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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Oct 14. 2022

고양이 이삿짐센터

양모 삼천 지견

  고양이들이 하숙집처럼 이용하던 투명 하우스를 또 강제 이주시켜야 한다. 그동안 차고에서 지내던 반려견 두강의 집을 뒷마당에 짓기로 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없어 결국 냥이들의 투명 하우스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다용도실 바깥 출입문으로 드나들 수 있어 여러모로 편했는데 아쉽다.


 어디가 좋을까? 냥이들은 드나들기 편해야 하고, 나는 비가 와도 밥 주기 편한 곳이라야 한다. 특히 반려견 두강이 눈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두강은 고양이에 대한 질투가 엄청 강하다. 밥을 잘 먹지 않아 “ 니 밥 노랑이 줘야겠다. 노랑아~~”라고 했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화를 내면서 밥을 먹어 치웠다. 내가 고양이 밥을 주려고 가까이 가거나 심지어 ‘ 고양이, 노랑이, 야옹이’라고 말 만해도 눈에 불을 켜고 찾으며 짖는다. 오후 5시는 두강이 잔디밭에서 노는 시간이다. 뒷마당 고양이들이 피할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기척을 내며 와야 한다. 녀석들은 두강이 줄에 매여 있으면 도망도 안 갈 정도로 대담해졌다. 냥이들은  지들이 매우 민첩해서 안 잡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두강은 생각보다  빨라 아슬아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텃밭의 방아잎 밑이나 가지밭에 숨어 있다가 거의 잡힐뻔했다.


 두강이 마당에 사는 순간부터 위험한 동거를 해야 한다. 서로가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고양이들이 밥이나 맘 편히 먹을 수 있을 런지 그것도 걱정이다.    

 

  지난겨울.  길고양이 3마리가 찾아왔다.

 웬 떡이 아니라 웬 고양이! 그것도 셋씩이나. 처음엔 가끔 밥 먹으러 오더니 이젠 뒷마당을 놀이터 삼아 지낸다. 낮잠도 자고, 잔디밭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고양이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걱정도 늘어간다. 햇살은 따뜻하지만 아직 추위가 매섭다. 두동의 칼바람과 비를 막아줄 쉼터가 필요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뒷마당을 떠나지 않고 내 집에 살았으면 해서 유혹의 손길을 뻗치려는 것이다. 아직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 녀석들이라 밥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주고 있는데 비라도 오면 밥 먹을 곳이 마땅찮다.


 겨우내 비가 오지 않아 그럭저럭 넘겼지만 봄이 오면 비가 잦을 테지. 100m 아래에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고, 비 피할 곳도, 밥 주는 사람도 있어 굳이 비를 맞으며 여기까지 올 것 같지 않다. 아예 여기서 살 수 있도록 고양이 집을 만들기로  했다. 저들의 안녕이 아니라 곁에 두고 싶은 나를 위해서. 평소 동물농장이나 유튜브에서 본 건 있어 창고에 가서 분리수거를 위해 쌓아 둔 박스 중 적당한 크기를 골라왔다.


 ‘ 내 너희를 가엽게 여겨 손수 집을 만드노니 ’ 아래위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이고, 비가 오면 젖을세라 비닐을 덮고 바닥에도 습기를 막기 위해 비닐과 수건을 두 겹씩  펼쳐두었다.

 ‘ 길고양이 세계에서 쉽게 보기 힘든 박 스텔이다. 요놈들아’ ‘ 이 안락함에 길들여져 너희들은 이제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으흐흐'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고양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박스 안에 들어가길 기다렸지만 한 놈도 들어가질 않는다. 며칠을 인내심을 갖고 쳐다봐도 ‘밥만 먹고 가지요~’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박스만 보면 사죽을 못쓰고 들어가던데’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집고양이한테나 해당되는 말인가 보다.     

