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거침없는 자유인

by 하숙집 이모

종심(從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유인의 삶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은 삶. 율법이나 규범을 벗어나 스스로를 구원한 자유인 말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 자유인입니다.


조르바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책의 저자(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실존 인물입니다. 조르바가 젊은 시절에 조국 그리스를 위해 전장에 나갔을 때 적군에게 들켜 도망하던 자신을 구해준 과부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 과부는 다음날 다시 와달라고 부탁을 하죠. 다음날 조르바는 휘발유와 폭탄을 들고 그 마을을 찾아가 모두 불태워 버립니다. 조국을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 직업이 신부이면서 비정규 전투요원인 불가리아 사람이 그리스인을 살해한 사실을 알고 밤에 찾아가 그 신부를 살해하기도 합니다. 며칠 뒤 고아가 된 신부의 아이들이 마을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대면합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고 지구가 연자매 돌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벽에 기대어 앉고 나서야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불러 자신이 지닌 돈을 몽땅 건네줍니다. 조국도 신도 돈도 더 이상 그에게 가치가 없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얽메고 있던 어떤 가치로부터 해방이 되고 자신의 짐을 덜어내고 구원의 길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저자가(이 책에서 화자인 나로 쓰이고, 조르바는 두목이라 부름) 조르바를 만나는 날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조그만 카페 안에서 친구와 헤어지던 순간을 추억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그리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조국으로 떠난 것이었죠. 그들이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자네나 나나 죽음의 위기를 맞거든 상대를 아주 강렬하게 생각해서 상대가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위험을 알 수 있게 해주기로 하는 거야.......? 됐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친구의 이름을 강하게 불러 자신의 위험을 알 수 있게 해준다니,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대목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르바가 '여행 중이냐, 어디를 가느냐, 하나님의 섭리만을 믿고 가느냐?, 나도 데리고 가 달라'라며 등장을 합니다. 자신은 모든 일을 성실히 할 것이다, 수프를 만들어 줄 요리사라고 생각하며 데리고 가달라는 청에 웃으며 승낙을 해요. 처음 본 사람을 말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청을 승낙한 이유가 맛있는 수프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이유보다는 저자의 할아버지가 여행객들을 청해 자신의 집에서 묵게 하며 당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던 어릴 적 경험으로 저자 역시 조르바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그렇게 둘의 동행이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이런저런 모양을 비교해 보면,

조르바는 60대 중반의 중늙은이고, 저자 카잔차키스는 34세입니다.

조르바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고 저자는 이성이 허락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조르바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저자는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습니다.

조르바의 결혼 이력은 정당하게 1번, 부정하게는 1천 번 아니 3천 번쯤?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말로 설명을 합니다.

저자는 어느 날 빈의 극장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과 데이트 약속을 하고는 갑자기 입술과 턱이 부어오르고 얼굴에 발진이 생겨 데이트 약속을 다음날로 미뤘는데 얼굴의 부기나 발진 상태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때 만난 심리학자가 당신은 성직자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빈을 떠나 그 여자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낫는 병이라고, 그래서 빈을 떠나는 기차는 타고 1시간쯤 지나자 얼굴의 부기와 발진 등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공통점이라고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광산에서 갈탄을 캐는 일을 하며 한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삶을 공유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머물러 가만히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부분을 소개하면,

조르바가 러시아에서 일할 때 대화가 통하는 친구와 있었어요. 조르바가 러시아 말을 할 줄 아느냐고요 아닙니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예, 아니오, 빵, 물, 사랑한다' 정도의 몇 단어 정도였는데 러시아 친구와 서로 아이가 몇인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모조리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춤이었어요. 입의 언어로 말을 하다가 알아듣지 못할 때 그만!이라고 외치면 춤을 추는 것입니다. 춤을 통해 온몸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웃고 울고 뒤엉켜 한마음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조르바가 저자에게 말하는 대목입니다.

"몸은 벙어리를 만들어 버리고 주둥이만 나불거리고 있어요. 하지만 주둥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주둥이가 당신한테 뭘 알려 줄 수 있어요? 아, 당신도 보셨어야 하는데! 그 러시아 친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온몸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얼마나 잘 알아들었는지!"


대화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톡이나 문자로 몇 마디가 전달됩니다. 그럼 또 몇 마디의 대답을 자음과 모음을 나열해 보냅니다. 서로 말을 더 이어가기 뭣한 상황이 될 때 이모티콘으로 마무리를 하죠. 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로 목소리를 통해 감정이 전달되고 그래서 오해가 없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정이 없어,라면서 아쉬워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통화할 때는 예전에는 말을 하려면 찾아가서 얼굴을 봐야 하니 가는 동안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전화란 게 생겨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통화를 하고 그래서 문제가 많다며 아쉬워했었어요.

그런데, 조르바가 말합니다. 몸은 벙어리를 만들어 버리고 주둥이만 나불거린다고요. 책을 읽는 동안 저도 춤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지닌 진심을 전달하고 싶어졌습니다.

떨림, 웃음, 힘찬 발걸음, 훨훨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벌린 팔, 그리고 먼발치로 향한 손가락 끝, 그 끝을 향해 머무는 시선, 흔들리는 머리카락, 얼굴에 맺힌 땀...... 춤을 통해 여러 감정들, 감격, 행복, 환희, 그리움, 사랑, 열정을 전달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들의 사업이 실패로 끝나고 조르바와 헤어지기 전, 조르바의 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조르바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춤을 배우고 더 대담하게 춤을 추고 그리고 느끼는 감정은 해방감!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에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은,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고 있다' 고 고백합니다.

