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역의 기독교(개신교)의 역사 #3

[기독교역사][개신교뒤집어보기]

by 니코데무스

(먼저 쓴 글#2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dff4337fc92242b/5


북한 지역의 기독교(개신교)의 역사

[목차]

1.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서양 종교의 전래

2. 동양의 예수살렘, 대각성운동(원산, 평양)

3. 해방과 한국전쟁(1945~1950년대)

4. 변화하는 북한교회(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교회의 생존/생성/정착)


5. 넓어지는 선교의 지평(남북한 교회의 새로운 연합 가능성)


6. 21세기를 향하여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성명서

(2) 북한성결교회 재건프로젝트

(3) 동방의 예루살렘을 꿈꾸며



5. 넓어지는 선교의 지평(남북한 교회의 새로운 연합 가능성)


1972년 남북 간에 '7.4 공동성명'이 체결되기 이전까지, 남한 교회에서의 통일 논의는 몇몇 진보적 기독교인 개인 차원에서 다루어진 문제이고, 심지어 남한 사회에서 자유와 사회정의를 구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자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7.4공동성명 이후 통일 논의에 시민사회도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지기 시작한 이후, 1980년대에 들어 남한 교회의 진보 세력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함께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1986년 장로교(예장통합) 측에서 선포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는 분단이 지속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중략)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민족 화해와 평화 정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고백함으로써 (남한) 교회의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먼저 민족통일 문제를 언급하였습니다.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헌법 / 제1편 교리 / 제6부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 제8장 [국가]


6. 우리는 분단된 조국이 그대로 계속되는 것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하나님은 하나가 될 것을 원하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민족과 국가가 통일이 되어 전 국토와 온 국민이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은 개인이나 국민이 적대관계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모든 원수관계를 없게 하고, 화해의 대업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민족을 신앙과 자유의 토대에서 화해케 하고,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https://new.pck.or.kr/law.php?sca=%EC%A0%9C1%ED%8E%B8


이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선언문'에서는 평화체제의 수립과 주변국이 보장하는 전제로 미군철수와 군비축소등의 주장도 언급을 하였는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등 보수 단체들은 즉각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1970년대 이후 전개된 선교신학의 양극화 현상은 계속 이어져오게 됩니다. 진보진영은 한국의 반공적 기독교가 통일의 길을 차단시켜 왔다고 비판한 반면, 보수 진영은 기독교인들의 전투적 반공 활동을 국가에 대한 교회의 중요한 봉사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인식의 차이는 한국 기독교 내에서 두고두고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상황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남한) 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은 기독교 시민 단체나 종교 단체 등 민간분야에서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해외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남북한 교회의 만남의 자리는, 1989년 문익환, 임수경 등의 방북으로 인해 민간 참여의 길을 열게 하였고, 관련 시민단체들의 탄생을 예고하였습니다. 또한 이후 북한이 겪었던 심각한 경제난과 자연재해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1990)과 사랑의 의약품 보내기 운동(1991)등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북한 지원 사업으로 민간단체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한 효시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통일운동은 주로 진보적 단체들이 주도하였던 것과 달리 1990년대부터는 주로 보수 성향의 기독교인들이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주로 활동했던 단체들은 남북나눔운동, 한민족복지재단,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이 있습니다. 1997년에는 15개 교단 와 기독교 단체가 참여한 한국기독교북한동포후원연합회가 결성되어 남북 분단 상황과 관련하여 기독교인들이 지고 있는 역사적 부채를 갚아나가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통일과 평화적 공존이 한민족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6. 21세기 한반도 평화의 씨앗


