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이 씌워진 것은 주로 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가져보고는 싶어

by 민근
ineedspace.omg 공간이 필요하다 외치는 인스타그램 프레임 속 나


프레임이 씌워진 것은 주로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꽤 많은 경우에 프레임(액자)이 씌워진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한다거나 반대로 내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프레임을 씌워버리기도 한다.


그런 방면에서 나 스스로 프레임을 가장 열심히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꿈을 꿀 때이다. 나는 국가 질병 코드에서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기면증'을 가지고 있다. 기면증 하면 갑자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푹 쓰러지는 그런 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경우는 굉장한 중증 환자이고 대부분의 기면증 환자들은 낮 시간에 학교나 회사에서 혹은 밥 먹다가 대화하다가 꾸벅꾸벅 졸아버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낮시간에 엄청난 졸음에 시달리는 것뿐 아니라 밤 시간에는 매일 수면마비에 시달린다. 수면마비란 흔히 말하는 가위눌림을 말한다. 아마 기면증 환자들은 귀신이라거나 가위눌림이라는 말보다는 입면기 환각, 환청이나 램수면 동안의 수면마비등 병원에 가서 알게 된 용어들이 친숙할 거다.


내가 처음 가위에 눌린 건 유치원 때인 것 같은데 그때는 그게 가위인지 칼인지 뭔지도 몰랐다. 그냥 천장을 보고 누워 자면 천장이 아지랑이가 있는 것처럼 왜곡된다거나 뭔가 보일 것 같다거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 당시 어릴 때는 아직 내가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공포스러운 것을 상상력으로 생성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무서운 게 없었을지도...


하지만 그 이후 초등 저학년 시절 공포영화, 토요미스테리극장이나 괴담, 7대 불가사의, UFO 같은 걸 찾아보는 괴짜 취미가 생겨버려 내 입면기 환각과 환청의 작품 수준이 아카데미 감독상 뺨치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면증 환자들은 꿈에 대해 전문가들일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세네 번은 가위에 시달리고 가위에 눌리지 않더라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 매일 꿈을 꾼다. 영화 인셉션이 기면증 환자들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인셉션에 보면 꿈이 여러 단계로 나눠지는데 꿈속의 꿈속의 꿈이 있는 식이다. 실제로 나도 매일 꿈속에서 아 꿈이지 하고 일어나면 또 꿈이다. 3-4단계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고 꿈속에 있는 내가 가위에 눌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꿈을 하도 꾸다 보니 꿈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다. 내 군대 시절에 훈련소에서 만난 둘리처럼 생긴 친구는 꿈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다 불러올 수 있다고 자랑했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남자들끼리 모여있어서 그런지 그 말에 코웃음 치거나 꿈 얘기가 야한 얘기로 변질돼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진지하게 공감했다.


그 친구는 루시드 드림(자각몽, 꿈이라는 걸 인지해서 자신이 꿈을 통제하는 행위)에 대해 엄청나게 훈련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훈련 필요 없었다. 많은 기면증 환자가 그런 능력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게 루시드 드림이라고 하는지도 몰랐다.(참고로 기면증이 현역 군대 안 가도 된다는 걸 전역하고서야 알았다..)


하도 꿈을 꾸다 보니 나 같은 경우는 꿈의 종류가 명확하게 나눠진다. 꿈의 종류라기보다 꿈속 세계가 멀티버스처럼 나눠진다고 하는 게 맞겠다.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 Upside Down이라고 현실 세계가 뒤집힌 공간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약간 뒤틀린 현실인데 꿈속 세계도 비슷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경험한 장소들이 조금씩 뒤틀리거나 변형되어 여러 개의 맵으로 존재한다.


보통은 모든 상황들이 그러한 차원에서 진행되지만 가끔 정말 말도 안 되게 내 경험과 전혀 상관없는 어처구니없는 판타지가 펼쳐지기도 한다. 바로 그럴 때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에 꾼 꿈의 내용은 내가 중국 무술 고수의 한국인 후계자였다. 어릴 때부터 스승으로 모시면서 하나씩 제자들을 이겨 최고의 제자가 되었다. 기면증 환자들의 특징 일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꿈을 꿀 때 오감이 명확하게 살아있다. 주먹 타격감이라던지 불에 데이는 통증이라던지 총에 맞는 감각이라던지.


