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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Nov 20. 2024

음악을 사랑한 작가,

헤세가 말하는 예술의 힘


음악저널 11월호


음악을 사랑한 작가, 헤세가 말하는 예술의 힘


-음악 애호가 헤세

헤르만 헤세는 음악을 사랑하는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 음악을 불어넣었다. 국내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라는 책을 보면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 삶에 음악이 없다면!...(중략) 우리 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몸의 장기 하나를 잃는 것과도 같을 것이며 감각 하나를 반쯤 또는 전부 상실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헤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라사테’, ‘오르간 연주’, ‘3성부 음악’ 심지어 ‘플루트 연주’라는 시도 읽어볼 수 있다. 음악에 대해 깊은 이해와 애정이 글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의 만남

헤르만 헤세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저명한 작곡가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와 1946년에 스위스의 몽트뢰에서 만난 적이 있다. 헤세는 이미 싯다르타, 데미안을 썼고,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만남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문화의 회복을 염원한 두 사람의 마음과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슈트라우스는 이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그 후 헤세의 시에 영감을 받은 몇몇 가곡들을 작곡했다. 특히 1948년 작곡된 "Vier letzte Lieder"(4개의 마지막 노래)의 첫 번째 곡 "Frühling"에서 슈트라우스는 헤세의 시를 사용하였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봄이 왔을 때의 기쁨을 담은 이 음악을 통해, 두 예술가의 아름 다운 만남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데미안’과 음악

청소년 필독서로 널리 알려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20대 중반에 처음 접했다. 이후로 줄 곧 의지해온 것 같다. 험난한 군악대 생활과 외로운 유학 생활에 걸쳐 꽤 많은 책을 읽었지 만, 여러 번 꺼내 읽은 단 하나의 책은 ’데미안‘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음악과 무슨 관련 이 있을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을 깊이 탐구하거나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데미안’에서 음악의 바람이 쉼 없이 분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데미안에서 음악적 경험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싱클레어가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 우스를 통해 음악과 교감하는 장면들이 있다. 소설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두세 번 시내를 오가는 길에 어느 교외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 소리를 들었다. 그곳에 머물지는 않았다. 다음번에 지나갈 때 그 소리를 또 들었다. 그리고 바흐가 연주된다는 것을 알았다....” p.130
“극도로 개인적인 의지와 끈질김의 표현이어서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서 연주하는 사람은 이 음악에 보물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얻듯이 보물을 얻어 내려고 구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애쓰고 있다고. 나는 기교면에서 는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바로 이런 영혼의 표현은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이해했으며 음악적인 것을 내 안의 자명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p.130

이 장면에서 피스토리우스의 연주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수 단으로 묘사된다. 오르간 소리는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에 더 깊이 들어가게 하고, 영적인 성숙을 돕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 음악 팬이오? 음악 때문에 얼빠지는 게 난 구역질 나는데.” 나는 겁먹고 물러서지 않았다.
“벌써 선생님 음악을 들었습니다. 저 바깥에 있는 교회에서요.” 내가 말했다. “아무튼 귀찮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어쩌면 무얼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뭔가 특별한 것,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 말을 전혀 듣고 싶지 않으신 것 같군요! 저는 선생님께 귀 기울이는데요, 교회에서 말입니다.”... p.132-133

음악 팬을 외면하려는 음악가에게 싱클레어는 한 발 더 다가선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비슷 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부분에서 멈춰 서게 될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음악 안에는 분명 나를 위한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그러나 그냥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것 같은거요. 아주 절대적인 음악, 한 인간이 천국과 지옥을 흔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음악요. 음악이 정말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늘 도덕적인 것에 시달렸거든요....” p. 133

주인공이 언급하는 "아주 절대적인 음악"은 도덕적 판단을 초월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음악이 감정과 영혼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며, 도덕적인 규범이나 사회적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음악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나직하게 내리는 가을비조차도 아름답고 고요하게, 축일답게 엄숙하고도 즐거운 음악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바깥 세계가 나의 내면세계와 어울려 순수한 화음을 냈다. 그다음은 영혼의 축제일이었다. 그다음은 살아 볼만했다....” p. 183

자연과 내면이 "순수한 화음"을 이루는 순간이다. 이 구절에서 헤세는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중요한 깨달음을 음악적 은유로 던진다. 또한 "영혼의 축제일"이라 는 표현을 통해, 주인공이 삶의 새로운 가치를 경험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데미안에서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집합이 아니다. 스스로를 바라보고 인간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진 것이다. 특히, 싱클레어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피스토리우스의 오르간 소리를 통해 헤세는 음악의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문학, 음악 그리고 예술


우리는 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모두 다르겠지만 헤세의 지혜를 빌려보면 조금은 명확해진다. 예술은 우리 내면과 외부 세계의 균형을 맞춰준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볼 만한 것으로 만든다. 책도 음악도 처음엔 그저 좋아서 읽고 듣는다. 그런데 즐거움 안에 숨겨진 특별한 힘을 발견한다면, 삶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여전히 나는 책도 읽고 음악도 듣는다. 그리고 둘 다 점점 좋아진다. 나도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언젠가 그 특별한 힘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글 안일구


추천음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4개의 마지막 노래 Strauss: Vier letzte Lieder


추천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김윤미 옮김, (주)북하우스 퍼블리셔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주)민음사

음악저널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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