'조르바의 언어는 자유다. 조르바는 자유였다.'라는 뜻이겠죠.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어떤 능력자는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합니다(조르바식 표현입니다), 그러나 조르바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합니다.

조르바의 다음 말을 통해 자신을 굴복시키려 하는 적에 대한 태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밤, 눈 덮인 마케도니아 산에 굉장한 강풍이 일었습니다. 조르바가 살고 있는 오두막을 뒤흔들며 뒤집어 엎으려고 했을 때, 미리 버팀목을 대고 필요한 곳을 보강해 둔 후 "이것 보게, 아무리 그래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 없어,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 되네."

눈앞에 필연적으로 다가온 불행이나 상황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을 테니까."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외적인 재앙이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저자도 보이지 않는 적에게 조르바처럼 말합니다.


조르바를 언급하면서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정당한 결혼은 1번 정당 비슷한 것은 3번 그리고 부정한 것은 수천 번을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람둥이는 아닙니다. 매 순간 진심이고 온 맘과 정성을 다합니다.


이 남자의 행동 중에서 특히 칭찬을 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어요.

크레타 섬에 와서 만난 늙은 오르탕스 부인이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의기소침 해졌을 때 모르는 척할까, 가서 달래줄까 아주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달래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온갖 아름다운 언어들로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고 함께 식사하는 부분엔 고마운 감정이 들기도 했어요. 그 나이에 청승 떨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을 텐데 오르탕스 부인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대하듯 행동을 한 것입니다.


저자가 오르탕스 부인의 앵무새가 두 사람의 침대 위에서 조르바라는 이름 대신 카나바로(오르탕스 부인이 젊고 예뻤던 시절 연애를 즐기던 제독의 이름)를 외치면 기분이 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때 조르바는 아주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합니다. 자신이 젊은 제독이 된 것처럼 힘이 넘치고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부분은 세상 순진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중개소를 차리고 싶다는 말을 할 때입니다.

뭔가 조건이 부족한 여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상대를 찾아주는 중개소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여자들은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극진한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남자들을 원하는 상대로 교육을 시켜 그 여자를 사랑하게 해주고 싶다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조르바라면 그럴 거라는 인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행동은, 크레타 섬에 아름다운 젊은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마을의 남자들은 과부를 사모하고 여자들은 질투를 합니다. 그 과부를 사모하던 마을의 청년이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살을 합니다. 그 일로 과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의 적의가 높아졌습니다. 과부가 교회에 기도하러 간 날 마을 사람 전체가 과부를 공격합니다. 그때 조르바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온몸으로 막습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고 결국 과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조르바는 사람들에게 어리석고 비겁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봐도 저자와 마을 사람들이 비겁했습니다. 저자도 과부의 잘못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조르바처럼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습니다. 조르바는 어느 순간이든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조르바의 어록 중 공감이 되고 부끄러운 저를 발견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란 구멍가게 주인과 같은 거예요. 계속 장부에 적으며 계산을 해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아주 좀상스러운 소매상이지요. 가진 걸 몽땅 거는 일은 절대 없고 꼭 예비로 뭘 남겨 둬요. 머리는 줄을 자르지 않아요. 아니 아니지!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려요. 이 잡것은! 붙잡고 있던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하다가 정말 끝장나 버려요. 그런데 사람이 줄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산다는 게 무슨 맛이겠어요."

그렇죠, 늘 계산을 하며 살아요. 조잔한 것까지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소심하게 계산을 합니다. 작은 손해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모험이나 호기 있는 행동을 하고 싶어도 계산을 하다 보면 생각은 잠잠해지고 다시 좀스럽게 됩니다. 그 줄을 끊어 버려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데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해요. 그냥 계산만 하며 시간을 보내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쓸쓸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책을 읽기전 이 명작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습니다.

바람둥이, 카사노바,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르바란 이름이 읊조려질 때 대부분의 느낌이 그랬습니다. 간혹 어떤 남자들의 입에서 자신이 조르바와 같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쭙잖은 바람둥이 같았습니다. 순전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 그랬습니다. 책을 읽으며 오해는 사라지고 조르바의 생각이나 행동, 말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미워하겠습니까, 일에나 사랑에 어정쩡하지 않게, 뭐든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사람,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 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삶을 대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요?


조르바는 조국이나 신을 거부합니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신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걸핏하면 하나님께 대들면서 따집니다. 그리고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그와 반대로 저자는 오랫동안 성직자의 삶을 살고 싶어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는 수도자들을 만나고 파계한 수도자도 만나보지만 그 속에 구원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구원한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의 삶을 마주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조르바를 배우고 싶다. 조르바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다고요.

이 책 뿐만아니라 저자의 다른 책들에서도 구원에 대한 태도는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저서 중 일부는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금서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저자나 조르바의 사상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 공감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시대사조가 지금과 그 시절은 많이 다릅니다. 특히 여자의 지위는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사람이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가 아닐까요. 그래서 창조주께서도 자유의지를 주신 게 아닐까요. 그 자유를 어떻게 누리느냐는 각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조르바는 자신만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 그 자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 낸 단어가 종심(從心)이었습니다. 조르바는 종심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참 많은 책이었습니다. 자유를 원하시건든, 자유를 꿈꾸시거든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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