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그리고 마음의 커튼

수술 후, 처음 들은 말 한마디

by 다락방지기


수술대 위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찾았다.


그 순간 들려온 말은,


"척추 신경이 끊어져서 앞으로 걷기는 힘들 겁니다.

3개월 동안 절대 움직이지 말고,

똑바로 누운 채로 보호대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감정을 배제한 의사의 말이,

내 온몸을 전기처럼 훑고 지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단숨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모든 것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떴는데 세상이 기울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곧장 달려오셨다.

울음기를 꾹 참고 내 손을 잡은 엄마는

작게, 그러나 너무 선명하게 말했다.


"깨어나줘서 고마워.

엄마가 너 어릴 땐 많이 업고 다니질 못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너를 업고 돌볼 시간을

다시 선물 받은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또다시 눈을 감았다.




중환자실.

나는 처음 그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호흡기 사이로 싸움을 이어갔다.


내 시야 끝에는

‘소생실’이라는 낯설고도 두려운 이름의 문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살아 있음이 기적이라는 말이

그저 말이 아니었음을.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음악 듣고 싶어요.”


무서웠던 것 같다.

살려달라는 외침들이,

마치 나에게 쏟아지는 것만 같아서

그 소리를 피하고 싶었다.




남편은 군복을 입은 채 병원으로 뛰어왔다.


제대로 묶지도 못한 전투화 끈,

풀어진 군복 윗단추,

그런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그는 다급했다.


문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울던 남편.


"왜... 왜 하필 너야..."


그렇게 무너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미안해’란 말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며칠 후,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커튼으로 가려진 병상들 사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누워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커튼을 치고

세상과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랬던 내 커튼이 열린 날,

딸이 병문안을 왔던 날이었다.


붉게 물든 눈을 한 채,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병실에 들어선 아이는

작은 숨을 삼키며

내 앞에 다가와 앉았다.


방금까지 울고 있었던 게 분명했는데

내 앞에서는 애써 웃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눈물을 훔친 흔적이 선명했다.


"엄마, 보고 싶었어. “


그 말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다시 살아야겠다.

무너질 수 없다.

이 아이 앞에서는 울지 말자.




그 후로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속 무너진 자리에

다짐의 벽돌을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렸다.




걸을 수 없다는 현실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천천히 품어가기로 했다.


그건

‘새 살이 돋는 시간’이었다.


고통의 기억과 눈물 속에서도,

나를 붙잡은 손들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지금의 나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이 글은,

다시 나를 일으켜 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언젠가 같은 시간을 걷게 될 누군가에게

내가 건네는 처음의 한마디다.


"괜찮아, 너는 다시 피어날 거야."


#마음이_지나간_자리 #다락방지기 #느리지만_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