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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Jul 24. 2024

secret 어린 왕자 9

고수처럼 이별하기

K


어떤 꽃은 피자마자 지기도 해.

사랑도 인생도 계절도 그럴 때가 있지. 

인생을 법칙 따위로 줄 세우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뒤죽박죽이라도  거기엔 다 의미가 있는 법이거든.


왕자의 이별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이별이 떠올랐지

그날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난 날이었어.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아침은 변함없이 찾아왔어.

왕자가 이별의 날 화산을 정성스럽게 청소한 것처럼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무도 아우성치지 않았어.

삶은 여전히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꿈틀거릴 뿐이었어.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뽀얐게 삶았고

냉장고 청소를 했지.

옷장의 옷들은 박스에 넣었고 반지와 목걸이는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어.


K


이별을 생각했다면 

왕자가 그랬던 것처럼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는 거야.

고수들은 원래 그래.

이별은 고수들이 즐기는 최고의 시크릿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내 인생의 먼지를 털고

부유물을 흔들어 보내고

무엇이 남았는지 말끔한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그 뒤

나는 시를 썼지.

정확하게 말하면 쓰다 말다 했어.

다시 또 시를 쓸까 말까 생각 중인데

주도권은 시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

계절이 바뀌면 또 쓰게 될 거야.

고수처럼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은

삶의 주도권을 가질 자격이 있지 않겠어?


K


사실 어린 왕자의 이별은 

아저씨의 이별 이야기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해.

어쩌면 그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대의 이별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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