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플로리다 프로젝트

우리시대의 진정한 비극성

by 아난다 박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플롯의 전형적인 공식을 제시한다. 즉, 이야기의 주인공은 갈등의 파고를 타다가 극복하거나 파멸한다. 그리고 관객은 그런 비극 속 주인공에게 점차 연민을 느끼며 감화되어가며 그의 승천과 파국의 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비극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정점엔 어린 딸을 홀로 키우는 미혼모 핼리가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연민의 대상이어야 하는 핼리에게 우리는 자신이 마음을 흠뻑 내어주지 못하게 된다. 부적절한 양육과 철면피적인 태도에도 그녀는 연민의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지속적인 뻔뻔한 언행과 패착에 이른 매춘은 우리로 하여금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시학 속 비극처럼 우리가 그녀에게 온전히 감화되기에 그녀의 정서와 언행은 너무 버겁기만 하다. 특히 핼리의 비극성은 마지막 무니와의 헤어짐에서 정점에 이른다. 딸을 진정시켜달라는 아동국 직원의 부탁에 ‘나보고 내 새끼를 나에게서 떨어지게 하냐’ 며 절규하는 부분은 극이 치닫을 대로 치닫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Fuck you’라고 당차게 내지르며 마냥 연민을 자아내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관객과 인물들 간의 감정적 거리두기를 유지시킨다. 즉 우리는 온전히 영화속 인물에 빙의되어 감정을 겪어나가는 방식이 아닌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전개방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 분명 핼리와 무니라는 두 모녀가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구조임에도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들도 곳곳에서 다뤄지며, 각각의 관계들이 유기적인 듯 하면서도 개별적인 사연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치 디즈니랜드 주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캠코더로 담은 다큐를 연상시킨다. 분명 영화 속인데도 카메라의 시선은 마치 모텔과 그 주변지역에 설치된 CCTV처럼 담백하다. 즉 영화가 인물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좀 더 극적이며 감정적으로 구성되기보다, 보여주기식의 건조함으로 전개되면서 영화는 점점 더 객관화되어간다. 관객은 그들의 삶을 그들의 마음에 깊히 감정이입되지 않은 채 외부인으로서 관찰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유롭고 편안하게 비극을 관람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머릿속으로 이 영화 안에 큰 비극이 존재함을 인지하게 되고, 마음속엔 그 비극의 정서가 흐름을 감지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이 아픈 감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우리는 분명 인물들이 처한 아픔에서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마음이 아리는 것일까? 우리는 도대체 어떠한 비극 가운데에 놓여져 있는 걸까? 그 비극성의 원천은 아마도 죄책감과 무기력함일 것이다. 바로 우리가 인물들의 비극을 보면서 그 안에 있지 못하고 함께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철저하게 관찰자일 뿐, 온전히 그들의 입장이 되어주지 못한 관객들은 그렇게 객관적인 자신의 포지션을 깨닫는 순간 진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왜 바비의 모습이 우리에게 친숙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바비는 바로 현실의 우리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두 모녀를 모질게 쫓아낼 수도, 한없이 받아줄 수도 없다. 마음 한 켠에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지만 또한 온전히 그들의 편에 설 수도 없다. 관객에게처럼 핼리는 바비에게 호감과 연민을 충분히 불러일으키지 않는 애증의 존재이다. 또한 바비가 처한 삶과 상황은 우리네 삶처럼 온전하지 못하다. 하루하루 살기 바쁘고 지쳐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들의 사연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포지션과 일치한다. 마지막 무니가 달아났을 때의 그 소란의 소리를 바비는 그저 듣는다. 담배를 피던 그는 한번씩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 쪽을 향해 걸음을 내딛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그는 상황판단과 조력에 있어서 무기력한 채 안절부절해 한다. 우리가 두 모녀의 생이별에 대해 동의하지도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분열적인 상태에 놓인 것과 같은 상태이다.


무니와 젠시가 디즈니랜드를 향할 달려갈 때 실상 그들은 헤매이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가고 있지만, 그곳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는지, 어떤 제재가 닥칠 지,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다. 어딘가로 가야만 했고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를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저 달려갈 뿐이다. 그런 방황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 모녀와 영화속 이웃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우리네 삶 또한 바비처럼 무겁고 여유가 없다. 그리고 도와줘야 하는 현실의 핼리들은 마냥 상냥하지 않고 어딘가 삐뚤어져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도움의 문제를 넘어 사회와 국가로 까지 해결의 범주가 확장되어버렸다는 무기력함이 앞선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바로 그 가혹한 그림들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비극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의 비극이다. 영화는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비극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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