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이제 내 열등감은 당당하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희도처럼

by 민근


재수하고 21살, 대학에서 처음 만난 사람 중 지금까지 친하다고 생각하고 존재만으로도 항상 나에게 자극을 주는 동갑내기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와 안지가 이제 10년이 다됐다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친구에게 10년 동안 줄곧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 친구와 실제로 현실에서 함께 했던 시간은 길어봐야 1년 남짓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끝나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하면서 친구와 완전히 다른 시간대의 세상에서 살게 됐기 때문이다. 시간표가 달라진 그 친구와 교류라고 해봤자 친구가 먼저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 복도에서 서로 마주칠 때마다 짧게 인사를 나누는 게 다였지만 나에게 반갑게 인사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학교 생활에 큰 위안이 됐다.


친구는 나보다 입대는 늦었지만 학부는 나보다 1년 먼저 졸업했다. 졸업하고 나서 친구는 독립 스튜디오를 차리고 나는 스타트업을 전전하면서 삶이 바빠 서로 연락도 거의 못했다. 나는 주로 혼자 사업을 이어가는 친구에게 도움이 될만한 최신 정보를 알게 됐을 때 신이 나서 카톡을 보낸다.


“이 라이브러리 써봤냐? 요새 3D가 핫하더라,

공간은 어떻게 구성하는 게 트렌드더라,

그래픽은 이러던데 너는 어떻게 하고 있냐”


작은 중소기업, 스타트업들을 떠돌며 내가 먼지투성이로 구르며 얻은 값진 정보들을 홀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친구는 알지 못할 거라 생각해 도움이 되고자 자판을 두들겼다. 그런데 막상 연락하면 내 훌륭한 친구는 내가 알려주려고 한 정보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벌써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까지 했다. 오히려 내가 친구에게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곤 한다. 친구에게 정보 수집가로 조련당한 게 아닌가 싶다.


정보 전달 목적 이외에 내게 어떤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됐을 때도 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친구 스튜디오에 놀러 가거나 밥을 먹을 일은 없었지만 가끔 메시지로 대화를 주고받으면 흐릿했던 디자인에 대한 내 가치관이 뚜렷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나서서 친구가 들었을 때 좋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친구의 반응과 질문에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문장들을 얻게 된다.


오늘도 우연히 물어볼 것이 있어서 연락했다가 친구에게 신이 나서 아는 이야기를 막 해주었는데 친구가 잘 들어주어 내 머릿속에 서로 흩어졌던 지식 조각들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통합될 수 있었다.


브런치를 쓰기 시작하면서 친구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어 당장 대화했던 내용을 정리해보다가 문득 나는 왜 10년 동안 이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카톡만 가끔 보낼 뿐인데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중요하게 느껴질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학과에 남자가 몇 명 없었고 같은 재수 경험이 있어서? 동갑이라서? 이 친구가 자기는 축구선수 기성용을 닮았다고 우기지만 실제론 배우 윤제문 씨를 닮은 게 재밌어서?


일단은 학과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그 친구밖에 없어서 서로 친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통된 취미가 우정의 시작이 될 순 있어도 우정을 유지해주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같이 축구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축구하면서 내가 누구를 멋지게 제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실 매번 공을 뺏겨서 그랬다는 불편한 진실을 무시해도 어쨌든 잘 기억이 안 난다.


다시 몇 분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다른 알고리즘을 여러 번 돌렸다. 그러다가 내 무의식 깊은 곳 감추어져 있던 내 본능적 자아를 발견해버렸다. 내 깊은 내면의 자아는 친구를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러움 속에는 친구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친한 친구에게 뜻하지 않은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처음엔 부정했다. 에이 아니지. 어라..... 그런데 갑자기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 때부터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내가 생각할 때 좋은 가치를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디자인을 할 거라고 잘난 척을 엄청 하고 다녔다.(이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 열정이 넘쳤던 나는 이 친구를 억지로 끌고 교내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 당시 1학년이 전시를 여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고 친구는 굳이 내켜하지 않았는데 내 성화에 못 이겨 함께 작고 초라한 전시를 완성해주었다.


