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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LEE Prosthodontist Sep 28. 2021

02. 마지막 이 하나는 남기고 싶은데

어느 치과의사의 틀니 이야기 2

02. 마지막 이 하나는 남기고 싶은데



부분 틀니를 걸 수 없을 정도로 남은 치아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신 한 할머님이 계셨습니다. 이제 문제가 있는 치아들을 다 뽑고 완전 틀니를 만드셔야 한다고 보호자 분과 함께 치료 계획을 설명드렸는데, 무기력하게 앉아계시던 할머님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습니다.


"살릴 만한 건 없을까? 오른쪽 위는 안 흔들리는데..." 


흔들리지 않는다던 그 치아도 검진하였을 때 힘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치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상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뽑지 않으면 안 되냐며 저를 그윽이 쳐다보십니다. 


진단을 마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난 뒤 환자분과 보호자분들께 그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드립니다. 내용으로는 틀니를 만들기 위해 발치해야 하는 치아들과 그 상태 및 틀니를 만드는 과정을 알려드립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경우와 같이 이를 빼야 하는 말씀을 드리면 꼭 물어보시는 것이 "다 빼야 하나요?"와 "이 치아는 좀 튼튼한 것 같은데 남길 수는 없나요?"입니다. 특히 치료 계획 상 이를 모두 뽑고 완전틀니를 해야 하는 분들이 마지막 이 하나라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저희 입장에서 이미 맞물리는 치아도 없고 기능도 하지 못하는 치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열에 아홉은 저런 의미의 질문을 하십니다. 아마도 말씀을 따로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셔도 왜 그러시는지 짐작은 갑니다. 하나라도 내 치아가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이 받아들이기에 상당히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이가 아예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몇 개라도 남아있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십니다. 특히 완전틀니를 만들기 위해 치아를 다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은 더 많은 충격을 받으시는 게 제가 설명을 하면서도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이미 덜렁거리는 혹은 맞물리는 치아도 없어 기능도 하지 못하는 치아를 떠나보내기 싫어하십니다. 발치가 싫어 치료 자체를 미루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누구나 나의 이를 뽑아야 하는 순간을 싫어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마지막 남은 치아 하나의 의미는 좀 더 특별한 듯합니다. 






실제로 완전틀니를 만드는 것에 대한 교과서에서는 치아를 모두 상실하게 되는 혹은 이미 상실하신 환자분들의 심리적인  충격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충격은 치아가 모두 빠지는 경우 극심하며 이에 대한 치과의사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적혀있습니다. 


아직 저로서는 계속 그 심정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얼마나 괴로우실지, 얼마나 큰 상실감이 오는지는 보여주시는 모습, 질문, 말씀으로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치료하는 의사마저 몰라주면 너무 외로운 길이라고 생각하여 늘 잊지 않으려 하고, 주의하려고 합니다. 


심리적인 충격에는 몇 가지 구성하는 항목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내 입안에 나의 치아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 치아가 입술 등의 주변 조직을 지탱해주지 못해 주름지고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 입을 벌릴 때 치아가 없는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고 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짜증. 그리고 씹을 수 없어서 먹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 씹지 못해 음식들을 잘라먹어야 하고 이러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싫어 따로 식사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시는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너무도 크게 그 사실을 못 견디시는 분들도 계시고 현재 상황을 끊임없이 부정하시는 분들, 나름대로 희망을 계속 놓지 않으시는 분들, 더 이상 내원하시지 않고 빠질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분들 등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모습들 또한 다양합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상실감을 짐작하고 섣불리 괜찮을 거라 이야기하지 않는 것, 보다 나은 진료 결과를 위해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붙잡아두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나은 결과를 위해 발치가 필요함을 지치지 않고 설명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왔습니다. 몇 번을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반복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라고 봅니다. 






입 안에 내 치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힘든 일입니다. 씹는 즐거움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외모도 더 나이가 들어 보일 수 있기에 그 누구라도 꺼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치아가 기능을 하건 하지 않건 그냥 내 입에서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좋기에 뽑기 싫어하십니다. 


"마지막 남은 이가 일을 할 수 있던 말건 뽑기 싫은데 어떻게 안되나?"


여러 번 이를 뽑아야 한다는 설명을 드렸지만 뽑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렇게 말씀하신 할아버님의 모습도 제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과 이야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남겨두고 싶은 그 마지막 치아는 단순히 치아 하나의 의미보다 더 많은 걸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치아는 아마도 젊었을 때 환하게 웃으면 보이던 고른 치아들을 대표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치아가 반대편 잇몸을 찌르던, 흔들려서 불편하건, 고름이 주위에서 나오건 상관없이 그냥 데리고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DHLEE.Prosthodontis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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