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의 의자

Papillon’s Chair

by 김태규

빠삐용의 의자

Papillon’s Chair


ㅡ 김태규


도망쳤으나

앉을 수 없었다


그 놈의 이름 하나로

뚜껑이 열렸고

그 년의 그림자 하나로

저녁이 닫혔다


정의를 세우려

달렸다

그러나 정의는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어느 거리를

다시 밟는 순간

비로소

보였다


사슬에 묶여 있던 자는

그 년놈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서서 살고 있었다

분노 앞에서

잠시도

몸을 내려놓지 못한 채


놓아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오늘을 버틸

내 자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모두 놓고 나서야

텅 빈

자유라는 의자에

앉게 되었다



[작가의 말]


탈출 이후에도 쉬지 못한 빠삐용의 시간을 떠올리며 이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쳤지만 몸을 내려놓지 못했고, 분노는 그를 계속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정의를 향해 달렸으나 그 길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용서를 선택한 것은 억울한 과거를 받아들이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자유란 무엇을 더 얻는 일이 아니라, 비로소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채 앉아도 되는 상태일 수 있음을 담고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