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전문가가 되려 할까?

공백기의 공상

by 민근


최근 다시 이직시장으로 들어오면서 내 자신의 전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동시에 내가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내 전문성이 내가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왜 전문가가 되고 싶을까? 내 전문성은 어디에 쓰여야 할까.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주인공들은 유머를 포함해 모든 현상을 과학이론으로 빗대어 생각한다. 과학이론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괴짜라고 놀릴 수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 남들은 알지 못하는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오히려 각자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없다면 삶을 개척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전문성이란 뭘까?


사전에서는 전문성을 어떤 분야에 대한 많은 지식, 경험, 기술 등을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는 전문직을 기준으로 전문성을 생각하기도 한다. 의료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직 의사, 법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직 판검사, 변호사 등등


전문성은 전문직업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개개인이 지닌 천부적인 재능까지 나는 전문성으로 여기려고 한다. 전문성이란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갈고닦았을 때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도 갈고닦지 않았다면 전문화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천부적이지만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재능을 원석이라고 표현한다. 원석을 가꾸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물건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꼭 날것의 원석으로 남아있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아직 내가 어떤 물건으로 진화할지 몰라 방향성을 찾고 있다는 가정하에. 내가 원석을 가진지도 모르고 원석에 가치를 더할 방법을 탐색하지 않고 있다면 매우 안타깝다고 할 수밖에.


빅뱅이론의 주인공들이 모든 현상을 과학이론에 빗대는 것은 과학이 그들의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그들의 전문성이고 그 전문성은 그들의 삶을 개척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그래서 빅뱅이론의 주인공들은 모든 삶의 문제를 과학의 시각에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내 전문성은 내가 사고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나의 사고방식은 내 삶을 개척하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된다.


내 전문성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와 힘이 될 수는 있지만 완전한 답, 해결책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가 내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비가 올지 안 올지 알기 위해선 내 디자이너 전문성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땐 날씨예보를 보는 등의 기상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소리 같지만 동시에 굉장히 어려운 발상이다. 왜냐하면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때 기상전문가의 힘을 빌리자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나의 전문성인 디자인이 최고고 디자인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비를 쫄딱 맞고 다닐 거다.


드라마 빅뱅이론에서도 주인공들이 과학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이 매 회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항상 과학적인 사고나 자신이 좋아하는 공상과학 작품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이성에게 관심을 얻어내는 방법이나 사회성에 대한 문제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극 중에선 페니라는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배우 지망생인 페니는 과학은 전혀 모르지만 괴짜 모범생 친구들보다는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상대적으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가냘픈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힘에서 전문가이기도 하다…) 페니는 매번 드라마 속에서 과학으로는 풀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현실 문제에 대해 조언해주며 가끔은 힘으로 문제 해결을 돕는다.


주인공들은 종종 페니의 말을 무시하고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돌려 말하곤 하지만 결국 페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이렇게 상대의 전문성을 인정할 때만이 상대의 도움을 받아 혼자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를 함께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내 전문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기상전문가 없이도 어떻게든 다른 대안으로의 해결책을 찾아 나가긴 할 것 같다. 새로운 형태의 우산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우비를 디자인할 수도 있다. 혹은 비가 내릴 때마다 특징을 모아서 인포그래픽으로 보기 쉽게 기록하고 공유해 사람들에게 날씨에 대한 데이터, 영감을 전달할 수도 있다.


나만의 전문성이 있다면 내 전문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본질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대안으로 내 삶이 무너지지 않게 적응해서 개척할 수 있다. 빅뱅이론 주인공들이 항상 사랑에 실패하고 스타트렉 등 공상과학 작품에서 위안을 얻는 것과 같다.


그래도 앞서 말했듯이 기상전문가를 존중해 그들과 협업한다면 굳이 고생을 하지 않고 비를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잘 모르는 날씨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대신 내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문제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빅뱅이론 주인공들이 페니를 존중하면 때로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과학이론을 연구할 수 있고 페니가 괴짜 친구들을 존중하면 과학의 도움을 받아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결국 내 전문성이 돋보이고 내 전문성이 내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바로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전문성은 과학일 수도 연애기술일 수도 기상학일 수도 환경미화일 수도 있다. 우리 삶에서 어느 하나의 전문분야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물론 대안은 찾겠지만 분명히 우리는 큰 불편함 그 이상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내 전문성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전문성이 없다면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 삶의 문제에 대해 먼저 나만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전문성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전문성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필요한 전문성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신뢰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내 전문성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한 출발점을 내 전문성에서 찾으면 내 전문성이 무엇인데 이건 이걸 할 수 있지만 거기엔 적합하지 않아라는 사고가 가능하다. 그러면 거기에 적합한 전문성은 뭘까라는 탐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해당 전문성을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해 내 전문성과 조합이 좋을지 안 좋을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전문성이 없다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에 내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필요한지도 이야기할 수 없다. 결국 다 도움이 필요하게 되지만 그 도움들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 조차 판단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비판적 시각이 없으니 남의 말에 휘둘리다가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돈으로 전문성을 사는 것과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돈으로 전문적이게 보이는 것을 사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내가 스스로 전문성이 있다면 같은 돈으로 확실한 전문성을 구매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애매모호한 판단으로 전문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것을 사버린다면 그것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가 결국 또 다른 전문성의 계속된 구매로, 의존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내가 전문성을 갖고자 하는 이유는 내 전문성을 그저 인정받아 누군가에게 고용되고자 함이 아니다. 내 전문성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협업하기 위함이다.


내가 내 전문성의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수동적으로 고용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내 전문성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 반드시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내 전문성을 투자할 곳을 찾기 전에 다른 사람들, 다른 기업들이 먼저 나를 자신에게 투자해 달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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