어릴 때 들었던 미래의 이야기는 으레 '21세기가 되면 세상이 이렇게 바뀔 것이다'라고 끝나곤 하였습니다. 'Y2K 버그'로 인해 세기말적 종말론의 분위기를 맘껏 느낄 수 있었던 1999년 12월도 벌써 25년여 과거의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지구촌 곳곳에서는 설혹 예상했다 해도 대비하기는 쉽지 않았을, 코로나 판데믹 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큰 혼란들을 겪어야 했으며,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내동댕이치고 내란을 일으켰으며, 그런 지도자를 옹호하며 탄핵 요구를 저지하려는 세력들에 맞서 수많은 시민들이 겨울 내내 길거리에서 '국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구호를 외쳐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한반도의 한쪽(남한)에서 만의 일이었고, 그 반대편의 북한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3년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지금의 남과 북은 길이 240km에 폭 4km의 '비무장지대(DMZ)'라 불리는 휴전선(국경이 아닌)으로 가로막힙니다.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는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남과 북 동포의 눈빛도 여전히 그대로일까요? 만약 백 년 후, 남과 북이 어떠한 형태로든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의 후손들은 6.25 전쟁으로부터 통일까지의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또 그 과정 속에서 남과 북의 교회 혹은 기독교 신앙인들이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작은 것까지 찾아내서 기억해 주려 할까요? 1947년 작곡가 안병원(1970년 캐나다 이민 후 2015년 작고)에 의해 만들어진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1989년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씨가 부른 이후, 북한 내에서도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전쟁을 겪은 세대(80대 후반)와 그들을 부모로 둔 세대(70~50대)들 조차, 통일을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이제는 거의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통일을 위해 '외세의 간섭 없이 남북 당사자 간의 자주적인 결정으로 이루'자는 것과 '무력 행사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자는 것이 바로 '7.4 남북 공동 성명'의 취지입니다. 하지만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통일은 대박'이라는 다소 성급한 표현이 당시 대통령에 의해 발표되었는가 하면, 북한이 내부적으로 붕괴될 시 누가 그곳에 먼저 들어갈 것인가 하는 자극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북한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반도 내 두 개 국가' 라든가 '동족의식이 거세된' '적대적인 두 국가'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표현은 대체로 호전적이라 해도 내용에서는 과거와 별반 차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남쪽을 향하여 '동족의식이 거세된'이란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들은 여태까지도 '동족의식'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 남쪽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다면 과연 북한을 '동포' '같은 민족' 등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분단된 두 개의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일에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제 상황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통일 독일'이라는 열매는 동-서독 교회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밑거름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는 남-북한의 통일은 차치하고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앞장설 수 있는 것은 바로 남-북의 교회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북녘 땅의 교회를 바라보는 남한 교회에는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단이나 대형 단체들이 각자 저마다의 목적과 지향하는 바에 따라 활동 중일 텐데 그런 다양한 노력이 언제쯤이면 온전히 하나의 결실로 맺어질 수 있는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시며 또한 그 가능 여부 역시 은총과 섭리의 영역이겠지요.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두 개의 시선에 대해서만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그 외의 교단 혹은 단체들의 활동도 기회가 된다면 알아보려 합니다.)


참고로, 현재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1999년에 명칭으로 조기련 중앙위원회에서 조그련으로 변경, PS.1 참조)을 인정하는 교단과 기관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이며, 인정하지 않는 곳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이라고 합니다. 두 곳의 활동 내용을 함께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성명서


남-북간에 대북전단 및 오물풍선이 오고 가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이어가던 2024년 여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아래와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성명서) ‘남과 북 모두 서로 간에 적대행위와 도발을 중단하라’ , 2024-10-15

image.png

http://www.kncc.or.kr/newsView/knc202410150002


비록 민간단체의 소행?이라고 해도 우리 쪽에서 띄운 비행체가 3차례나 평양 상공에 진입하여 대북전단을 살포하였다는 북한 외무성의 항의는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방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했다지만, 우리 쪽에서 지속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해 왔던 단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죠. 아직도 휴전 상태인 남-북의 상황 속에서, 어느 한쪽의 과도한 반응은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방아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행위를 버젓이 행하는 민간단체가 있다는 것도, 그것을 국가 행정력이 제대로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이 교회가 국가의 통제를 받는 시대는 아니라고 해도 남-북한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사안에 대해서는 국가와 교회 간에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이 글을 작성한 이후 12.3내란이 일어났고, 북으로 무인기를 보낸 것이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혐의가 특검에 의해 밝혀져 재판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언급은 미룹니다.)


아울러 아직도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생존해 있고, 우리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적성국으로 북한이 인식되고 있으며, 그들의 이념인 사회주의(공산주의)와의 대립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은 근-현대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기에, 북한의 교회와 협력을 하는 과정들 역시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남한 사회에 폭넓게 설명하고 공감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려면 먼저교회가 사회로부터 현재 보다도 더욱 강한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겠지요.)



