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좌·우파 프레임은 무엇을 설명하지 못하는가

by 변재욱


연재 ③


정치 논쟁은 대부분

보수냐 진보냐,

좌파냐 우파냐로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묻지 않는다.


과연 이 프레임이

지금의 정치 구조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가.


1. 보수와 진보 — 원래는 “태도”의 차이였다


보수와 진보는

선악의 구분이 아니었다.


사회 변화에 대해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할 것인가의 차이였다.


보수는 안정성을 중시하고

진보는 개혁을 시도한다.


정상적인 정치에서

이 둘은 충돌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이 구분이 도덕 개념으로 변형되었을 때 생긴다.


한국 현대사의 격렬한 경험 속에서

보수·진보는 정책 태도가 아니라

역사적 위치와 도덕적 서사가 되었다.


그 순간,

보수 = 기득권

진보 = 정의

라는 도식이 형성된다.


여기서 태도의 차이는

도덕성의 차이로 치환된다.


2. 좌파와 우파 — 원래는 “정책 수단”의 차이였다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프랑스 혁명기 의회 좌석 배치에서 시작됐지만,

내용적으로는 매우 실용적이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좌파:

시장과 개인의 실패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우파:

국가 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과 개인의 자율을 우선해야 한다


이건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좌·우는 국가 개입의 범위를 둘러싼 정책 스펙트럼이었다.


좌파식 접근법도 실패할 수 있고

우파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분단과 냉전의 경험 속에서

이러한 좌·우 정책 수단과 접근방법의 차이가

정체성 차이로 변질되었다.


3. 보수·진보, 좌파·우파 프레임의 공통된 실패


이제 정리하자.


이 두 프레임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정치현상 설명에 실패했다.


보수·진보는 도덕화되었고,

좌파·우파는 정체성화되었다.

그 와중에 정치의 핵심 질문을 지워버렸다.


그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책임지는가

실패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보수·진보는

도덕 판단으로 이 질문을 지웠고,

좌파·우파는

정체성 싸움으로 이 질문을 지웠다.


이 네 단어는 이제

존재의 표시로만 작동한다.


“나는 보수다.”

“나는 진보다.”

“나는 좌파다.”

“나는 우파다.”


이 말은

정책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위치 선언, 정체성 선언이 되었다.


문제는 보수가 틀렸느냐, 진보가 옳으냐가 아니다.

문제는 좌파냐, 우파냐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묶이며,

과연 누가 책임을 지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치적 입장을 가르는 언어가 아니라,

권력의 작동을 설명하는 언어다.

바로 리퍼블릭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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