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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l 17. 2024

59. 멀어지면 뭐가 보이는가 하니

-멀어지면 그냥 좋습니다.


지난 주에 병이 재발하는 것 같아서

꽤 힘든 주말을 보냈다.


나의 멘탈리티가 취약한 것은

여러 번 입증이 된 사실이다.

굳이 ‘멘탈’도 아니고 ‘멘탈리티’라고 한 것은

뭔가 상대방이 있거나 목표가 있을 때

끝까지 버티고 싸워서 이뤄내는 정신 승리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https://m.blog.naver.com/iloveimier/223061010152


세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요약한 위 블로그를 참고할 때 나는 "당신은 클리너입니까?"라고 물으면

바로 "아니오, 절대 아니에요."라고 할 것 같다.


나는 기회가 다가와도 모르고 잡지 못하는 '쿨러'였을 것이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모든 커리어가 순삭되기 전까지는 어쩌면이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이대로 죽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서 차츰차츰 달라진 나는 다음 단계인

‘클로저'가 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지난 글에서 고백한

인생 최초의 자전거 타기 대성공 경험을 통해 적어도 치료사 분들한테 칭찬받는 근육이 생기면서

힘이 좀 붙은 것이 사실은 사실이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또 의도한 대로 풀린 일도 그다지 없어서 괜찮다. 말인즉슨,

드라마 ‘미생‘ 명 대사를 체현하면서

지난 일 년을 보냈다. ‘몸을 만들'었다.


https://blog.naver.com/jhk7318/220510101373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내가 '종종 후반에 무너'진다고 느꼈고, 나를 염려하는 가족과 지인들, 그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복구가 더딜'까 봐 우선 걱정이 컸다.


그렇게 해서 꾸준히 일해 왔던 '성대리'는 가고

꾸준히 매일처럼 운동을 하는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듯이 삶을 살아간다.


“운동신경이 없다.”는 핀잔을 옆지기로부터 곧잘

듣고도 반박 못 했던 나는

이제 “운동신경이 없는데 곧잘 하네."라는 말도

들어 보는 중이다.


어제 찾은 식당에서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써 있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그 힘이 아니라,

꾸준함이다."


하지만 이러든 저러든 나는 뭔가 성공이나 정점에 도달한다는 의미의 멘탈리티 '클리너' 단계로는 

내 인생 전체에 걸쳐서 결국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이 팩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멀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헤어지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에

멀어지고 나서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어지간하면 하지 않을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 많았다.


그러나 한편 억지로 핑계대고 빠지기 어려웠던 행사나 이벤트, 직장 회식, 껄끄러운 만남이

일상에서 소거되면서

선호대로, 오래 기다려 온 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도 나타났다.

요는, 나는 이러저러하다 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전과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악의로 한 일은 반드시 시간이 흘러서 그 악의가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 그랬을까? 정말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를

곰곰히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누군가의 악의로 한 일인 경우가 많다.

공연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구름과 구름이 만나고 구름 속 물방울들이 합쳐져서 비를 내린다면

태양과 바다가, 강과 땅이 어우러져야 할 일이다.

(장마철이라서 비가 내리는 원리가 떠올랐다.)


단지, 그 때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이

우선 보는 눈을 가렸고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한쪽 눈을 감는다고?

(무슨 '양심' 같은 소리인가,

지금 보면 어리석고 어리석다!)'라면서

믿지 않으려고 했지만 시간만 끌었을 뿐이다.


헤어지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구 연인의 좋은 모습이라면 그나마 이상적이다.

그러나 멀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다 좋은 것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 때의 의구심 가득하게 들던 그 하나하나의

인상 착의들, 떼 구름마냥 몰려 다니던 사람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어서

결국은 드러난 것이 연인의 이중 플레이 연애였고

되돌아봤을 때 정황상 퍼즐이 한꺼번에 맞춰지는 느낌이 확 든다면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연애 과정에서 우려도, 예측도 됐던 일일 뿐이다.


결국 나만 몰랐던 일들.

