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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l 10. 2024

57. 사내연애는 복사기 빼고  다 안다는데

-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학교 가기 싫어!" 하는 아이도

아침에 깨우면 일어나서 학교에 갈 채비를 한다.

"회사 가기 싫어!" 하는 어른도

아침에 자명종을 끄고

시리얼이든 뭐든 챙겨 먹고 길을 나서긴 한다.


사내연애를 하면 회사 가기 싫은 마음이 확 달라질까? 경험자들이 알 것이다.

사내연애를 하면 나만 아는 비밀이 될 수 있을까?

그것도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복사기만 빼고 결국 다 아는' 사내연애가

잘 못 꼬여 버리면

출근하는 일이 다시 고역이 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짐작이 간다.


‘회사 가기 싫어’ 오늘(18일) 10회, 복사기만 빼고 다 아는 ‘사내연애’ 다뤄 - 시청자와 함께! 디지털 KBS


브런치 선배 한 분이 글을 올려 주신 게 있었다. 남녀가 다 그런가, 우리나라만 그런가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들켜버린 사내 연애, '이별' 아님 '퇴사' 하라고? (brunch.co.kr)


좋아하면서 비밀 연애를 할 때는 들떴던 마음조차

차마 돌이킬 수 없어 자신을 혼내키는 후회와 자책만 남기고 식어버리게 됐다면

'그래, 힘들겠다.' 싶다.


그런데 불륜을 논외로 하고

젊은(젊다 치자) 남녀가 사내에서

서로 연애 감정에 빠져들어 서로를 알아 가다가

어떤 /특이점/의 발견으로 인해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인간의 常事라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죄 짓는' 일은 아니잖아?


그런데 회사에서, 직장에서

저건 '죄 짓는' 일인데, 저건 '불법'인데 하는 일을

본 적 정말 한 번도 없었나 물으면

'성대리'는 할 말이 많다. 하지 않았을 뿐.





채널 독점형 & 권위 집착형



과장은 일어나서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걸음도 살랑살랑 기관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송과장이나 성대리의 직속 상사였던 과장 대리는 대동하지 않았다.


기관장은 자신이 기관으로 내려온 뒤로

과장이 늘 자신과의 '독대'를 통해

기관 전체의 업무 현황, 직원들 동정, 결정을 기다리는 조치 여부를 논의했기 때문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어도

주위에서 불만이 많았다.


의사소통에서 과장의 '원맨 쇼', '원맨 팀'만 있었고

특히 과장 대리는 그런 과장의 걸음을

마뜩치 않아 하면서도

과장과 불편한 관계는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과장을 집 근처까지 퇴근시켜 주는

운전 기사이기도 해서

아침에까지 픽업하지는 않는 것만큼은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왜 '성대리'같은 C급 직원만이 아니라

과장급인 그에게까지

과장은 '신분 의식'을 발동해서 인심을 잃었을까.


내가 계속 지켜 보고 안 것은

과장은 우열을 나누는 게 체질이 돼 있었다.

'A-B-C' 아니면 '진-선-미' 뭐로라도

상하관계를 매겨서 나누고

자신을 최상인 A급에 설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신분적 인간'('회사인간', 김종율 책, 67쪽),

바로 그것이었다.


과장에게 굳이 말하자면 '성대리'는

자신의 책상 저 밑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와야 하는 존재였고

까마득한 위계 저 밑 지하실에서

언제 올라올지 모른다고 판단됐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의견을 제출하고

본인이 알아서 척 척 해 내는 모습이란

위계에 대한 '거역'이었고

과거 위치에서의 자신이 가졌던 행동 양식과는

큰 차이가 나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을

두고 못 보는 성격의 과장은

도덕적 올바름이나 사회적 존경을 바라기 전에

자신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첫째로 태어나

전 인생을 바쳐서 획득한 현재의 지위에 대한

알뜰한 보상

공적/사적 영역을 넘나들면서

지켜 내려고 하고 있었다.


'성대리'가 과장에게서 선뜻 배울 점을 찾지 못하고

의문을 가졌던 시작점은

어떤 '불일치'가 있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결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리'와 '사람'의 문제는 다른 문제다.


최종적으로 과장과 얽혔던 상황이 종결되고 나서

'성대리'는 그 /불일치/의 맥락을 알아차렸는데

바로 과장의 '권위주의'였다.


그것은 과장에게 어떤 직원도

‘동료'나 '의논의 대상'이 되지 않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승진자가 되면서

스스로 원해서 체화시킨 것이었다.


'내가 이 나이 먹어서'라는 말에는

너희들은 다 '내 밑'이고 '어린 사람'이라는

생각이 녹아 있었다.


다른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가 예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같은 승진자 '신분'에 포함된 부류였고,

여기서 '예우'란

전화를 하거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친밀감 유지, 유대 형성 및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는,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방에 한했다.