한 번은 친구가 다른 동아리에 로고 작업을 의뢰받아 기숙사 침대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었는데 디자인 이렇게 해서 되겠냐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둘 중 누군가 사업을 한다면 그게 친구보다는 나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예상과 달리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스튜디오를 시작해 2022년 현재 벌써 사업을 유지한 지 3년이 넘었다. 나는 스물여덟 살에 졸업하고 지금까지 작은 스타트업을 전전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하는 거라고 매일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와 달리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친구의 도전과 용기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나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동시에 친구처럼 용기 있게 내 일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내가 열등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 열등감이 오히려 친구에게 계속해서 연락하는 원동력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빨리 전시 준비하라고 독촉하고 로고 그렇게 만들어서 되겠냐고 잘난 체하던 스물하나의 내가 되고 싶어서, 아직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 친구에게 과시하고 친구가 고마워하면 그걸로 또 정신 승리하고 싶어서 오늘도 카톡을 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 친구가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온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동문 축구 모임 참가할지 물을 때 정도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친구는 나에 대해 나와 실제로 함께 했던 딱 1년만큼의 유대감, 혹은 그보다 적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거의 영화 미저리 마냥 내가 잘못된 짝사랑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이리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묵묵하게 내 연락에 항상 답변해준 게 더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친구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연락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처음 몇 분 동안엔 고작 내 정신승리를 위해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내세워 친구를 이용한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설사 내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친구가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까 두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열등감 말고도 친구를 정말 있는 그대로 존경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큰 게 확실하다. 그러나 우정에 대한 여러 생각 끝에 친구에 대한 내 열등감을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열등감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열심히 친구를 동경하고 응원할 수 있었다.


내 열등감을 외면하기 위한 정신승리로 친구를 응원한 게 아니라 내 열등감의 존재가 당연한 것이 되어 그 열등감을 나를 위한 원동력으로 바꾸고자 친구를 응원했다. 내 열등감이 당연한 것이 되면 열등감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대신 열등감을 어떻게 표출하는지가 중요하고 잘못된 열등감의 표출에 정당화와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일러 주의]

아래 글부터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6화까지 내용에 대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가 인간관계에서 형성되는 여러 열등감의 종류를 꽤나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드라마 속 주인공 나희도가 열등감을 대하는 자세가 정말 본받을만하다.


드라마에서 김태리 배우가 연기하는 고등학교 펜싱부 소속 나희도의 꿈은 같은 동갑내기 고등학생이지만 펜싱 국가대표이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유림의 라이벌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펜싱을 시작한 동갑내기 나희도와 고유림이지만 나희도는 시작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금메달을 딴 반면 고유림은 같은 대회에서 나희도에게 지고 메달도 따지 못해 자신감을 잃는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두 주인공의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대회마다 메달을 휩쓸던 신동 나희도는 무명의 고등학교 펜싱부 소속, 그마저도 펜싱부가 폐지되어 펜싱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고유림은 메달은 없을지언정 펜싱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 끝에 국가대표 펜싱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여전히 펜싱이 좋은 고등학생 나희도는 그런 국가대표 고유림을 동경하는 동시에 고유림과 자신은 밟고 서 있는 곳이 다르다고 느낀다. 나희도는 고유림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 사이에서 마음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나희도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 고유림을 쿨하게 응원하기로 한다. 고유림은 펜싱을 잘한다. 멋있다. 예쁘다. 나희도가 자신을 객관화하고 고유림을 인정했기 때문에 고유림에 대한 나희도의 열등감은 당연한 것이 됐고 나희도는 고유림 앞에 당당해졌고 나희도의 열등감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꿈이자 동경인 그 애, 내 꿈은 그 애의 라이벌이 되는 것..."

[스물다섯, 스물 하나] 나희도의 독백


고유림은 자신의 눈앞에 다시 나타난 신동 나희도 때문에 어릴 적 열등감이 되살아난다. 안타깝게도 고유림은 나희도와는 달리 열등감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해버린다. 빚더미인 가족에 대한 고유림의 책임감 때문에 고유림의 펜싱에는 사명감이 있다. 그래서 더욱더 1등에 집착한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신동 나희도에게 또다시 메달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어릴 때와는 달리 이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고유림은 무명 선수 나희도에게 느끼는 조급함과 열등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고유림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 나희도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무시해 나희도가 도망치게 하는 것이다. 나희도가 고유림을 동경해 고유림에 대한 모든 걸 흡수하는 만큼 고유림도 나희도에 대한 모든 걸 부정한다 철저하게 무시한다.


