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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쌤 Jun 14. 2024

작은 행복의 모자이크

마흔. 드디어 말로만 듣던 ‘불혹’의 시작이다. 그 옛날 공자님께서는 나이 마흔에 비로소 미혹하게 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나의 삶은 아직도 여러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나도 마흔에 이르러 깨닫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상들이 무엇인지 안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 이미 저 멀리 지나간 유행어라지만, 그러면 어쩌랴. 지금의 나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밤늦은 시간 마트에 가는 일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나는 세속에 관심이 없는 고승과 동시에 보물을 찾아 헤매는 모험가이다. 대형 마트의 넓은 통로를 거닐다 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이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 있다. 그러다가도 반값으로 세일하는 회를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짜릿한 기쁨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과 같다. 투명한 포장지 안에서 반짝이는 회 한 접시를 장바구니에 담을 때, 나는 그 작은 성취감에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 옆에서 요즘 새로 나왔다는 소주 한 병을 선택할 때, 오늘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이런 밤이면 세상의 모든 유혹이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선선한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페달을 밟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일 중 하나다.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바람을 맞는 그 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그을린 피부로 공원을 뛰는사람들,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와, 그 옆을 구부정한 자세로 지키는 부모들, 멀리서도 보일 만큼 큰 연을 날리는 아저씨. 이런 모든 작은 요소들이 모여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동안,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또한, 나는 일찍 학교에 도착해 텅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그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만족감을 준다. 교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 조용한 교실의 공기, 책상 위에 놓인 나의 준비물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나에게 평화로움을 준다.     


출근 전 곤하게 자고 있는 딸 아이를 깨우는 순간도 특별하다. (물론 딸 아이는 조금 더 자고 싶어하지만,) 나는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와 불타오르는 듯한 입냄새가 사랑스럽다. 이 작은 의식은 나와 딸 아이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녀의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아침마다 와이프가 타주는 커피 한 잔도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그 커피 한 모금에 잠이 깨고, 와이프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와이프가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커피를 타주는 그 순간,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 작은 커피 한 잔이 나의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게 한다.     


친구들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누는 이야기, 카페에 앉아 괜히 멋있는 척하며 책을 읽는 시간,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나물과 구운 생선이 올라간 아침 식사. 이 모든 작은 순간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행복이다. 나는 이런 소소한 행복들이 매일 조금씩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무해한 유혹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어쩌면 공자님도 유혹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이런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채운 것은 아닐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다른 유혹거리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삶을 이런 작은 행복의 모자이크로 채워가며, 오늘도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그 행복이 얼마나 작고 사소하든지 간에, 그 순간들은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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