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판단하자
오늘 아침 구글 뉴스피드를 통해 20대 초반의 환경운동가 두 명이 런던 국립 미술관의 반 고흐 작품 한 점에 토마토 수프 같은 걸 뿌리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냐 아니면 예술작품 하나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냐 울부짖다 잡혀갔다는 뉴스를 접했다. 희생양은 반 고흐의 유화(물감 채색에 기름을 사용) 작품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NFT 제왕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_crap)이 벌써 해당 사건에 대한 패러디 작품을 내놨더라.
사건 자체에 대한 의견을 떠나 개인적으로 나는 도덕 정서가 이성의 일부를 지배했던 내 20대 초반이 떠올랐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도 디자이너로서 환경에 관심이 많아 두 가지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를 시각화한 포스터로 대기오염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업이었고 하나는 플라스틱을 직접 업사이클해 만든 케틀벨이라는 운동기구로 나도 건강해지고 지구도 건강해진다는 내용의 작업이었다.
당시 작업들은 국제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그린디자인 전시에 초대되어 국내 그린디자이너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하기도 하는 등 꽤나 장기간 열정을 다해 작업에 임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지금까지는 환경에 대해 스스로 어떤 작업도 하지 못했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뉴스 기사에서 해당 시위를 벌인 사람들이 20대 초반이라고 하길래 내 20대 초반을 떠올렸긴 하지만 초등학생도 세계적인 환경운동을 하는데 나이가 뭐가 중요하겠나.
다만 나 자신이 환경에 대해 너무 겉핧기로 쉽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잦은 것을 경계한다. 정말로 자신이 관심 있는 환경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리서치를 한 후 그와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들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한 것인지. 아니면 환경운동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내가 생각한 이 행동이 너무나 뜻깊고 재미 날것 같아서 인지.
나는 이제와 생각해보면 후자에 가까웠던 자세에서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내가 환경에 대해 말한다는 게 굉장히 신중해지고 그 주제들에 대해 다소 회의적으로 변한 것 같다.
특히 플라스틱을 직접 업사이클하겠노라고 다짐했을 때 플라스틱에 대한 심각성보다는 그러한 문제를 통해 떠올려낸 내 스토리텔링에 심취했다.
플라스틱이 재활용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니 직접 재활용을 하면 될 테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기계를 만들어서 제품을 생산했다. 당시 내가 알기론 국내에서 최초로 그러한 기계를 직접 소규모로 제작한 디자이너 팀에 인턴으로 일하면서 설비를 배우기까지 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줄이고 플라스틱에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는 플라스마이너스라고 지었다.
어쩌면 나는 그 이름 만들기가 재밌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전문적인 재활용 과정과 세척과정과 환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직접 병뚜껑과 세제통 요구르트병 도시락 용기 등 플라스틱을 갈아 녹여 다시 금형에 굳히는 건 내 집 앞마당에서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의미는 좋으나 결국 내 행동이 문제의 원천을 가볍게 넘긴 퍼포먼스일 뿐이라 판단했다.
그 이후 비슷한 환경운동들이 개인적이던 브랜드 마케팅이던 이름 만들기, 겉보기로 쓰이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대부분 병뚜껑을 갈아서 작은 액세서리로 만들곤 하는데 만드는 과정에서도 꽤나 많은 발암물질과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나오며 출처가 불분명한 병뚜껑들을 모아 녹여 굳힌 액세서리의 색소나 불순물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이론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나 스스로 검증해보진 못했고 신뢰할만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직접 금속 가공을 하며 발품을 팔아 기계를 직접 만들어 봤던 경험으로 당시 직접 업사이클 키링을 만드는 와중에도 전문 설비와 공정이 왜 필요한지 알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퍼포먼스에 눈이 멀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업사이클 자체는 환경운동이라는 생각에 수단을 정당화한 것이다.
환경운동과는 연관이 없으나 비전문가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 핵폭발을 일으킬뻔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하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BuOJn03QVo
-데이비드 한, The nuclear boy scout 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
1994년 미국 미시간주의 17살 데이비드 한(David Hahn, The nuclear boy scout)은 보이스카우트 배지를 얻기 위한 업적으로 방사성 물질을 수집하고 직접 창고에서 원자로를 만들려 했으나 자연 방사능의 1000배를 능가하는 방사능을 내뿜게 되어 FBI와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출동시키고 연방 방사능 위험 대응이 시행됐다.
창고의 물질들은 방사성 폐기물로 처리되어 매립되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세금과 환경오염이 초래되었다. 이미 데이비드 한은 자체적으로 설비를 해체하면서 방사성 물질을 일반쓰레기로 버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한은 방사능 피폭에 대한 검사를 받지 않았고 방사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 술과 약물에 의해 39세 사망했다.
데이비드 한, THE NUCLEAR BOY SCOUT 의 이야기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환경운동이나 특정 시위 등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쪽이던 환경을 보호하는 쪽이던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말고 해내라는 말이 참 무섭다. 반 고흐 작품에는 보호 유리가 덮여있어 궁극적으로 작품은 훼손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만약 훼손됐었다면 나는 그야말로 환경운동가가 스스로 핵을 터뜨린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부시절 시위 문화에 대해 디자인하고 싶다고 했을 때 교수님 중 한 분은 시위를 하는 집단은 어떤 집단이던 모두 이익집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지금까지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보편타당한 정서에 호소하는 것인지 내 이익을 위해 보편타당한 것처럼 보이는 정서에 기대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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