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컨택트

언제나 소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by 아난다 박


수많은 별들을 보아왔고 외계생명체를 만났지만 당신을 만난 게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고 이안은 고백한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에게도 매우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안에게 ‘사랑’으로 발현된 그 놀라움은 나를 ‘몰입’으로 이끌었다. 영화내내 난 그녀의 말과 표정에 집중했고 결국 영화와 깊이 접속하게 되었다. 영화와 나 사이에 루이스라는 다리가 놓여진 것이다. 이는 영화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구가 난제를 풀어나가는 데 헵타포드어가 열쇠로 작용했다면, 외계인들에게는 루이스가 바로 그 열쇠였다. 그렇다면 루이스에겐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이동’이라는 헵타포드어의 특수기능처럼 그녀만이 지닌 특이점은 무엇인가? 그녀는 언제나 침착하고 이성적이었으며 낯선 존재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지녔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꿋꿋이 관철해나감으로써 지구에 닥친 난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언어해독을 부탁하러 온 웨버대령은 직접 현장에서 외계인과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루이스의 말을 처음엔 거절한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이란?’ 대령이 황급히 떠나려하자 다른 언어학자에게 던진 그녀의 다급한 질문. 그녀는 왜 그 순간에 그렇게 물어야만 했을까? 이렇게 영화는 ‘전쟁’이란 화두로 시작된다.


돌아온 답변은 ‘다툼’이지만, 그녀의 해석은 ‘더 많은 암소를 원한다’이다. 루이스는 바로 이 정의에서부터 다른 이들과 구별된다. 그녀는 ‘다툼’이란 단어로 단언되지 않은 ‘문장화된 사연’으로 전쟁을 규정한다. 우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이란 개념이 형성될 당시 ‘더 많은 암소를 원하는 상황’이 맞물려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어쨌든 크나큰 마찰이나 살육이 발생하면서 ‘전쟁’으로 불리웠을 것이다. 그녀는 그 어원의 이야기를 문장안에서 추정하고, 있을 법한 최초의 마찰과 전쟁이란 결말 사이의 갭에 주목한다. 그리고 더 많은 암소를 원하는 집단의 욕망이 서로를 파괴하는 살육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함을 자신의 ‘정의’안에 담았다. 그녀의 정의는 우리로 하여금 전쟁전 상황에 대해 상상하게 만들고 다음과 같은 의문에 이르게 한다. 정말 전쟁이 필요했을까? 욕망의 합의는 과연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소통’으로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영화와 루이스는 바로 그 소통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 소통의 시작은 언어이다. 언어와 또다른 언어를 이어나가는 작업은 두 개의 유전자를 정교하게 이어붙이는 작업처럼 까다롭다. 또한 번역작업은 쉽게 오류에 빠지며 한 단계씩 천천히 밟아나가야만이 제대로 세워나갈 수 있는 건축물과 같다. 영화속 ‘캥거루 일화’는 언어적 소통이 얼마나 오류에 빠질 수 있으며 수정이 힘든 일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루이스는 두 집단의 언어번역이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해와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섬세하게 헵타포드어를 익히고 영어를 가르쳐나간다. 그녀의 책 서문의 ‘언어란 모든 분쟁의 첫 무기’라는 말속엔 언어의 파괴적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 번역과 의사소통의 고행은 모두 전쟁을 지연시키고 발생가능성을 차단하여 궁극적으로 평화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영화는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평화를 주장한다. 영화가 제시한 전쟁의 ‘정의’에도 그 열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메시지의 정점에 있는 그 정의는 특이하게도 살짝 숨겨져 있다. 미처 번역되지 않은 채, ‘전쟁에 승리자는 없다. 다만 과부들만 남을 뿐이다.’라는 중국어로 속삭여질 뿐이다. 우리는 쌩이 루이스에게 아내의 유언을 읊조릴 때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말은 분명히 영화를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감독의 전언이다. 이때 나는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취한 태도를 떠올렸다. 헵타포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구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상 위에 떠 있고 상대방이 언어를 체득하도록 지구인들을 유도할 뿐이다. 지구인들은 그 상대의 의도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실패와 성공의 시도 가운데 종국적으로 언어를 체득한다. 이는 우리가 쌩장군의 읊조림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을 추측하고 예측해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 말을 예측하다가 결국 해독에 이르고 기여된 노력만큼 의미를 곱씹는다. 헵타포드의 언어 제시 방식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 전달에서도 재현된 것만 같다. ‘진정한 교육은 그것을 알아가는 가운데 생기는 의구심에서 발생한다’는 어느 교육학자의 글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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