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크게 아픈 일 없이 대체로 건강하다. 지금까지 크게 부모 속을 썩인 일도 없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 그렇겠지만 얘들 얼굴 보며 사는 게 하나의 낙(樂)이다. 코 밑이 제법 거뭇하고 피부색에 기름기가 묻기 시작한 열여섯 녀석도 아직은 귀여워 보인다. 오만 어리광을 부리는 막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을 세상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바람이 아직은 이어지는 것 같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하하하. 이건 사실 오래된 거짓말이다.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생각은 중2가 된 첫째의 방문을 열기 시작한 순간부터 산산조각 났다. 아침에 열어도, 저녁에 열어도 다닥다닥 노트북 키보드를 쉴 새 없이 두드리고만 있는 놈. 이리저리 볼 것도 없이 게임에 빠졌다고 단정한다. 남들처럼 선행학습은 안 해도 책이라도 좀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눈 흘기니, 마지못해 한번은 바라봐 주는데. 공손하게 ‘알았어. 게임 오늘은 그만할게’라며 응대해 주길 원하건만 천만의 말씀이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너. 이제 그만하라는 여러 번의 성화에도 대놓고 무대답이다.
무대답. 아, 무표정은 넘어갈 수 있어도 무대답은 정녕코 참을 수 없다. 너무 화가 나 소리를 질러버렸다. 나, 너랑 이제 밥 안 먹어.
아내는 이렇게 내게 털어놓았다.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소릴 한 것 같다며 자책한다. 순간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왜 갑자기 ‘나, 너랑 이제 밥 안 먹어’였을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 상황에서 내가 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울그락불그락) “야, 방 좀 치워.”
뭐, 도긴개긴이겠네.
하여튼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란 바람은 어느새 (제발) ‘알아서만 공부해 다오’로 바뀐 지 오래다. ‘네 꿈을 펼쳐라’는 격려는 ‘넌 꿈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란 격정으로 변질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진짜 무엇이 문제일까. 아니, 문제가 맞다면 누구의 문제일까. 아들일까, 우리일까.
‘누구나’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그것도 본인이 ‘원할 때’ 말이다. 더군다나 ‘공짜’다. 학비 부담도 없는데 어떤 지역에 따라서는 생활비도 보태 준단다. 읽으면 읽을수록 눈이 뒤집힌다. 너무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때 대학을 우골탑이라 불렀다. 자식 공부시킬 돈을 위해 논도 팔고 소도 팔아야 시절, 부모 등골까지 다 빼먹었다고 하는 소리다.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87%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 등록금은 비쌀 대로 비싸다.
대학을 다니는 게 자유로운 그 나라엔 서울대 같은 일류대도 없다. 전체 대학의 90%가 국립이고 서열도 없으니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인생을 결정해 버리는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게다가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함께 참여한단다. 이사회의 50%를 각각 나누어 가질 수 있으니 못 돼먹은 자의 갑질로 함부로 잘릴 일도 없고, 소수의 탐욕이 부추기는 부당해고도 드물겠다. 경제전문가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노사공동결정제가 이 나라가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비결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이상하다. 아무나 대학을 가고 서울대 같은 일류대도 없어 영재교육도 안 될 텐데 어떻게 그런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반면 우리는 여기도 경쟁, 저기도 경쟁, 쟁쟁거리며 내 아이들이 뒤쳐질라 이리 밀고 저리 미는데도, 왜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오히려 15년째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하루에 6명씩이나 픽픽 쓰러져 죽어가는 산업재해 사망 1위 같은 오명만 늘어갈까.
막상 독일에서 만난 것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건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 내가 바라보던 하늘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제가 우리 사회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아마도 이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지요. p16
필자는 우리나라가 권위주의에 대항한 지구적 물결이었던 68혁명을 경험해 보지 않은 데서 그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또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적 경험을 자랑하면서도 사회와 경제, 문화 같은 분야에서는 진짜 민주주의가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종류의 사회 비판 서적을 꽤나 많이 읽었지만 이토록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너무 쉽게 풀어내고 있어서 사실은 좀 놀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사실 이 책의 결말 부분을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궁금하다. 우리의 불행이 당연하지 않다면, 다른 세계는 어떻게 가능하단 말일까.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이 한 문장.
우리는 함께 웃을 것이다.
p195
마지막 장의 제목이다. 단언하는 그의 메시지에 용기를 얻어 잠시 멈추었던 나의 독서를 진행시킨다. 그렇다. 문제는 내 아들의 무표정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우리 어른들이었다. 한창 자유롭게 상상하며 웃어야 할 아이들이 지옥 같은 경쟁에서 하루가 다르게 웃음을 잃어가고 주눅 들어가는 건 결코 옳지 않다. 작가인 김누리 교수의 다른 세계 이야기에 좀 더 빠져들고 싶다. 내 삶도, 내 아이들의 삶도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