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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Mar 07. 2024

오늘은 묵은지 고등어조림 어떠세요

  비가 내리려나 눈이 오시려나, 끄물끄물한 날씨에 어른들은 허리 아프고 무릎도 시리다 하셨다. 어느새 내 입에서도 앉았다 일어서면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날은 따뜻한 아랫목에 깔아 둔 이불 밑에서 갓 삶은 고구마를 후후 불어 가며 먹어야 제맛인데.


  작년 봄까지 밀양 얼음골 사과를 먹었다. 여름 한 철을 건너뛰고 지난가을 지인들에게 선물 들어온 사과를 겨우 내내 하루 한 알씩 아껴 먹었다. 설 지난 후에 마트에서 봉지 사과를 몇 번 사다 먹었는데 빛깔부터 푸르뎅뎅한 것이 싱겁고 맛이 없어 얼음골로 사과를 사러 가자고 집을 나섰다.   

  

 얼음골로 들어서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년 같으면 가게마다 사과 상자를 즐비하게 쌓아 두고 있을 텐데 대부분의 가판대가 텅 비어 있었다. 단골집은 위쪽이라 제법 더 올라가야 했다. 헐! 없다. 사과도 주인장도. 전화를 걸어보니 진즉에 다 팔리고 없단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한참을 내려오니 마침 사과를 선별하여 상자에 담는 가게가 보였다. 다행히 적당한 크기가 있었다. 가격은 10kg에 10만 원, 작년에 7만 원 하던 것보다 알이 작았다.

     

  제법 먼 거리임에도 사과를 살 때마다 직접 가는 이유가 있다. 바람을 쐬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있지만 덤을 얻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름값은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흠집이 있는 사과를 받아 왔다. 이번엔 허탕이다. 살짝 아쉽지만 맛있는 사과를 생각보다 싸게 샀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사과 가격이 비싼 이유는 사과꽃이 피는 시기에 냉해를 입었고 여름 장마가 길어 사과 수확량이 줄어서 그렇다고 했다. 적당한 비와 햇살과 기온이 도와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농군이라도 어쩔 수 없다.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없음을 실감하고 씁쓸함을 느꼈다. 산을 내려오는 길목에는 ‘수입 사과로 사과 농장 다 죽는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과수농가도 소비자도 울상이다. 앞으로도 농산물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임기응변식 대책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할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오일장에 들렀다. 가끔 재미 삼아 오일장을 들르곤 했는데 못 가본 지 여러 달이 지나  아침에 두둑하게 현금을 챙겨 나섰다. 오일장이란 게 그렇듯 막상 가보면 이것저것 사게 된다. 비 올 것 같은 날씨에다 기온도 낮아서 그런지 시장이 썰렁했다. 2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고등어다. 옆지기는 생선 중 유독 고등어를 좋아한다. 생선을 파는 가게가 여럿 있지만 나는 매번 같은 집에서만 산다. 나이 지긋한 중년 부부가 장날마다 고등어, 갈치, 오징어를 판다. 이 집 고등어가 다른 집에 비해 실하고 싱싱하다. 생선을 다듬는 쪽은 아저씨다. 어찌나 손이 빠른지 거짓말 좀 보태면 손이 안 보일 정도다. 특유의 손놀림으로 깨끗하게 장만해 주는 고등어를 구워 먹으면 마트에서 파는 것과 확연히 맛 차이가 난다. 한 마리에 칠천 원, 두 마리 만 원, 다섯 마리에 만 원짜리가 있었다. 칠천 원짜리는 둘이 먹기에 크다. 두 마리에 만 원 하는 놈으로 네 마리를 샀다. 한 마리는 조림용으로 주문했더니 아저씨는 오래 기다렸다며 칠천 원짜리 큰 놈으로 바꿔주었다. 그래, 이게 시장 오는 맛이다. 오는 길에 싱싱한 미역, 봄동, 손두부, 도토리 묵 이것저것 담다 보니 장바구니 한 가득이다. 주전부리용 강정과 튀김도 샀다. 최애 간식 호떡을 베어 물고 차에 오르니 몇 만 원에 얻은 풍족함으로 부자가 된 듯했다.  

    

  구이용 고등어는 잘 씻어 냉동실로 보내고 싱싱할 때 조림부터 먼저 해 먹기로 했다. 오늘 메뉴는 ‘묵은지 고등어조림’ 작년엔 김장을 하지 않아 재작년에 담근 김치통을 꺼냈다. 김치찌개보다 된장찌개를 즐겨 먹기에 한동안 묵은 김치통은 열어 보지 않았다. 묵은지로 하는 요리는 김치가 생명인데. 흠흠, 일단 푹 익은 묵은지의 비주얼에 군내도 나지 않았다. 한쪽 떼어 맛을 보니 ‘뭔데, 왜 이리 맛있는 거야’ 잘 익어 새콤한 맛이 당장이라도 밥 한 공기는 뚝딱할 정도였다.


  자, 이제 비린내 일도 없는 묵은지 고등어조림을 만들 차례다. 궁금한 건 뭐든지 유선생님에게 물어봐. 같은 재료라도 만드는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스승님을 골라 참고로 하고 있다. 뚝딱뚝딱, 보글보글 어느새 고등어조림이 완성됐다. 이 정도면 합격. 팔아도 손색이 없는 맛이다. 사실 요리 관련 글은 맛이 없으면 글로 남기지 않는다. 어떻게 될지 몰라 사진만 몇 장 찍어 두었다가 맛이 별로거나 글쓰기 귀찮아지면 내버려 둔다. 오늘 이 글은 묵은지와 환상적인 조합을 이뤄낸 고등어에게 바친다.   

  

 묵은지 고등어조림     


재료

생물 고등어 2마리, 묵은지 반포기, 무 300g, 대파 1대, 양파 반 개, 청양고추 2개

고등어 밑간

맛술 2큰술, 식초 1큰술, 국간장 1큰술

양념장

고춧가루 3큰술, 고추장, 1큰술, 된장 1큰술, 맛술 2큰술, 설탕 2큰술, 진간장 3큰술, 다진 마늘 2큰술, 다진 생강(생강술, 생강청) 1/2큰술, 후춧가루 조금     

만드는 법     

1) 고등어를 깨끗이 씻어 등에 칼집을 넣는다.

2) 그릇에 담고 밑간을 한다. 식초는 비린 맛도 없애고 고등어 살을 탱탱하게 해 준다.

3) 무는 도톰하게 대파는 어슷, 고추는 송송 썰어두고 김치는 속을 털어낸다.

4) 냄비에 무와 김치를 담고 물 1리터를 부어 무에 젓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익힌다.

5) 4에 밑간 한 고등어를 물로 한번 헹군 후 냄비에 넣는다.

6) 5에 양념장과 양파를 올려 끓으면 중 약불에 뭉근하게 조린다. 이때 냄비뚜껑은 덮지 않는다. 간간히 국물을 끼얹어 준다.

7) 어느 정도 조려지면 대파와 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불을 끈다.   

   




*위 조리법은 유튜브  '딸을 위한 레시피'를 참고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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