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주해 본 일본 사람들
2010년 7월 19일
#일본으로가는배위에서
7시 30분에 후쿠오카로 가는 뉴카멜리아호 탑승이 시작됐다. 10시 30분에 항해를 시작해 한 숨 자고 나면, 일본에 도착한다. 뉴카멜리아호의 일반식 좌석은 따로 없다. 가장 저렴한 자리를 끊은 점도 있지만, 객실로 들어가면 하나의 큰 방이 나오고, 그 양 옆 벽에 사물함이 놓여 있다. 각자 그 한 부분을 자리 잡는 식이다. 누워 잠을 잘 수 있게끔 이불과 베개가 한켠에 놓여있다.
객실에 들어가서 사물함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일찍 들어왔는지, 객실 안엔 아직 혼자다. 잠시 갑판 위로 올라갔다. 부산 앞바다의 소금기 가득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잠시 부산 항만을 바라본다. 몇몇의 갈매기만이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고 있다. 새우깡 한 봉지를 사 오지 못한 게 아쉽다. 갑판 위에 나처럼 일찍 들어온 승객 몇 명만이 서있다.
#주정뱅이아저씨
다시 객실 방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과 달리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내가 있는 벽면에는 한국 사람 세 명이 더 자리를 잡았고, 반대편에는 일본 아저씨들 여러 명이 쭉 자리를 잡았다. 사물함이 부족했는지 내가 있는 벽면으로도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방안에 일본어가 넘쳐흐른다. 일본 아저씨들이 흥에 취하셨는지 하이톤의 목소리가 오간다. 알고 보니 전부 한 팀이고, 단체로 한국 관광을 오신 분들이었다. 김이 잔뜩 들어있는 박스와 그 밖의 기념품이 가득 찬 쇼핑백이 가득하다. 내 옆에 자리를 잡은 한국인은 모두 형들인데, 두 명은 친구로 같이 여행 가는 중이고, 한 명은 혼자 자전거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어제가 복날이어서, 치킨 사 왔거든요. 같이 드실래요?”
“아 네, 그런데 제가 따로 사 온 게 없어 얻어먹기만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같이 먹어요.”
두 명의 형들이 어제가 복날이라며 가져온 치킨과 맥주를 같이 먹자고 나와 다른 형을 같이 불렀다. 나는 따로 가져온 것이 없었기에 미안했지만, 그래도 사양 말라는 말에 치킨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반대편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일본 아저씨 중 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일본어로 말을 하셔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치킨과 맥주를 보시고 말하시는 게, 술을 같이 먹자고 하신 듯하였다. 옆에 있던 아저씨들도 같이 동조하시면서, 갑자기 사케(잔술)와 과자 몇 봉지를 꺼내신다.
한 일본 아저씨가 아까 처음 말을 걸어온 아저씨의 티셔츠를 가리키며 여기 적힌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아는지 물어왔다. 일본어로 되어 있는 글이어서 잘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크게 웃으며 답해주신다.
‘주정뱅이’
방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옆에 있던 형이 통역해주니 나도 그제야 웃음이 터졌다. 주정뱅이란 글자가 크게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라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일본 아저씨의 당당함에도 감탄했다.
아저씨들이 꺼내신 술과 안주 사이에 치킨을 옮겨 다 같이 빙 둘러앉았다. 어느 순간 객실은 시끌벅적한 술자리로 변했다. 아저씨들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크게 웃음을 나눈다. 정확히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즐거웠다. 아저씨들이 일본 술도 먹어보라며 자신들이 가져온 술을 아낌없이 건네주신다. 대화는 정확히 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호탕한 일본 아저씨들이라 그런지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상당히 재밌었다.
#배위의동방신기
술에 취해 객실 밖으로 나가셨던 주정뱅이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밖으로 부르셨다. 급한 손짓으로 부르시길래 어떤 큰 일인지 약간의 걱정을 하고 나갔다.
“동방신기! 4인조 동방신기가 여기 있어!”
일본어로 말하는 주정뱅이 아저씨의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동방신기’라는 말은 똑똑히 들었다. 복도에서 옆 방에 있던 일본인 여자에게 나를 보여주며 말하고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일본인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저씨 옆에 서있었다. 주정뱅이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시려고 이러시는 건지…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둘이서 일본어로 몇 마디 나누더니, 일본인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객실로 들어갔다. 나는 아저씨에게 ‘이게 무슨 일이에요?’라는 표정을 최대한 지었다. 그런 나에게 크게 웃으며 “다이죠부, 다이죠부.”라고만 답할 뿐이었다.
나와 주정뱅이 아저씨는 다시 객실로 들어와 사람들과 술을 한 모금씩 했다. 몇 분 뒤, 객실 문이 열리더니, 아까 복도에서 봤던 일본인 여자가 고개를 내밀어 왔다. 주정뱅이 아저씨가 크게 웃으며 들어오란 손짓을 하신다. 그러자 세 명의 일본인이 객실로 들어왔다. 세 명의 형들을 포함해 나 또한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주정뱅이 아저씨는 우리와 그 세 명의 일본인을 서로 인사시키더니, 옆에 있던 아저씨들 모두 끌고 밖으로 나가셨다. 나가실 때 우리를 보고 말했던 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놀아야지, 아저씨들이 있어봐야 재미없어. 재밌게 놀아! 술은 다 마셔도 좋다.”
그렇게 7명이 객실 안에 덩그러니 놓였다. 서로 뻘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서로 이름부터 밝혔다. 각자 이름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바꿔주며 말을 터갔다. 형들도 일본어 실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마찬가지로 일본인 친구들도 한국어 실력 좋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사람과 이렇게 대화해보는 것이 처음이란다. 세 명이서 3박 4일로 부산 여행을 왔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우리는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몸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였다. 신기하게도 무슨 말인지 서로 이해를 하며 대화가 되었다.
#Take010
2010년 7월 20일 새벽.
배에 있는 긴상? 아저씨랑 한 잔 했는데, 얼떨결에 일본 현지 언어를 제대로 들어본다.
그리고 같이 만나게 된 세 명의 한국 형님들? 형님들이지. 거기에 옆 옆방에 있던, 유키코, 아야미, 모에상. 한국사람과 얘기하는 건 처음이라던데, 나도 일본 사람이랑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라, 서로 말도 안 통하고. 그래도 뭐 말은 안 통해도 사람은 통한다고, 몸짓 발짓 다 써가면서 대화는 되더라.
한국의 게임이랑 일본의 게임을 같이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369도 알아먹고, 제로게임? 제로게임을 똑같이 하던데, 신기하기도 하고.
하여튼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