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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해 Mar 22. 2020

알고 타면 더 재미있는 지하철 2호선의 비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한번쯤 궁금했으나 굳이 안 찾아봤던 것들

Q1) 2호선 노선도 색깔은 왜 초록색일까?

디자이너 Jug Cerovic와 네이버가 함께 디자인한 수도권 지하철 노선


23개의 각기 다른 노선들이 엉켜있는 수도권 지하철 노선은 저마다의 고유한 색을 자랑한다. 2호선은 초록색, 3호선은 주황색, 5호선은 보라색... 그럼 서울교통공사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색깔을 정했을까? 설마 그럴 리가!  노선의 색상은 처음부터 계획된 색상이다.


알록달록 노선도를 가만히 보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무지개!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 색상의 기준은 바로 무지개 색상이다.


빨주노초파남보..
그럼 1호선은 빨간색이어야 되잖아?!
<응답하라 1994> 속 빨간 노선도의 1호선


1호선은 원래 빨간색이었다.  2000년 5월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수도권 전철이 통합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실제로 지금도 1호선 열차를 보면 빨간 색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무지개의 첫 번째 색깔인 빨간색이 1호선으로 정해진 뒤에는 보색 계열인 초록색이 2호선으로 정해졌고, 3호선은 무지개의 두 번째 색상인 주황색, 4호선은 다시 이에 대한 보색 계열인 파란색. 5호선은 빨,주,초,파가 다 쓰였으니 다음 색인 보라색으로 정해진 것이다. (노란색은 주황색과 색상 구별이 잘 되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고, 남색은 이미 수도권 전철의 색상이었다.)


6호선부터는 이미 무지개 색이 다 활용되었기 때문에 타 노선 색상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 색상을 골라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국철과 연결되기 전 아직은 빨간색이던 1호선


Q2) 2호선에는 왜 이렇게 대학 이름을 딴 역이 많을까?


건대입구, 한양대, 이대, 홍대, 서울대입구, 낙성대, 교대. 2호선에는 유독 대학교 이름의 역이 많다. 이 중에서도 서울대입구역은 역에서 실제 서울대 정문까지의 거리가 무려 2km에 달하는데도 서울대입구역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굳이 이렇게 대학가에서 학교의 이름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시대적 배경이 존재한다. 

서울대 3대 바보 중 하나, 서울대입구역에서 정문까지 걸어가는 사람

2호선이 개통될 무렵인 1980년이 바로 12·12 사태 직후였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괜히 대학가를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학교 측의 요구가 있다면 다 들어주곤 했는데, 이에 따라 동교역은 홍대입구, 화양역은 건대입구역, 그리고 관악역은 서울대입구역이 되었다고 한다.


Q3) 한양대역은 어떻게 캠퍼스 안에 있는 걸까?

한양대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풍경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한양대생을 가장 부러워하는 절대적인 한 가지 요소는 지하철 역이 캠퍼스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한양대역은 캠퍼스 안에 위치하게 되었을까? 한양대생 사이에서는 지하철 개발 당시 지하철 공사에 한양대 공대 출신이 많아서 굳이 없어도 될 한양대 역을 뚝섬역과 왕십리역에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십리 6번 출구부터 한양대 정문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린다.


한국 제1호 도시학자로 불리는 손정목 선생님의 역작


하지만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시 도시계획 관련 연구 권위자인 손정목 선생님의 책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보면 2호선 개발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구자춘이 직접 지도 위에 줄을 그어 단 30분 만에 노선 계획을 완성했다고 한다. 구자춘 시장은 대구사범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한양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지하철 2호선 개발 이전에 이미 있었던 왕십리역에서 뚝섬역, 성수역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딱 한양대가 있었을 뿐! 따라서 인자기급 위치 선정으로 한양대는 캠퍼스 안에 지하철 역을 얻은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Q4) 신천역은 갑자기 왜 사라졌을까?

여전히 낯선 이름...

친구들 중에서 개명하는 친구들이 조금씩 있는데 오랫동안 불러온 이름을 새로운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지하철역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주 가던 신천역이었기에 여전히 친구들끼리 약속 잡을 때 '신천역에서 보자'라고 하는데, 누군가 '야 신천역이 어딨냐? 잠실새내역으로 바뀌었어'라고 굳이 정정해주는 일을 매번 본다.


그럼 신천역은 왜 갑자기 잠실새내역으로 바뀐 걸까? 오래전부터 송파구의회에서 서울시에 역명 변경을 요구했는데 그 요구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신천역이 행정구역상 신천동이 아닌 잠실동에 위치하고 있어 소재지와 역명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외지인이 같은 2호선에 있는 신촌역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잠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동산 프리미엄을 얻으려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도 있었으나 어쨌든 서울시 지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17년부터 신천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잠실새내역 바로 옆에 있는 잠실나루역의 위치가 바로 신천동인데, 잠실나루역의 원래 이름은 성내역이었다. 그런데 성내동은 강동구에 있기 때문에 혼동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꿨다. 애초에 잠실나루역이 신천역이었다면 바뀌지 않았을까?


Q5) 대체 성수행, 신도림행은 왜 있는 걸까?

성수행 때문에 지각한 게 몇...번이었..던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지하철을 탔는데 하필이면 타고 있는 지하철이 성수행이라 수업에 지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성수행을 원망하곤 했는데, 대체 성수행 신도림행은 왜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지하철도 쉬어야 하기 때문. 이들의 쉼터는 위쪽에는 군자차량기지, 아래쪽에는 신정차량기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영업운행을 마친 열차의 정비와 점검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곳으로 향하는 선로가 성수와 신도림에 있기 때문에 딱 거기까지만 운행되는 것이었다. 일하다가 드디어 쉬러 가는 지하철을 원망했다니! 앞으로는 성수행, 신도림행 지하철에게 수고했다고 토닥여줍시다.


군자 차량기지에서 쉬고 있는 지하철

Q6) 막차는 왜 삼성행, 을지로입구행, 서울대입구행에서 끝날까?


늦은 밤 막차 시간을 겨우 맞춰 탔더니 삼성행, 혹은 을지로입구행 지하철이라 결국 거기까지 간 다음에 따릉이를 타고 집에 가거나 택시를 타는 일이 종종 있다. 순환선이면 끝까지 돌아주면 좋았을 것을.. 막차에 종점이 왜 있는 거고, 또 하필이면 내 목적지와는 거리가 좀 있는 을지로입구행, 삼성행, 서울대입구일까? 


첫차가 출발하는 역들

그건 바로 다음 날 첫차 배차를 맞추기 위해서다. 방금 전 성수, 신도림 근처에 열차들의 쉼터인 차량기지가 있다고 했으니 거기에서는 당연히 첫차가 출발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두 역에서만 열차가 출발한다면 두 역 사이에 있는 역들에는 엄청난 배차시간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 사이에 미리 열차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 날 막차를 그곳까지 운행시킨 뒤 다음날 출발하는 것이다. 


2호선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그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한 번쯤 궁금했으나 굳이 안 찾아봤던 질문들. 알아보니 모두 명확한 계획과 이유가 있었다. 뭐든지 알고 보면 더 재밌어지는 법. 여러분도 함께 지하철을 타는 친구에게 2호선에 숨겨진 재미난 에피소드 잘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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