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못하는데도 수학이 좋은 이유

by 소스SOS

답이 정해져 있는 게 좋다.

수학은 그게 좋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수학을 정말 못했다.

분수의 덧셈도 이해가 안 가고 분수의 곱셈도 이해가 안 갔다.

특히 소금물 문제는 너무나도 두려워서 소금물이라는 단어만 봐도 벌써 틀릴 예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어도 다음번에 풀려면 못 풀고 틀리고를 수십 차례 반복했다.

그래도 과외를 받으며 어찌어찌 선행학습을 했었다.

억지로 배우면서 간신히 문과를 졸업했다.


그런데도 통계학과에 진학했다.

처음부터 통계학과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학부로 입학했기 때문에 1학년때는 과를 선택하지 않고 학부 내에 있는 여러 학과의 수업을 들었었다.

그런데 다른 학과는 영 못하겠어서 선택한 게 통계학이었다.

그러니까 남은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전공이었다.


당연하게 성적은 처참했다.

그리고 대학교 시험은 내가 여태까지 풀어보지 못했던 유형의 문제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외웠던 개념만 시험지에 한가득 쓰고 나왔다.

마지막에 교수님께 쓰는 편지와 함께..

결과는 B+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했다.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념만 잔뜩 쓰고 나왔는데 B+이라니! 이 정도면 개이득 아닌가?


하지만 닥쳐올 미래가 겁났다.

졸업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 더 이상의 과외는 없었고 도움 받을 사람도 없었다.

과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 받을 선배조차 없었다.

그렇게 홀로 오답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때 했던 건 공부가 아니었다.

문제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문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문제유형만 외웠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과외에 쏟은 돈이 아까웠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미 통계학을 선택했고 무를 수 없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무식하게 했다.

강의실에 가장 빨리 도착해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교수님이 하는 말을 놓칠까 봐 수업 내내 긴장하며 미친 듯이 필기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쓴 내용을 똑같이 반복했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면서 같은 문제를 여러 번 증명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교수님 방에 찾아가 집요하게 캐물었다.

몇 시간 내내 증명만 하는 날도 있었다.

제일 친한 동기가 질려할 만큼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 결과 장학금과 함께 어떤 학기는 4.5 만점을 받은 순간도 있었다.


답이 있는 게 좋다.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답이 정해져 있는 게 좋다.

답이 없이 애매모호한 것들은 모두 변수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수학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는 내 마음도 모르겠다.

1+1이 2인 것처럼 모든 것들에 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매모호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모든 날들이 내게는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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