열등감 앞에서 쿨하지 못한 금메달리스트 고유림이 나는 마냥 밉지는 않았다. 내가 고유림처럼 행동했던 경험이 알게 모르게 분명 있기 때문이다. 더 최악인 건 고유림은 금메달리스트지만 나는 금메달은커녕 금이빨도 없으면서 고유림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내가 땀을 흘려 성장하는 건 어렵고 그 도전 자체가 두렵지만 남을 깎아내려 내가 성장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쉽고 편하다. 그래서 나도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을 깎아내려 내 현재 처지를 정당화하려고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가 가장 심했는데 내가 뭔가 계산적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 나도 모르게 어쩔 줄을 몰라서 내가 뒤쳐지는 게 무서워서 일종의 방어기제로 열등감을 나쁘게 표출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나는 반 친구들에게 그림을 잘 그린다고 인정받는 게 좋아서 만화를 마구마구 연재해 교실 벽면에 붙여놓곤 했다. 친구들은 내 만화를 보려고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에 바글바글 모이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뿌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반 친구 중 하나가 자기도 만화를 그려서 내 만화 옆에 딱 붙이더라. 어린 나는 친구가 그림을 나보다 훨씬 잘 그려서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신동 나희도를 만난 평범한 고유림이 나와 비슷한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심지어 나는 원래 있던 캐릭터를 패러디하는 정도였는데 이 친구는 자기가 직접 창조한 그림체의 캐릭터들로 더 재미난 스토리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독자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작가의 만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섰고 내 만화 앞에는 점점 친구들이 줄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만화나 친구 만화나 반응은 그게 그거였는데 어린 내 눈엔 내가 사라지는, 나의 죽음과도 같이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더 잘 그리려 하기보다는 못되게도 친구 만화를 괜스레 폄하하고 그거 그림 잘 그리는 거 아니라고 재수 없게 굴었다. 그런데 친구는 오히려 맞다고, 자신보다 내가 더 잘 그린다고 웃으며 말하는 게 아닌가. 친구가 그러니까 갑자기 나도 아니야 너도 잘 그려라고 말하게 되더라. 그러면 또 친구는 칭찬받았다고 되게 고마워했다. 나중엔 둘 다 계속 같이 만화를 그리면서 서로가 서로 꺼 재밌다고 해주기도 하고 내가 친구 만화를 더 열심히 보기도 하며 학년을 잘 마쳤던 것 같다. ( 사실 끝까지 내가 친구보다 잘 그린다고 우겼던 것 같다. )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찌질한 흑역사고 나 때문에 나희도처럼 남몰래 고통받았을 친구에게 미안하다. 쿨하지 못해 진짜 미안했다.


나에 대해, 내 열등감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한 지금의 대학 친구가 오늘 갑자기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더라. 나는 이미 친구가 일종의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여러 이야기 끝에 스타트업 하려면 자신감을 더 가지라고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이제 자신감에 넘치는데 내가 동경하는 이 친구는 훨씬 자신감에 넘칠 자격이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구가 자신감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모를 뿐이지 친구는 어떤 일을 하던 실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충분한 자신감을 이미 갖고 있을 거다.


우리 둘 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내가 평소 좋아하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턴공고가 났다. 나만의 국가대표같이 느껴지는 그런 디자이너들이 있는 곳이었다. 금메달 따는 것 마냥 학과에서 오직 딱 1명만 뽑았는데 분명히 내가 될 수밖에 없고 나여야 한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포트폴리오와 지원서를 냈지만 결국 떨어졌다. 그땐 정말 낙담을 넘어서 도대체 내가 아니면 누구야 하고 화가 잔뜩 났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친구가 뽑혀갔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당연히 순간적으로 열등감이 벅차올랐지만 동시에 억울함이 사라지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아니라면 그 친구가 금메달이지. 바로 친구에게 연락해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엄청 아쉬웠던 건 맞지만 그 친구였기에 내가 삐뚤어지지 않았고 당당해진 열등감을 원동력으로 또 다른 곳에 도전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고맙게도 친구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얻었던 노하우를 지금까지 나에게 공유해주고 있다.


자신의 꿈은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고유림의 라이벌이라고 말한 나희도의 진심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희도가 꿈꾸는 금메달은 둘 중 하나가 반드시 패배해야 얻을 수 있는 금메달이 아니라 둘 중 누가 이기더라도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 멋진 금메달이다. 내가 먼저 찔렀다고 우기고 상대방의 명예를 실추시켜 따낸 금메달이 아닌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승리를 축하하는 명예로운 금메달을 위함이다.


1등이 아니라 멋있게 성장한 친구의 모습이 꿈이기 때문에 누가 금메달을 따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나희도의 꿈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신의 한 수가 아닌가.


내 꿈은 니 라이벌. 축하는 그때 받을게.
- 나희도



그래서 결론은 친구야 계속해서 함께 응원하며 발전하자. 오늘 [스물다섯, 스물하나] 본방 보러 가야 하는데 글이 너무 길어졌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각자의 결핍에 의한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함께 동경하는 세상으로 나아가자. 열등감은 나희도 처럼! 앙가르…플레…. 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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