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브랜드인가?

B매거진 10주년 기념 전시

by 민근

B매거진 10주년 전시에 대해 기대는 없었다. 주변 반응이 대부분 그저 그랬다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터덜터덜 언덕을 올라 전시장소인 피크닉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시에 영하는 아니지만 한자릿수 기온으로 조금 추웠던 탓에 나의 오래된 아이폰 6S가 방전됐다. 기대가 없어서일까 핸드폰 방전돼서 사진 못 찍겠다는 아쉬움이 들지는 않았다. 6S가 기절해서 큐알코드 대신 수기로 코로나 명부를 작성하고 만 오천 원의 표를 검사 후 들어간 전시장의 시작부터 벽면에 보이는 브랜드에 대한 질문들을 보고 어쩌면 만 오천 원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새로 바꾸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전시 초입의 작은 방 벽면 가득 채워진 B매거진의 밀도와 스케일감은 상당했다. 천장 높이 벽면 가득 끝까지 채워진 매거진들이 나에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동안의 B매거진의 여정을 우러러보게 하더니 다시 어두운 공간으로 이동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브랜드에 대한 질문들이 마치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텍스트 애니메이션같이 느껴졌다.


물결처럼 흐르는 가벽이 동선을 유도하며 브랜드에 관한 질문들을 하나씩 던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질문들이 브랜드 창립자들에게 하는 질문인 것 같지만 브랜드 디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디자이너라면 단순히 벽면을 치장하기 위한 시트지 도배가 아닌 꽤나 진지한 질문으로 생각됐을 것 같다.


대부분의 질문에 브랜드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담긴 대답을 속으로 명확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무언가를 해도 될 때가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질문 같지만 브랜드라는 주제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들은 전시의 본격적인 시작 이전에 관람객에게 "이제 우리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할 테니 긴장해. 너는 정말 브랜드에 대해 잘 알고 있니?"라고 간을 보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나는 그런 긴장을 하게 됐다.


이어지는 방엔 B매거진의 발행 호수들 각각이 커다랗게 숫자로 표기된 인쇄물들이 순서대로 달력처럼 벽에 걸려 있었다. 동시에 해당 호수에서 다루었던 브랜드가 전면에 표시되어 있고 펼쳐보면 해당 브랜드에 대한 인터뷰 내용 일부가 담겨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브랜드를 직접 선택해 수집이 가능한 낱장의 인쇄물들에는 매거진 내용 일부가 담겨있고 인쇄물 낱장의 물리적 지면이 끝나는 곳에서 과감히 내용이 끊겨있어 마치 미리보기와 같았았는데 본체를 구매해서 빨리 뒷 내용을 보고 싶게 만드는 기발한 마케팅 전시 구성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더불어 내가 관심 있는 브랜드를 선택해 수집할 수 있게 하여 나의 관심사가 어떤지 넓은 시각에서 추려볼 수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가 수집한 것들을 모아보니 주로 가구, 스포츠, 환경에 대한 브랜드였다.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이기 때문에 내가 관심 있는 브랜드들이 주로 속해있는 분야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본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애플뮤직이나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에 가입한 후 가장 처음으로 유저의 취향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맞춤 콘텐츠를 제공하려 하는 최근의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의 UX플로우 같은 전시 구성이었다.

아직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던 브랜드들이 다음 방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1호부터 최신호까지 각각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오브젝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설명을 보지 않고 오브젝트만 보아도 아 이건 어떤 브랜드라고 내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또 오브젝트 자체는 낯설어도 그것에 새겨진 로고가 친숙한 브랜드도 있었고 전시에 공통적으로 쓰인 폰트로 인쇄된 이름만 읽었을 때는 무슨 브랜드인지 몰랐으나 로고까지 같이 보니 내가 잘 아는 브랜드인 경우도 있었다. 제품과 로고 모두 친숙한 브랜드는 이름을 전시 텍스트로만 읽어도 그 브랜드의 모든 것들이 연상됐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1개 또는 매우 적은 종류와 개수의 오브젝트가 브랜드마다 놓여 있었는데 그것만 봐도 브랜드 전체의 일관된 이미지, 그 브랜드의 어떤 맥락, 통일된 시스템이 머릿속에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브랜드들에 대해서는 그 브랜드에 대한 기억들이 매우 친숙하고 강하게 떠올랐다. 그 경험을 할 당시에 느꼈던 기분과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전시된 브랜드 오브젝트 스스로가 현장에서 전달하고 뿜어내고 있는 감각 경험과 큰 차이가 없는 게 놀라웠다.

B매거진에 대한 마지막 공간엔 일부 브랜드의 창립자들 인터뷰가 재생되고 있었다. 모두 끝까지 감상하진 않았는데 그들의 단호한 태도와 자신의 서비스, 철학에 대한 확신은 공통적으로 느껴졌다. 굳이 하나하나 다 보지 않아도 뭔가 그들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어떤 연대감, 신념이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전시를 먼저 본 지인은 이 전시를 보고 브랜드가 뭔지 더 헷갈려졌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이 전시가 단순히 B매거진의 자축 전시 이상으로 브랜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잘 짜인 필터 같은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통해 브랜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건 브랜드고 저건 브랜드가 아니다고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고 어떤 것을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세워봤는데 나는 결국 일관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부 제품만 보고도 전체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는 일관성. 과거 경험이 현재의 경험과 이어질 수 있는 일관성이 있는지가 브랜드를 결정짓는 기준이라고 스스로 정립해본다.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로서 가볍게 생각해보자면 내가 먼저 나서서 협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 아니면 협업 제안이 와도 얘네랑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가에 대한 차이가 브랜드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일관된 정체성에 공감해 그것으로부터 무한히 펼쳐지는 가능성에 영감을 얻어 아티스트나 타 기업이 먼저 협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브랜드는 성공한 브랜드. 반대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한의 가능성에서 헤매게 한다면 실패한 브랜드이거나 아직 브랜드로 성장하지 않은 기업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B매거진 전시에서 보이는 브랜드들은 적어도 일관된 맥락 아래 각각의 장르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기업이 해당 장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다면 그 기업은 브랜드로서 성장한 것이 아닐까. 교실에서도 그림은 누가 잘 그려, 수학은 누가 잘해하고 매 교과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둘러싸이는 반 친구가 있는 것처럼 공감되는 일관성과 기본적인 상식선의 실력을 갖춘 친구. 그래서 함께 놀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그런 친구. 그게 브랜드인 것 같다.


가볍게 보러 갔다가 B매거진 앞으로 종종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좋은 인스타 감성 사진 게시물로 소비될 수 있겠지만 브랜드 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은 전시.. 마케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