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치과의사의 틀니 이야기 2
흔들리지 않는다던 그 치아도 검진하였을 때 힘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치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상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뽑지 않으면 안 되냐며 저를 그윽이 쳐다보십니다.
진단을 마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난 뒤 환자분과 보호자분들께 그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드립니다. 내용으로는 틀니를 만들기 위해 발치해야 하는 치아들과 그 상태 및 틀니를 만드는 과정을 알려드립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경우와 같이 이를 빼야 하는 말씀을 드리면 꼭 물어보시는 것이 "다 빼야 하나요?"와 "이 치아는 좀 튼튼한 것 같은데 남길 수는 없나요?"입니다. 특히 치료 계획 상 이를 모두 뽑고 완전틀니를 해야 하는 분들이 마지막 이 하나라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저희 입장에서 이미 맞물리는 치아도 없고 기능도 하지 못하는 치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열에 아홉은 저런 의미의 질문을 하십니다. 아마도 말씀을 따로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셔도 왜 그러시는지 짐작은 갑니다. 하나라도 내 치아가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이 받아들이기에 상당히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이가 아예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몇 개라도 남아있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십니다. 특히 완전틀니를 만들기 위해 치아를 다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은 더 많은 충격을 받으시는 게 제가 설명을 하면서도 느껴집니다.
아직 저로서는 계속 그 심정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얼마나 괴로우실지, 얼마나 큰 상실감이 오는지는 보여주시는 모습, 질문, 말씀으로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치료하는 의사마저 몰라주면 너무 외로운 길이라고 생각하여 늘 잊지 않으려 하고, 주의하려고 합니다.
심리적인 충격에는 몇 가지 구성하는 항목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내 입안에 나의 치아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 치아가 입술 등의 주변 조직을 지탱해주지 못해 주름지고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 입을 벌릴 때 치아가 없는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고 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짜증. 그리고 씹을 수 없어서 먹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 씹지 못해 음식들을 잘라먹어야 하고 이러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싫어 따로 식사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시는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너무도 크게 그 사실을 못 견디시는 분들도 계시고 현재 상황을 끊임없이 부정하시는 분들, 나름대로 희망을 계속 놓지 않으시는 분들, 더 이상 내원하시지 않고 빠질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분들 등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모습들 또한 다양합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상실감을 짐작하고 섣불리 괜찮을 거라 이야기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은 진료 결과를 위해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붙잡아두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나은 결과를 위해 발치가 필요함을 지치지 않고 설명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왔습니다. 몇 번을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반복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라고 봅니다.
입 안에 내 치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힘든 일입니다. 씹는 즐거움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외모도 더 나이가 들어 보일 수 있기에 그 누구라도 꺼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치아가 기능을 하건 하지 않건 그냥 내 입에서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좋기에 뽑기 싫어하십니다.
"마지막 남은 이가 일을 할 수 있던 말건 뽑기 싫은데 어떻게 안되나?"
여러 번 이를 뽑아야 한다는 설명을 드렸지만 뽑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렇게 말씀하신 할아버님의 모습도 제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과 이야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남겨두고 싶은 그 마지막 치아는 단순히 치아 하나의 의미보다 더 많은 걸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치아는 아마도 젊었을 때 환하게 웃으면 보이던 고른 치아들을 대표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치아가 반대편 잇몸을 찌르던, 흔들려서 불편하건, 고름이 주위에서 나오건 상관없이 그냥 데리고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DHLEE.Prosthodontis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