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의 진짜 동력
최근 1,400억이라는 가슴 벅찬 매출 성과를 뒤로하고, 오너 정신으로 사랑했던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사랑했다'는 말을 뱉을 때 눈물이 핑 돌 만큼 아린 결정이었다.
야생으로 나온 나에게 감사하게도 수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다.
위기를 맞이해 혁신이 필요한 대기업들,
상장을 앞둔 대형 브랜드사들,
트렌드를 리딩하는 힙한 뷰티 기업들까지.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면 서른 중반 이후의 내 삶은 아마 완벽하게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을 것이다. 남들이 선망하는 명함과 높은 연봉, 이미 잘 갖춰진 시스템 속에서 적당히 밥숟갈 하나 얹으며 우아하게 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뷰티 시스템이 전무한, 뷰티의 배경을 모르는 대형 플랫폼 기업을 다음 행선지로 택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미 잘하고 있는 브랜드에 가서 성과를 조금 더 내는 건 내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무것도 없는 제로(0)의 상태에서, 내 손으로 직접 시스템을 만들고 원(1)으로 일궈내는 그 찌릿한 과정. 나는 다시 한번 나만의 역사를 쓸 수 있는 '가장 짜릿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이다.
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향해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소위 말해 '공부만 파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꽂히면 무조건 승부를 봐야 하는 기질이 있었다.
미디어 과도기 시절, 좋아하는 아이돌의 짤(콘텐츠)을 만드느라 방학 내내 학교도 가지 않고 몰두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타인이 보고 열광하는 그 짜릿함. 그것이 내 안의 무언가를 깨웠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다들 취업 스펙을 쌓고 토익 책을 펼칠 때, 나는 숨 막히는 과방 생활이 싫어 중앙동아리 밴드부에 들어갔다. 방송작가가 되겠다며 진학한 문예창작과에서는 텍스트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껴 영상학을 복수전공으로 밀어붙였다. 공강 날이 아까워 아모레퍼시픽, 국제포럼, 공모전 같은 대외활동에 뛰어들었고, 공모전에 떨어지면 친구들을 다시 모아 기어이 재도전했다. (나의 이 지독한 집념을 본 MD님이 불과 스물두 살이던 나를 회사 인턴으로 꽂아 넣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부모님은 내게 돈을 벌어오라 강요하신 적이 없지만, 나는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취미 활동을 하기 위해 DSLR을 사고, 기타를 치고, 기어코 프랑스 파리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DSLR로는 다큐멘터리 졸업 작품을 찍고, 기타로는 아모레퍼시픽 콘텐츠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낯선 땅, 프랑스 파리 그곳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내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독자적인 나의 콘텐츠를 세상에 던지기 시작했다.
취업 시즌, 남들 다 쓰는 대기업 자소서를 쓰는 대신 나는 시장에 없던 '핸드메이드 귀마개'를 만들어 팔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번듯한 직장인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 손으로 직접 벌어들였다. 그때 나는 뼛속 깊이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연결해 내는 일,
타겟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차리고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는 일.
이것이 평생 나의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 확신에 닿기까지 방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나는, 가족들의 기대에 맞춰 2년이라는 시간을 마케팅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보내기도 했다.
돌고 돌아 우연히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억눌려 있던 마케팅 재능을 다시 폭발시켰다.
먼 길을 우회하는 실패의 시간이었지만, 그 2년의 방황이 있었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주변을 보면 많은 직장인들이 "이 일이 나랑 맞나?" 고민하면서도, 실패가 두려워 점수에 맞춰 입사한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안주하는 순간, 회사는 그저 노동력을 제공하고 월급을 받는 삭막한 '직장'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루틴한 일과가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살기 싫었다.
내게 일터는 철저히 내가 선택한 곳이어야 하며, 매일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뒹굴 수 있는 '놀이터'여야 한다.
놀이터에서는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툭툭 털고 일어나 다른 놀이기구로 달려가면 그만이니까.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았던 만큼 내 인생엔 실패도 비례해서 많았다.
그리고 1400억의 매출을 내고, 10년 이상의 인사이트를 쌓은 지금,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더 반갑다.
내게 웬만한 성공은 더 이상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획하면 어떻게 팔릴지, 어떤 숫자가 나올지 당연하게 예측되기 때문이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는 영화가 지루하듯, 뻔한 성공은 나를 흥분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는 다르다. 실패라는 것은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아직 터득하지 못한 어떠한 결과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도 아직 내가 넘어야 할 산이 있고, 부딪혀 깨져볼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남아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뛰고 짜릿한 일인가!
대기업의 안전한 러브콜을 정중히 거절하고 아무런 기반이 없는 곳으로 향한 이유도 결국 하나다. 그곳이 내가 가장 처절하게 실패해 볼 수 있고, 그 실패를 딛고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의 완벽한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나를 원하는 수많은 기업의 대표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것이 있다.
그들은 화려한 학벌이나 뻔한 이력서가 아니라, 내가 온몸으로 부딪혀 실패하고 기어이 일구어낸 이 '맥락'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동료든 친구든 상사든 내게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내러티브(Narrative)가 있는가?"
"어쩌다 보니",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실패하기 싫어서" 흘러온 삶에는 결코 향기가 나지 않는다.
숱한 실패와 방황 속에서도 기어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 낸 흉터들. 그 흉터들이 모여 진정한 가치관이 되고 고유한 서사가 된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거대 플랫폼의 야생으로 뛰어드는 이유 역시 명확하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커리어의 종착지가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오롯이 '나만의 판'을 벌이고 내 이름이 걸린 제국을 세울 때,
지금 기꺼이 감수하는 이 날것의 실패와 0에서 1을 만들어낸 서사들이 나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밑거름이자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또 한 번 기꺼이 처절하게 실패하고, 압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먼 훗날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저 사람이 가는 길, 그곳에서부터 항상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Editor's Note) 매주 화요일에는 마케팅과 비즈니스의 실전 노하우를 다루는 <1,400억 마케팅 설계도>가 연재되며, 주말에는 일과 삶, 뇌과학을 넘나드는 에세이 <디렉터의 오답노트>, <감각을 파는 심리학>으로 찾아옵니다.
글. 브랜드 디렉터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