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영을 만든 노희영 대표가 꼬집은 K-뷰티의 현실

성분과 가성비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서사'의 시대다

by 브랜드 디렉터 한



작년 12월, 카카오비즈니스 어워즈에 초대받아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전설적인 브랜드 기획자이자 올리브영의 창시자인 노희영 고문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심장 뛰는 것을 누르며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고문님께서 올리브영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주신 덕분에,

수많은 K-뷰티 인디 브랜드들이 대기업과 동일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현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운을 뗀 후, 나는 그동안 치열한 뷰티 씬의 최전선에서 구르며 오랫동안 품어왔던 가장 무겁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단기적인 퍼포먼스나 유행에 의존하지 않고, 이 피 튀기는 K-뷰티 시장에서 '지속 가능하게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돌아온 대답은 서늘할 정도로 정확하고 매서웠다.






1. "지금의 K-뷰티는 브랜딩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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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님은 마이크를 쥐고, 현재의 K-뷰티 시장이 기능과 단기적인 숫자에만 매몰된 '과열 상태'라며 뼈아픈 일침을 가하셨다. 진정한 의미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고뇌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한 문장이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브랜드는 끊임없이 자신만의 '서사(Narrative)'를 만들고, 끈끈한 '팬덤'을 구축하는 곳입니다."



그 짧은 문답은 최근 뷰티 시장을 관통하는 가장 정확한 통찰이었다. 수백억의 매출을 내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을 늘 헛헛하게 만들었던 그 갈증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물건을 '팔고' 있었을 뿐, 고객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브랜드를 '남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2. 훌륭한 성분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닌 '기본값(Default)'


지금의 뷰티 시장을 보라. PDRN, 스피큘, 펩타이드… 듣기만 해도 화려한 고기능성 성분들과 압도적인 가성비는 이제 K-뷰티 씬에서 놀라운 무기가 아니다. 그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성분표의 숫자, 화려한 비포 애프터 사진, 일시적인 ROAS(광고수익률)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기능적 우위만 강조하는 제품은 결국 자본력을 앞세운 끝없는 가격 경쟁과, 훅훅 바뀌는 트렌드의 늪에 빠져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기능'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내 일상의 결핍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고, 심리적인 위안을 주며, 그 브랜드가 세상에 던지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때 기꺼이 팬이 된다. 즉, 제품의 기능을 소비자의 '경험'으로 번역해 내는 입체적인 서사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잊혀질 수밖에 없다.





3. 거대한 백지 위에서, 다시 '서사'를 벼리다


'트렌디한 제품을 하나 더 만들어서 매출을 낼 것인가?'

아니, '타겟 고객의 일상에 어떤 압도적인 경험적 서사를 남길 것인가?'


AI와 데이터가 타겟을 분석하고 매력적인 마케팅 카피를 순식간에 쏟아내는 시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입체적인 서사와 심리적 확신은 오직 '사람'만이 기획할 수 있다.

화려한 껍데기와 단기 매출의 유혹을 넘어, 흔들리지 않는 팬덤을 가진 '진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항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고객에게 어떤 서사를 쓰고 있는가?






(Editor's Note) <디렉터의 오답노트> 다음 화에서는 야생의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수많은 리더들과 커피챗을 하며 뼈저리게 느꼈던, "명함이 사라진 곳에서 발견한 진짜 사업가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 브랜드 기획자 한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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