그렇게 4DX VR이나 아이맥스 돌비 사운드 뺨치게 실감나는 꿈을 꾸다 보면 꿈속의 1인칭 시점이 정말 나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 객관화가 시작된다. 어라 내 어릴 때 그런 기억이 있었나? 내가 무술 고수였나? 나 평범하게 초등학교 다니고 검도장 몇 년 다닌 거밖에 없는데? 뭐지?라고 혼란스러운 순간 꿈속의 무술 고수 1인칭 시점이 쑤우우욱 빠지면서 갑자기 '엄마, 저거 나 맞아?' 하고 물어본다. 1인칭 시점은 이제 텔레비전 소림 고수 다큐멘터리 속 나 같아 보이는 인물을 보고 있는 또 다른 나로 바뀌어있다. 프레임을 씌우고 나는 바깥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내 꿈속에서는 이런 장치들이 많이 쓰인다. 내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몰라도 액자식 구성으로 내가 뭔가 내 것이 아닌 세상이나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이라 느껴지면 쑤우우우욱 액자 밖으로 빠진다. 몇 번 액자 밖으로 빠지다 보면 실제로 현실에서 깨어난다. 깨어난 직후 10분 정도는 기억이 뒤죽박죽 뭐가 진짜 경험이었고 기억인지 현실감각이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내 꿈속의 액자식 프레임 장치가 그림의 떡이라는 말처럼 마찬가지로 작동한다는 생각이 든다. SNS 프레임 속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게 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은 프레임 안의 세상일 뿐 나는 그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내가 직접 올린 게시물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프레임에 가둬진 이상 더 이상 내 경험이 아니다. 뭔가 양념이 첨가되어 현실의 내가 하지 못하거나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이다.


연인관계이던 친구 관계이던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인간관계를 소유하고자 하지만 프레임이 씌워진 순간 집착이 발동하고 시야가 프레임 안으로 좁아진다. 사람을 내 것이라 생각하니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간단하게 프레임을 벗기면 되겠지만 내 사람이 아니라는 또 다른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다.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적당한 크기의 내 취향의 귀여워 보이는 동물은 이름을 지어주고 우리 집에서 납치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고 내가 키워야 하고 수술시켜도 되는 동물로 프레임을 씌우고 그 밖에 있는 동물들은 먹어도 되고 각종 실험을 해도 된다. 결국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내가 꿈과 꿈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것처럼 그 프레임의 경계에서 가치 판단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꿈속에서는 내 의지로 프레임을 씌우고 밖으로 벗어나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것들에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프레임이 씌워져 있고 그 경계엔 자본이 있다. 기본적으로 패키지라는 이름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니지만 돈을 지불하면 나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내 것을 소유할 수 있다. 결국 소유한 이후에는 빈 깡통의 프레임만 남게 되는데 쓰레기로 남은 프레임을 바라보면 내가 실제로 뭔가 소유했긴 했나 하는 허무함이 들 때도 있다.


꿈속에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지 말단을 조금 뒤틀면 된다. 간단하다. 다시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하나의 프레임에 갇혀있거나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 계속 파고 들어간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려면 사지 말단을 뒤트는 정도로 되지가 않는다. 누군가는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려고 사지를 잘라 팔기도 하니까. 오히려 꿈속과 반대로 가만히 있으면 프레임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계속해서 더 이상 튕겨져 나갈 곳이 없을 때까지 사회의 프레임 밖으로 던져진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명함처럼 쓰레기통을 거쳐 소각되는 게 마지막 프레임이 될지도.


누군가는 그것이 각박하다 하겠고 누군가는 그것이 삶이라 하겠다. 전자도 맞고 후자도 맞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동시에 꿈의 전문가인 내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꿈과 현실의 프레임이 반대가 맞다는 것.


개인적으로 꿈 전문가는 지긋지긋하다.

그렇게 밤에 꿈속의 삶을 프레임별로 휘젓고 다니다 보면 뇌가 아프다. 그래서 낮에 졸음이 오는가 보다.


지금은 현실에서도 뜀틀 선수같이 프레임을 넘어 다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순간이다. 프레임이 씌워진 것들은 꿈이나 현실이나 주로 내 것이 아니지만 어쨌든 프레임을 넘나들 방법은 있으니까. 어쩌면 지금 내가 타자를 치고 있는 이 감각도 내가 아직 깨지 못한 꿈속의 프레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꿈에서 깨려고 카페인을 마신다.

밤에 꿈 없이 편히 자는 내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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