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거짓말인 것만 같은 이 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한 문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아닌 직설적인 한 마디가 필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내 세상이 변했을 뿐이지.
아직까지도 그 소식을 접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외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갔던 날이었다. 그전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가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미루고 미루던 병문안이었다.
그런데 위독하다는 말을 듣기도 전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일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놓치면 영영 후회할 것만 같은 그런 예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병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아, 진짜구나.
"할머니한테 한 마디 해, 할머니 아직 들을 수 있으니까…"
엄마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신호 같았다. 절대 울지는 말아야지, 다짐을 했지만 나오는 건 왜 눈물뿐인 건지.
야속하게도 그날도 출근을 해야 했다. 그 사실을 아는 엄마는 빨리 가라고 재촉을 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일을 뺄까,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출근하기 위해 병실을 나섰다. 너무 울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그래, 밥은 먹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같이 나온 동생과 식당으로 갔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나름은 평화로웠다.
"휴대폰, 보지 마."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동생은 밥 다 먹을 때까지는 보지 않는 게 좋을 거라 했다. 그 말에도 기어코 휴대폰을 봤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 내 세상이, 무너졌다.
이제부터는 온전한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내 모든 첫걸음을, 아무 조건 없이 응원해주던 든든한 지원군이 없다. 갓 스물이 된, 성인이 된 손녀의 첫 도전임에도 모두 응원하던 무조건적인 지지자가 없다. 그 덕분에 나는 그동안 모든 도전들을 하면서도 당당했고, 용기가 넘쳤다.
하지만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에, 그 당당함과 용기도 많이 잃었다. 넘치는 용기로 써 내려가던 글도, 써지지 않았다.
게다가 근 1년 간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운 날이 많았고, 슬픈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 탓을 하며 울기도 했다. 외할머니께서 가장 아끼는 손녀라는 걸 모두가 알기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울 수 없었다. 나마저 운다면, 정말 말 그대로 눈물바다가 될 게 눈에 선했다.
이제는 충분히 슬퍼했다. 더 이상 슬프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 답하겠지만. 하지만 다시 일어설 준비는 된 것 같다. 충분히 눈물을 흘렸기에, 눈물 흘리는 것만이 떠난 사람을 기리는 방법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끝이 실패라는 결과가 되더라도, 떳떳할 수 있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곁에 없는 그가 이유도 없이 나를 자랑스러워했던 그 마음에, 이유를 붙여주고 싶다.
다시 일어서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 왜 이렇게나 많은 건지. 포기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일어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하지만 그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내 마음은 괜찮은지, 정말 준비가 됐는지 수없이 확인해야만 한다. 또다시 주저앉지 않기 위해. 또 주저앉는다면, 그땐 정말 절망적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