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적의 첫 페이지
나에게 오후 다섯 시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빛과 마음이 만나는 교차점 같은 순간이다.
기억은 오후의 빛 속에서 떠오르고,
감정은 새벽녘에 피어난다.
빛이 있을 때는 과거의 장면들이 또렷하게 보이고,
새벽에는 그 장면들 위로 감정이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기억의 틀 위에
감정의 물감을 얹듯,
하루를 그리고, 글을 완성해 간다.
처음, 나는 단순히 한 편의 글을 발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직 책이라는 형태를 상상하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마음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북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고,
그 속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마음은 서랍 속 작은 씨앗처럼 조용히 있었지만,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 정리하고, 발행하는 사이
조금씩 싹이 트고, 줄기가 뻗고,
드디어 오늘, 브런치북이라는 이름의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다는 건,
내 몸 전체의 시간이 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모든 게 정지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나는 살기 위해 이 모든 시간을 견디고,
노력해 왔다는 걸 안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려 용기를 낸 나에게
이 브런치북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아픔과 불행을 동시에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15년을 지나 용기를 낸 나처럼
자신에게 용기를 내는 시간은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행복도 총량의 법칙이 있듯,
불행한 일은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반드시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리고 이 순간
나는 불행이 입고 있던 옷을 벗고
행복의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이 하루는 나에게 특별하다.
단순히 글을 썼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자라나는
첫 페이지였기 때문이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손끝이 뜨겁게 떨렸다.
이것이 설렘이라는 걸,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아마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 것 같다.
절망 같은 시간을 누구보다 유연하게 버티며,
매달 내 병원 스케줄을 챙기고,
작은 일상까지 함께 헤아려주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사소함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숨 쉬는 모든 시간을 함께 동행해 주는
위대한 사랑이다.
남편은 나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 선물 속에서 오늘도 웃는다.
언젠가 이 책이 완성되는 날,
나는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을 이어가며,
작은 씨앗이 자라 숲이 되는
기적을 만들었던 날로.
그리고 오늘,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함께 넘긴 우리만이
그 설렘의 온도를 기억할 것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날,
우리는 비밀스러운 기적이 완성되는 순간을
함께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지나간 자리』의 마지막 페이지를
함께 걸어준 당신에게,
내 마음의 온기가
오래 머물기를.
우리의 시간이
한 권의 페이지로 남았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