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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아부 May 09. 2020

승무원은 런던에 걸어간다?

"오늘도 열심히 영국에 걸어왔다!"


런던에 걸어간다? 이 말은 내가 재직했던 항공사에서 한국인 승무원들끼리 주로 주고받았던 말이다.

에티하드항공은 내가 2번째로 입사한 항공사다.

에티하드항공에 입사하기 전에 중동에 있는 타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을 했었는데, 한국인 비율이 다소 적은 에티하드항공에 비해 이전에 재직했던 회사에서는 한국인 비율이 다소 높아 한국인들과 함께 비행한 경우가 많았다.

런던비행은 하루에 많게는 3편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들과 비행을 많이 했었고 우리들끼리 주로 이런 표현을 썼는데, 아마 타항공사 승무원들도 이런 표현을 쓰지 않을까 싶다.


과연 런던에 정말 걸어갈까? 물론 아니다.

걸어간다는 의미는 그 비행에서 계속 걸어다녀서 그만큼 힘들었다는 의미다.

보통 영국까지의 비행시간은 6-8시간 정도인데, 이륙 후 매뉴얼상의 기존의 서비스가 끝남과 동시에 콜벨(승객이 승무원을 부르는 호출 버튼)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콜벨은 끝날 기미 없이 계속 울리고, 영국 히드로공항에 랜딩하기 직전(착륙을 위해 승무원이 점프싯에 앉는 순간)까지 계속 일을 하기 때문에 잠시 앉을 틈도 없어 런던까지 걸어갔다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비행마다 매번 손님들은 다르지만 그 비행마다의 특징은 거의 비슷한데, 주관적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다소 승객들의 요구사항이 많고, 조금.. 힘든 비행이다...

일단 하루에 여러 비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은 항상 만석이며, 그 말은 곧 승무원들의 업무강도 또한 높아짐을 의미한다.


런던 비행에서 쉴 수 없는 이유 

콜벨 99999999개

베지테리안 밀을 요청하는 승객보다 실제 기내에 실리는 베지테리안 밀은 부족하다. 부족할 경우 승무원이 만들어야 한다. 매번 10개 이상 만드는 건 기본!

british passport를 가진 인디안 승객들. 타회사와 비교하며 끝까지 뽕을 뽑으신다. 일하면서 종종 승객들이 '어느 국적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 말을 많이 하는데, 처음엔 신기하고 생소했지만 이젠 익숙하다.

아프리칸 단체 그룹. 내가 얘기했던 승객들은 수단, 소말리아 승객들이었는데 처음 런던비행을 하면서 이들이 무슬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타는데, 보딩 때부터 나보다 건강해 보이는 그녀들은 오버헤드빈에 짐을 올리지 않고.. 또 차(tea)를 마실 때 우리가 제공하는 컵은 너무 작다며 본인의 큰 병을 꺼내는데 미처 다른 승객한테 가기도 전에 차가 바닥나는 게 다반사다.

등등등등..


힘든 이유는 많지만 부정적인 얘기를 세세하게 적고 싶지는 않아서 이 부분은 대충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특히 런던비행은 다른 비행보다 승객들의 기대치가 다소 높고, 컴플레인이 잦은 demanding 한 비행인 것 같다. 그렇기에 매번 컴플레인과의 전쟁이 있지만, 힘든 비행을 마치면 런던이라는 매력적인 도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비행의 스트레스는 금세 사라진다!




반면, 꿀비행도 물론 있다.

크루 10명 중 9명은 공감하는 곳!

대부분의 크루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꿀비행은 바로 필리핀의 마닐라다!

우선 로스터(승무원이 받는 비행 스케줄)에서 마닐라가 있으면 마음이 굉장히 편하다.

마닐라비행 시작 전 이루어지는 브리핑에서부터 분위기가 참 좋다.

크루들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온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다들 행복이 써있다.

필리핀 승객들은 정말 친절하고 항상 흥이 있다. 보딩(승객들이 항공기에 탑승하는 시간) 때부터 그들은 상냥하게 웃어주기 때문에 나도 그 긍정의 기운을 많이 받고 또 그들에게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딜레이가 되거나 원하는 기내식이 없는 경우 등 승객에게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에도 그들은 우리를 잘 이해해준다. 아무래도 컴플레인이 적고 비행이 전반적으로 스무스하기 때문에 승무원 입장에서도 스트레스가 적어서 마닐라비행을 꿀비행이라고 하는 것 같다.

또 우리에게는 마닐라의 마사지와 아시안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까! 물가도 사랑스러운 곳!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꿀비행은 야간 인도 비행이다.

특히 나는 남인도 비행을 선호하는데, 남쪽 사람들이 조금 더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 비행에서는 베지테리안음식을 제외하면 딱히 힘든 부분은 없다.

아무래도 인도비행이 환승승객이 많아서 그런지, 주로 야간비행이 많은 편인데 내가 실제로 갔었던 비행들도 대부분 밤비행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비행시간이 짧으면 시간 내에 급하게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널널한 비행을 좋아하는데, 인도비행이 대부분 4-5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딱 좋다!

서비스를 할 때에도 시간의 구애 없이 여유롭게 할 수 있고, 서비스가 끝나면 오랜 환승으로 지친 승객들이 대부분 잠을 자기 때문에 조금 숨을 돌리고 커피 한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잔잔한 비행이다.

하지만 가끔 너무 잔잔해서 스르르 감기는 눈을 극복해야 한다.

이럴 땐 억지로라도 움직이려고 할 일을 찾고, 기내를 막 돌아다닌다. 승객에게 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


9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오늘도 무사 도착!

졸음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너덜너덜해진 채 이른 새벽에 집으로 향하는 그 퇴근길은

정말이지 아직도 적응이 안되지만 출근 길이 한창인 반대편 도로의 차들을 볼 때 그 기분은 왠지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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