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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Nov 24. 2024

93. 가슴이 아픈 적 있으세요?

- 이걸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살아가는 게 왜 이다지도 힘들어?


이런 마음이 가득한 때가 있었다.

이 년 전 이맘 때가 그랬다.


보통 가슴이 어떻게 아프세요?

아린다거나 뭉클하다거나 심쿵하거나 정말 다양한데

자기의 마음이 어떻다는 걸, 어떠하다는 것을

보통 어떻게 알아차리시죠?

오늘은 제 경우를 말씀드려 보려고 해요



세 가지 외로움



지난 이 년 간

내가 외롭다거나 고립됐다거나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언젠가 함께 근무할 연한이 끝나면 각자가 갈 길로

흩어져야 하건만

과장의 계획은 하나 하나가 엉성하면서도

우습게 맞아떨어졌고

사람의 ‘심리‘에 호소해서

나를 공중에 띄웠다.

그렇게 그 사람들과 나는 ‘생‘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의 일들로 당장 일어서지 못하게 된

내가 직면한 것은 ‘외로운‘ 생존이었다.


한 번도 싸 본 적이 없는 ‘도시락‘을 싸야 했다.

한 번도 혼자서 점심을 해결한다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을 해 내야 했다.

나만 보면 피해 가는 사람들도 나를 외롭게 했고

수시로 바뀌는 소속원들을 내가 따라잡지 못해

누가 누군지 숫제 몰라서 또 한번 ‘’이 됐다.

정확히는 전년도에 내가 겪은 ‘왕따’를 모르는

신규/전입자들이 섞이자

나만 더 ‘이상한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진짜 이상하게 혼잣말이 늘어가는 걸 느꼈고

 ‘이거 내가 미쳐 가는 건가?’ 생각이 들 때면 섬칫했다.

딱 그냥 ‘나 혼자’였다. 당연히 외로웠다.

‘첫 번째 외로움’이었다.


두 번째 ‘외로움‘은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할 때였다.


무섭게 불어닥친 한파에 비한다면 비할 수 있겠다.

어느날 갑자기 ‘수용‘당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와 ’참사‘로나 ’사고’로 등등 해서 헤어지게 된다는 상상만으로

우리는 ‘계속 살아가기 어려운 고통‘을 짐작케 된다.


나는 그가 필요했다.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가고 없었다.

기다리라고 말도 없었는데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하.염.없.이.

이것이 대부분 ‘예기치 못한 이별’의 수순일 것이다.

그 때 나도 그랬다.


가야만 했던 그도, 보내야 했던 나도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 부는 칼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게

미친 듯이 가슴 속에 불어제끼는,

날카로운 날 째로 가슴을 버히는*

칼 바람이 아니면

그건 어쩌면 별로 아프지 않은 축에 들 것이다.

그리고 정녕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버히다: ‘베다‘의 옛 말 혹은 사투리임.


정말 아팠는데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내가 느꼈던 대로 써 보았다.



외로움은 끝이 없으니



외로움은 끝이 없다. 기어이 ‘알을 까‘ 놓는다.


내 짧지 않았던 생애의 가장 굵직했던 외로움의

기원으로는

한 학년 이상 일찍 입학한 쪼끄만 아이 때로 올라간다.

여름에 태어난 나는

그 전년도 초봄에 태어난 ‘언니 오빠’들과 같은 반이었다.

당연히 나는 키 작고 눈치 보는 아이였다.

사실 생각나는 이벤트가 없을 정도로

오래 전 일이지만

어울림이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일화는 남아 있다.

즉 결정권이 없고 주도성을 지닐 수 없는

‘목소리 없는 아이‘였고 늘 우물쭈물하다가

송충이가 사방에 떨어진 나무그늘을 밟으면서

하교해야 했던 시절을 보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언니 오빠’들은 그럼에도

 ‘한 번 해 보라‘고 게임에 넣어 주었다.

오히려 성인이 되면서

그리고 공무원 세계에 진입하면서는

‘In'이 더 어려웠다.

자유분방해서는 어느새 한직이 됐고

머리를 곧추세워서는 날아오는 정을 맞기 일쑤였다.


그리고 간신히 자리를 잡을 무렵

빌런 중에서도 가성비가 높았던 과장에게 엮였다.


오늘도 난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강렬한 외로움을

한 사발 들이킨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말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 “네 생각은 내 생각과

(얼마나 다른지는 몰라도) 많이 다른‘ 사람들과 집단 생활을 하다 보면

강력한 외로움을 느까게 된다.

‘세 번째 외로움’이다.


방법은 이렇다. ‘다 알면도 모르는 척‘, ‘나라면 저러지 않겠지만 그냥 박수’, 그리고 ’좋은 척’이다.


쉽지 않지만

그렇게 나를 물들이고 스며들어 몰라보게 하지 않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외롭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거의 희박한 경우의 수이지만 그렇다고 치자.

웃자고 한 말이니까 웃자.)


일상에서는

가급적이면 남에게 칭찬의 말을,

가능한 만큼 자주 ’동조‘를 해 주면서

여타의 노력을 통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나도 더이상 외로울 수는 없으니까.



외로움의 끝에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만



탈출엔 크나 작으나 ‘쇼생크 탈출’이 국룰이다.

서서히 조금씩, 그러나 준비를 마쳤을 땐

뒤돌아 보지 않는다. 망설임도 필요치 않다.


“천 권의 책을 읽었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채 오백 권도 읽지 않았었다.

현실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던 지난 이 년 간

나는 책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이제는 말처럼 천 권이 되어 간다.

나는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지역 도서관을 이용했기 때문에

몇 권의 책을 빌려다 읽었는지 카운트된다.


책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무기‘를 숨길 수 있고

나의 준비를 함께 해 주는 반려가 된다.


이제까지와 다른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을 동강 내 버릴 듯

밀어닥쳤던 칼바람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사람도 내 마음을 알아 주지 않았다라면

그것은 내가 올라야 할 무대가 아니었고

타이밍도 나빴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왕따 당한 나를 부끄럽게 생각해서

그것을 ‘하자’라고 여기는 사회를

탈출해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얼마 됐다.


미련스럽게 해도 안 되는 일을 붙잡는 것은

자신을 두 번 죽게 한다.

미련스럽게 내게 오지 않는 기회를 기다리며

속 썩이지 말고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 내는 게 좋겠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해서는

결국 도끼 자루가 먼저 썩은 것을 보게 될 것이므로


가는 사람 잡지 말고(눈길도 주지 말자)

내게 오는 기회를 잡자(딱 준비하고 기다려).


나는 이렇게 ‘외로움 극복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많이 외로웠는데 이제 좀 괜찮아지고 숨도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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