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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Jun 26. 2024

250626

바라만 봐도 든든한 사람들

작년에 받았던 해난구조구급 교육이 올해도 진행됐다. 보조강사를 뽑는 때에 운 좋게 같이 훈련할 기회를 얻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바다에 들어가 손을 젓는데 몸이 달아오르더라. 내가 살아있구나. 지금 살아있구나. 팔을 저으며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두근거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수영하는 동안에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첫날 훈련을 받고 작년에 같이 훈련받았던 형님들, 교수님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평소 술을 안 마시는 나도 여기선 무장해제가 된다. 평소엔 마시면 손해였는데 여기는 안 마시는 게 바보 같다. 그렇게 몇 잔을 홀짝홀짝 마시다 취기가 들어 술잔을 놨다. 지금 기분보다 이 시간이 먼저다. 가는 시간이 아쉬워 계속 시계를 쳐다보게 됐다.

여기에 온 동생, 형님들은 모두 내 스승이다. 동료이자 기분 좋은 경쟁자다. 사실 내가 경쟁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내가 모자란다. 난 형님 동생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길에 정답이 어딨겠냐만 내 소방 생활은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표본인 사람들이다. 난 이들과 있으면 부끄러움과 내 소박함을 한 아름 느끼고 간다.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고, 아직 미생이란 걸. 그런데도 너무 좋다. 내가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마저 좋다.

술자리에서 이 얘기가 나왔다. 외국 구조대 중 선진화되고 잘 운영되는 구조대의 표본을 보면 구조대가 응급처치까지 활용한다고. 난 소방의 미래를 짐작했다. 올바른 미래로 가려면 구조대라고 구조 업무에만, 구급대라고 구급 업무에만, 경방 대원이라고 불 끄는 업무에만 국한되면 안 된다는 것. 구조 상황 속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그땐 적극적인 치료와 동반해서 구조까지 해낸다면 그게 진정한 백 점짜리 처치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 구급을 멀리하던 나를 뒤돌아봤다. 경추손상환자가 계곡에 빠져있다면? 먼저 구조대상자를 구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더 잘할 수 있다면 수상에서 경추 보호대를 착용하고 구조하면 구조 상황 동안 벌어질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덜컥 구조대상자만 구하려고 물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당기고, 잡다 보면 경추손상이 심화할 우려가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 넓히고 싶다. 구조하면서 구급활동까지 가능해지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첫째, 신체 조건이다. 내가 아무리 용감하고 의지가 있다고 해도 구조대상자를 향해 팔을 뻗을 힘이 없으면 임무 실패다. 특히 수난에 있어서 신체 조건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촌각을 다투는 현장이라도 내가 자신이 없으면 장비를 다 착용하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안전사고가 벌어지지 않을 테니. 하지만 몇 분을 허비하는 사이 구조대상자는 더 위급한 상황에 빠질지 모른다. 내 신체가 좀 더 건강하고 강인하면 구조대상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둘째는 지식이다. 아는 게 많아야 한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몰라서 이것밖에 못 하는 것과, 내가 알지만 이게 쉬워서 이것만 하는 건 다르다고. 정말 다른 얘기라고. 10을 알고 1을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1만 알아서 1을 하는 건 문제라고 했다. 값은 동일한 1이라 할지라도. 하나만 아는 사람은 나중에 둘이 필요한 순간에 한참을 헤맬지 모른다. 난 머릿속에 최대한 욱여넣고 싶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서 어떤 현장이든 그때 상황에 맞게 시간을 써내려 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 난 미생이다.

한참 모자란 풋사과. 아직 맛이 들지 않은 열매에 불과한 난 교수님과 형님, 동생들의 말을 숨죽여 들을 뿐이었다. 나도 언젠가 이들처럼 될 수 있을까. 그저 바라만 봐도 든든한 사람들. 보트 타고 헬기 투하 위치로 가는 오늘 그 순간에, 난 여기 있는 내가 너무 좋아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지금이 너무 좋다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형님 동생들, 교관님을 뵙고 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난 늘 받기만 하고, 그들은 아낌없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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