그런데 그것은 '성대리'가 '소통'과 '대화'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방식이었고 엄연한 ‘사람 차별’이었다.

그렇게나 과장은 많이 달랐다.


조직에서 지위란 때로

사람의 미흡한 능력과

대접받을 만한 행동 여부에 상관 없이

그 사람의 실제 존재를 합리화해 버린다.

즉, '있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직무와 권한에 대해 매우 수동적이면서도

기회가 왔을 때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던 사람은

떠밀려도 승진을 한다.

점수가 목까지 차서

터틀 넥에서 목을 빼서

'승진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스웨터를 입어야 하게끔 되는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이너 서클에서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있는 친교, 없는 애교를 다 쌓아서

사람을 부리거나 배척하거나를

일시적으로 붙었다 떨어졌다 약한 자석처럼

반복해 왔다.


강한 자에게는 약한 모습을, 약한 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이는 데 있어서 부끄러움은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직책과 지위가 자신에게 합당한지도

점차 묻지 않았다.

아니 반드시 승진자 대열에 들어야 했고

그렇게 되지 못한 인맥은

유지할 가치를 느끼지 않았기에

가차 없이 버리거나 심지어 조롱했다.


이제 과장은 더 높은 직급에 올라갈 수 있었지 않은가 아쉬움을 뒤로 할 것이다.

이 년이나 삼 년 정도를 남기고 '퇴직 버튼'('회사인간', 김종율 책, 51쪽)을 누를 수 있었지만

 막 승진한 뒤라 더 이상 근무할 수 없을 때까지

누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효과적으로/ 영구적으로 '성대리'의 앞길을 막았고 자신의 승률을 다시 높였다.


'성대리'는 능력주의에 입각해서

외부 자원을 공개 채용하고 임용해서

재능 기부면 확실한 재능 기부를 받고,

필요한 만큼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거양득의 효과성을 제고하길 제안했지만 묵살됐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걸 참아 왔는데.' 라는 위치 자체의 견고함에 대한 희망과

안정 지향, 자기 만족을 중시한 과장은

남들보다 앞서 자신에게 청을 넣고

자신에게 와서 남들보다 더 고개를 숙이는

애매한 능력의 소유자들만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경로를 만들어 줬다.


그 바람에 얕은 커리어로도 공공 기관의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된 사람들은

그저 과장의 지위 안에서 맘껏 휘두르는

소정의 인사권 행사 범위 안에서

과장의 눈에 들 생각만 했고,

잠시 자리만 차지했을 뿐 책임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이 다시 돌아 돌아 공공 기관이 제공하는 협력 사업과 저소득층 대상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렸고

만족도는 낮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과장이 바라는

무시당하지 않는 영향력'이었지만,

과장이 자리에 있는 동안 만큼

기관은 잘 나갈 수 있었던 위상을 잃었고

서서히 망해 갔다.


이제 과장은 퇴직 후 갈 곳을 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처럼 앞으로도

과장의 '적응'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질로, 그런 '신분적 인간'이, 즉 '꼰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임기를 무탈하게 채우는 동안,


그런 리더가 조직에 있었기 때문에

조직 내 신뢰 기반의 관계망이 파헤쳐지고

조직의 정체성이 혼란에 빠져

모든 사업이 제자리걸음, 회사 성장은 답보했다.

이 역시 과장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


어차피 자신의 노후는 보장되었다.

그렇지만 날아간 '성대리'는? '젊은 사람들'은?





대접받는 위치에 있을 때

더 높이 올라갈 생각만 하면 벌어지는 일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길로

자신을 떨어뜨리곤 한다는 것을

살아 온 경험은 말해 준다.


사내 연애의 비밀스러움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이별과 퇴사가 함께 온다는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성대리'가 과장을 만나지 않았다면,

'성대리'가 과장의 표현대로

 '(과장을) 디스(diss, disrespect)'하지 않고

과장이 정한 상하 위계 질서에 복종했더라면

무엇이 달랐을까.


사내 연애도 빠지지 않을 수 없어서

빠져드는 것일 테고,

'성대리'도 완전한 참패가 예상됐지만

과장에게 잘잘못을 물었다.


자신의 감정, 믿음, 가치 이것에 기반한

선택과 행동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사내 연애가 틀어지고 나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할지는 몰라도

당사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또는 이 사회에 피해를 준 것은 없다.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장은 이번에 수 십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낙오시킨 사람들,

자신의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발휘해서 내보낸 사람들에 대한 심적/정신적 부담은 지고 갔어야 할 일이다.


'성대리'는 어떤 공적 대면도 없이

과장의 일방적 '퇴직'이라는 사건만으로

모든 문제가 묻히는 현실을 이렇게 자각한다.


현타는 현타이고,

과장의 퇴직은 이제라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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