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놀이터를 방문하다

공감을 연습한다.

by 하숙집 이모

꽃과 나무와 산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식당의 주방은 참으로 답답한 공간이다. 그리고 답답함을 조금 해소하는 장소가 원룸 옥상이다. 그곳엔 블루베리 나무와 국화 화분 소나무와 단풍나무 분재가 있고 몇 가지의 화초가 있다. 틈만 나면 "놀이터 다녀올게"라며 사라졌다가 학생들 식사 준비할 시간에 맞추어 내려온다. 어느 땐 취미생활에 빠져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다급해진 내가 전화를 해야 내려올 때도 있었다. 그러한 일로 몇번의 다툼 후에 일 시작 5분 전까지 내려오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요즘 옥상에서 최대 관심사는 블루베리나무다. 4월 초부터 블루베리꽃이 피었다가 며칠전에 내린 비로 거의 다 떨어졌고 6월 열매 수확이 예정되어 있다. 보랏빛 열매가 모양도 예쁘고 맛도 참 좋다. 작년엔 다섯 그루의 나무에서 꽤나 많은 블루베리를 수확하여 과일로 먹고 샐러드드레싱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하고 하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이웃 상가의 언니들께도 드리고 가까운 지인들께 대접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을 수확했었다.

블루베리 꽃과 벌 , 하숙생 어머니가 선물하신 화초, 각종 분재와 블루베리분


난 이 옥상에 일 년에 서너 번 올라갔었다. 블루베리가 익어 수확할 때 한두 번, 가을에 국화꽃이 한창일 때 한두 번 커피를 들고 구경을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해야 다섯 차례를 넘지 않는 듯하다. 무심하다는 소리를 여러차례 들었으나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불편한 감정들이 발길을 막고 있었다.

6월 블루베리 열매와 가을 국화



최근에 TV를 보다가 말다툼을 했다. 한 청년이 어린 시절 고생을 많이 했는데 열심히 살아온 덕에 지금은 살만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 고생이라는 말에 "에고 딱하지" 했더니 "뭐가 딱하냐"고 잘살고 있으면 되었단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면 될 것을 괜히 기분 상한 나는 "내 어린 시절 고생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딱한 마음이 들어 한 말에 그냥 고개나 끄덕이든지 그래 힘들었겠다 하든지 아니면 아무런 말을 하지 말든지 하면 될 것을 내 말에 딴지를 건다"고 시비를 걸어 버렸고 적당히 넘어갈 일에 공감을 못한다고 덧말까지 씌워 뭐라 했더니 "당신은 공감을 얼마나 잘하냐"고 신경질을 내는 것이다.


결국 공감을 잘하네 못하네로 말다툼을 하다가 서로 마음이 상해 입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며칠 후 브런치에 발행한 글 '엄마는 이쁜 신발을 신는 사람'이 다음 홈앤쿠킹 공간에 올라갔다. 이전 글들이 메인에 보였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공감의 표시가 나를 흥분시켰다. 생각지 못한 기쁨이고 흥분이었다. 소소한 행복의 글이 누군가에게도 웃음 짓게 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남편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살며시 다가가 꽃이 이쁘게 피었다고 덕분에 일 년 내내 여기는 꽃밭이라고 슬쩍 고마운 말도 건넸다. 남편의 소소한 행복에 나도 공감을 표시하겠다고 속마음을 품고 소심하게 표현했다.


최근에 아버님 사시는 집 옆에 아주 작은 농지를 구입했다. 남편이 원하던 나무와 꽃을 심을 놀이터로 안성맞춤이다. 여러 날 전에 남편이 사과를 먹으며 씨를 골라냈다. 옥상에서 사과 싹을 틔우고 시골 놀이터에 사과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걸 언제 키워 그럴듯한 나무가 될까 생각하다가 몇 해 전 씨앗으로 심은 소나무가 제법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 기억하고는 한번 해보시라고 구경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과씨로 틔운 새싹

마음속으로 공감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후 남편의 놀이터에 여러 번 방문을 했다. 이전에 블루베리 꽃이 피었다고 옥상에 몇번 올라갔었고, 사과씨가 싹을 틔웠다고 해서 오늘도 다녀왔다. 두 주 전엔 시골 놀이터에도 다녀왔다. 무슨 나무를 심을까를 함께 의논했다. 남편은 철쭉 나는 두릅나무, 남편은 국화 나는 표고버섯목, 남편은 화초에 관심을 가졌고 나는 생산성 있는 먹거리에 관심을 보였다. 의견일치가 어렵다.

시골 작은 땅에 심은 국화와 남천 철쭉


남편은 보리수를 심자고 말했고 나는 보리수의 덟은 맛이 별로라고 말했다. 의견 일치가 안되기를 여러번 반복 후 살구나무를 심을까 말했다. 난 그것은 좋다고 했다. 베롱나무를 심을까 또 물었다. 나는 너무 좋다고 말했다.


28년을 함께 살았는데 공감은 쉽지 않았다. 공감도 연습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공감을 못한다고 핀잔하지 않고 내가 먼저 공감을 시작했다.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읽히고 빙긋 웃음담은 하트표시에 행복을 느낀 것처럼 남편의 작품에 나도"좋아요"를 말하고 이쁘다고 당신의 작품이 훌륭하다고 덧말을 시작했다. 남편도 나의 공감으로 행복하길 바라며 발길을 옥상 놀이터로, 시골 놀이터로도 옮기고 그동안 발길을 막고 있던 여러가지 불편한 마음들을 치워보겠다는 작정을 했다. 사과씨가 나무가 되어 꽃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