간의 고뇌가 상세페이지의 카피 한 줄이 되었고, 타지에서 느꼈던 결핍의 감정이 고객의 니즈를 이해하는 공감력이 되었다. 직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당신이 울고 웃으며 겪어낸 그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이 융합되어 나오는 통찰이다.



지나고 보니 자산이 된 나의 경험들






3. 클릭률(CTR)의 노예가 되지 마라


이렇게 쌓아 올린 직관은 실무에서 어떻게 발현될까? 바로 '데이터에 매몰되지 않는 눈'을 갖게 해 준다.

나 역시 초기에는 숫자의 노예였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광고 관리자 화면부터 켰다.

"어제 클릭률(CTR)이 왜 떨어졌지?"

"전환율(CVR) 0.1% 올리려면 배너를 어떻게 바꿔야 하지?"

하루하루 그래프 등락에 일희일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즉각적인 수치 개선은 '현상 유지'를 시켜줄 뿐, 브랜드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진 못한다는 것을.


만약 내가 당장의 ROAS(광고 수익률)만 봤다면, 1,400억 신화의 주역인 '그린토마토 모공앰플'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의 단기 데이터는 "아직 모공 시장은 작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적 직관으로 더 거시적인 관점을 봤다. 3년에 걸쳐 서서히, 하지만 거대하게 밀려오는 '기능성 니즈의 빅 웨이브(Big Wave)'를 읽어낸 것이다.

하루의 클릭률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3년간의 검색량 추이가 보여주는 시대의 흐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리더의 역할은 오늘 당장의 클릭 한 번에 목매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서 오는 파도를 먼저 보고 배를 띄우는 것이다.









4. 나는 여전히, 그리고 기꺼이 '초보자'가 된다


AI 시대, 마케터의 생존 무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지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배운다.

단순히 책상에 앉아 심리학과 뇌과학 책을 파고드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익숙한 성공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것,

실패할지도 모르는 가설을 기어이 실행해 보는 것.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학습이자, 나의 직관을 더 깊고 날카롭게 벼리는 작업이다.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일의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마치며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내 경험이 너무 두서없나?", "나는 전문성이 부족한가?"라고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핸드메이드 제품을 팔며 흘린 땀방울, 성과가 안 나와 좌절했던 밤, 그리고 낯선 곳으로 떠났던 그 모든 시간이 당신만의 고유한 '인문학적 데이터베이스'가 되고 있다.


데이터 밖으로 나와라.

모니터 뒤에 숨지 말고 세상과 부딪쳐라.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서사(Narrative)'가, 결국 이 차가운 기술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Editor's Note) <1,400억 마케팅 설계도> 다음 화에서는 "상세페이지 이탈률을 0%로 만드는 뇌과학적 장치"에 대해 다룹니다. 인간의 본능과 심리를 꿰뚫어, 3초 만에 고객의 뇌를 사로잡는 구체적인 설계를 공개합니다.



글. 브랜드 디렉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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