  

  낯선 고양이가 박스텔 부근을 어슬렁거린다. 하얀 바탕에 검정 무늬 고양이다. ‘주인장 계슈’ 하는 듯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대다가 두식이와 맞닥트려 눈싸움을 한다. 두식이가 이겼다. 자기는 안 들어가면서 남 주기는 싫은가 보다. 낯선 고양이는 하릴없이 떠난다.


며칠 후엔 애꾸눈 잭 같이 생긴 놈이 왔다. 생김새만 무서운 게 아니라 포스 또한 장난 아니다. 두리와 신경전을 벌이더니 온 집안을 한 바퀴 돌고 대담하게 앞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모델하우스도 아닌데 주인들은 안 들어가고 구경꾼들만 모인다. ‘ 뭐지, 이러다가 온 동네 고양이들 다 오는 거 아냐’ 살짝 걱정이 된다.

 더 이상의 손님은 사절이다.      


                        애꾸눈 잭

      

 냥이들이 제대로 사용해 보기도 전에 비바람에 박스가 젖어 버렸다. 좀 더 튼튼한 집이 필요했다. 쇼핑몰을 뒤져 화이트 하우스도, 청기와 집도 아닌 투명 하우스를 찾았다. 겨울이 오면 필요해질 보온이 되는 박스도 함께 주문했다. 고양이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낮은 담 너머 풀밭에 집을 두기로 했다. 흙바닥의 습기와 냉기를 막기 위해 시멘트 블록을 놓고 그 위에 두꺼운 비닐과 담요까지 깔아 두니 5성급 호텔은 아니지만 꽤 쓸만하다.      


  봄비가 잦아지면서 냥이들의 투명 하우스에 문제가 생겼다. 황토 땅 위라 징검다리를 놓아도 질퍽거려 밥 주러 가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매번 장화를 신을 수도 없고 해서 강제 이주를 결심했다. 이주보상비는 발에 흙 한 알갱이 안 묻힐 수 있는 쾌적함과 이사 날의 짜장면 대신 소고기 캔이다. 어느새 나와 익숙해진 냥이들은 다용도실 문만 열면 쪼르르 달려오고, 심지어 만져달라고 배를 보이며 발라당 드러누워 애교까지 시전 한다. 아이들은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내 속마음을 읽었나 보다.     


  3번째 강제이주가 시작됐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창고 옆 낮은 담 위로 이사하기로 한다. 마구잡이로 나 있는 풀을 정리하고 흙을 고른 다음 블록을 나른다. 벌써 3번째 벽돌 나르기다. 바닥에 깔아준 블록은 보도블록용이라 아주 무거워 한 장씩밖에 들 수 없다. 16장을 깔아야 하니 혼자 힘으론 버거워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남편은 투명 하우스를 제자리에 놓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켰다. 저지르는 건 내가 하고 뒷감당은 남편이 해주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맙다.  


  가까이 두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시작했다가 나야말로 녀석들의 무한 매력에 꽁꽁 묶여 버렸다. 이전엔 집을 비워도 반려견 두강이만 신경 쓰면 되는데 지금은 냥이들 밥 걱정, 잠자리 걱정까지 한다. 비바람이 불면 밤새 안녕한지, 여름 한낮에는 파라솔을 펼쳐 아이들이 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문밖에 미리 와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밥 먼저 챙기게 된다. 녀석들이 놀다가 늦게 오면 밥 먹다가도 뛰쳐나간다.


살아 있는 생명과 인연을 맺는 일은 섣불리 시작하기엔 어깨는  무겁고  지갑은 가볍다. 머지않아  통장이  텅장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방적인 베풂은 어디에도 없다. 동물은 물론  텃밭의 푸성귀도, 화분의 꽃들도 그렇지 않은가.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면 그들은  내게 먹거리와  기쁨을  준다.

  나는 고양이에게 밥과 관심을 주고, 고양이는 내게 미소와 작은 행복을 준다.

아이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웃게 되고  우리 부부의 대화가  많아지는 건 덤이다.

부디 성의를 봐서라도 냥님들이 옮긴  투명 하우스를 마구마구 사용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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