(2) 북한성결교회 재건프로젝트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는 북한에 위치한 성결교회를 재건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사업 내용 자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성결 교단의 선교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현재 북한 지역에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결교회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실려있습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북한선교위원회 H.P.)

http://www.nkmc.kr/site/north-korean-church-reconstruction/


다만, 두 가지 아쉬운 점이 느껴집니다. 북한의 성결교회들의 역사를 보면, "○ ○ 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로 되어 있고 그 결과가 대부분 동일합니다. 즉, 해방 전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의 종교 탄압에 맞서 (당시엔 남-북의 구분 없이) 성결교회는 모두 자진 해산을 하였고, 해방을 맞아 남쪽의 성결교회는 재건이 되었습니다.(현재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전신)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성결교회'라는 독립된 교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지역에 있는 성결교회를 문 닫게 만든 주체'는 일본(총독부)이었는데 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또한 북한은 이미 남한과 별개의 국가인데, 과거 그 지역에 있었던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북한과는 어떤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방향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과제들은 현재 이 활동을 추진하는 관련 선교단체에서 충분히 고려하며 진행해 나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3) 동방의 예루살렘을 꿈꾸며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던 유대민족은 앗시리아와 바벨론에게 각각 멸망당하였고, 남유다의 수도이자 유대민족의 고향과 같던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됩니다. 이후 반쪽짜리 해방을 맞아 약 70여 년 만에 고향인 예루살렘에 돌아온 그들은 아래와 같이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공동번역, 에스라 3:11~13)

11) "야훼님 어지셔라" 하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사랑 끝이 없어라"하고 화답하며 야훼께 감사찬송을 불러 올렸다. 온 백성은 야훼의 성전 터가 놓인 것을 보고 너무 고마와서 환성을 올리며 야훼를 찬양하였다.

12)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가문의 어른들 가운데는 이전 성전을 본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렇게 성전 터가 놓인 것을 보고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13)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멀리까지 들렸는데 좋아서 떠드는 소리인지 슬퍼서 우는 소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포로로 끌려가기 전, 침략자들에 의해 파괴되기 이전의 성전의 모습을 어린아이였을 때 보았던 사람들이 인생의 말년이 되어 다시 고향에 돌아와 그 성전 터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입니다. 기쁨이었을까요? 아니면 슬픔이었을까요? 분단된 이 땅에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계시지만 교회 역시 분단된 역사를 함께 살아내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 힘의 논리에 따라 나라와 고향을 빼앗겼고 집과 교회는 파괴되었지만, 그 땅에 다시 집과 교회를 세우고 함께 살며 예배할 수 있다는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열강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이리저리 찢기고 부서지면서도 이 땅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 버텨왔던 한민족. 한반도의 북쪽 지역을 통해 들어온 복음의 씨앗은 20세기의 백여 년 동안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버티는데 필요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저항의 세월 속에서 무엇보다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성경 속의 유대민족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유대민족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니더라도 고향에 돌아와 다시 믿음의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섭리와 은총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는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남과 북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 북한에 있는 교회에서도 함께 모여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야 말로 에스라서에서 '이전 성전을 본 노인들의 울음'을 함께 터뜨릴 수 있는 날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분단이라는 고통' 역시 주님의 섭리와 은총이 아닐까 합니다.


(공동번역, 시편 17:8)

당신의 눈동자처럼, 이 몸 고이 간수해 주시고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 주소서.


한반도 땅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셔서 갈등과 분단의 역사를 딛고 평화를 일궈내는 그날까지 믿음을 가지고 굳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이뤄낸 평화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도 들불처럼 퍼져나가 세계가 평화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PS.1 조기련(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위원장:김상근 목사)는 북한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위원장:강영섭 목사)가 최근 명칭을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1999.4.7)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44


PS.2

『기독교와 주체사상』, 1993년, 북미주기독학자회 엮음, 신앙과지성사 출판

1989년 장신대 교회와사회연구원 총서로 성지출판사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된 『기독교와 주체사상』도 있슴.


작가의 이전글북한 지역의 기독교(개신교)의 역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