그것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멀어지고 나서 알게 된 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가까워지고 함께 일한다는 생각으로 좋았던 시절은 잠깐일 뿐이었고

사람들은 한 치의 손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구원을 바라는 손사위*를 아무리 반복해도 선뜻 남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

손익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손사위:

검무에서, 맨손으로 팔을 펴고 서서 추는 동작


내가 한 발짝을 움직이면

저 사람이 열 발짝을 안 가도 되는데

나는 한 발짝을 옮겨주기 싫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잘 나갈까 봐. 그게 또 사람이다.


가까이 지내면서는 "네가 있어야 내가 있지."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피곤해지지 않으려고

나만 살겠다고 달아난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면서

매일 매번 생각해 봐도 답은 같다.


예컨대 냉동고에 갇힌 순간

사람은 사람의 온기를 끌어다 쓸 것이고

상대방의 존재에 감사하게 될 존재이지만

무턱대고, 서로 돕자고 살지는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멀어지면 좋습니다. 그냥 좋아요



재발이 이루어지는 상황은

스트레스가 지속되거나,

강도 높은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거나,

둘 중 한 가지다.


대부분의 질병이 급성과 만성으로 나뉘고

만성에서 급성으로 돌발되는 상황과 대응은

대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질병에 따라 소인과 외인이 다르겠으나

결국은 질병의 주/ 부 증상이 만개하기 쉬운 상황은

대개 환자 본인이 알게 되어 있다. 왜냐 하면 한 두 번 이상의 재발은 질병이 안고 있는 과정이니까 그렇다.


나는 과장의 /눈초리/말투/목소리/식탐/주로 입는 의복 패턴과 생각/가치관까지도 잘 파악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과장의 그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유사 '악인'들을 많이 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지난주를 보내면서 '처방'을 다시 썼다.

그와 유사한 행동 양식/패션/마인드/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주위에서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달아나자. 회피하자.’는 처방이다.


내 질병은 내가 스트레스 상황이 분명한 현장을

빨리 벗어날 수 있느냐가 영구적 치료의 관건이 된다.

그래서 과장의 공격, 그에 딸린 이상한 조합의 습격,

이에 따라 일 모양새가 그렇게 되서는 안 된다는

괜시리 나만이 안고 있던 부담감을 내려놓고

어쩔 수 없이 현장을 벗어났다. 벗어난 것과 다름 없다.

아프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사람들은 남이 잘 되기 바라지 않고

자신들이 미는 사람이 잘 되어서

자신의 ‘’이 되기를 바랄지언정

'경쟁자라고 생각하면 죽여도 상관없다.'는

1990년대의 막가파식 사고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그러한 사고가 횡행하는 것을

관망하는 것을 트렌드로 흘러 왔고

바위를 뚫고 꽃이 피듯이 한 명 두 명

어려움 속에서 인재가 싹텄지만

'어디서 네가 나와?'라고 물으면 싹뚝 꺾였다.


내 주변에는 같은 공채시험에

열 번을 응시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 정답도 없고 동형 모의고사도 없는 시험을 준비하고 번번이 떨어지는 동안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생각하면

시험이 과연 '시험'이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스스로 멘탈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같은 시험에 열 번이라니.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뭐가 잘못된 거야? 선발하려는 게 아니라 떨어뜨리려는 거였네!! 

이런 걸 정신 승리를 보려고 밀어부쳤다니!


다시 말해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하지만

사람을 의존하는 생각 자체는 매우 위험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다들 아는 것을 이제 알았다.

오래오래 '배신당하기 딱 좋은' 유형의 멘탈리티로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다.


취미가 생기면 외롭지 않다.

‘사람’과 비할 수 없이 좋다.

이제 와 멀어지면 뭐가 보이고

슬슬 또 뭐, 뭐, 뭐를 알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그것도 좋습니다.

그냥,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요,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마세요.


타인에게서 멀리 있는 게 좋습니다.

그만큼 자신에게 가까워져요.

더불어서 정신 승리는 시도하지 마시고요.

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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