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중고가 없다
그 문학성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얼마 전 회자된
'잔혹동시'에 내재된 심상처럼
극단은 힘없는 이들의 피난처이며,
힘 있는 편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에 의해서 그리 불릴 뿐,
그들 스스로 극단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무시당할 정도로 약하고,
우리가 그들을 무시할 정도로
시쳇말로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극단이라고 한다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쩔 수 없는 삶이 있는 탓에
역사 속 모든 시대에도 존재했고,
이 시대 역시,
삶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가진
오늘의 극단이 존재한다
힘 있는 우리는 광장에 서서
그들에게 허접한 정의를 가르치고,
구석에 모여 우리의 가면 쓴
정의를 꾸짖는 그들에게
요즘의 우리는 대개 비겁하다
힘 있는 편에 서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할 수도 없으며
힘없는 편에 서서
힘을 과시하는 것을 당연히
그르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살을
개인의 선택이라 무시하고라도
탈레반이나, 이슬람 국가는 물론이고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 등에
희생된 이들은 전혀
힘이 센 사람들이 아니다
힘없는 이들의 만용이
극단으로 불릴 때
힘 있는 이들의 무관용은
광기(狂氣)라고 불리며,
그것이 훨씬 더 우리를
참혹하게 한다는 것에 대한
동정이 있어야 할 터다
우리의 거리에 서면 얼마나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맞춰가려는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가 있다
힘이 말하는 우리들의 세계에서
따돌림의 공포를 개성이라고 부르는
자기기만이 내재된 힘에의 추종인데,
그것조차 힘들면 극단이 될 터다
'내'가 언제 극단이 될지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이
요즘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