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게 덕질하기
K
아저씨를 만나지 못한 어제는 책을 읽었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였는데,
투명 인간이 되는 실험을 하다가 그만 피부만 투명해지는 이야기가 나오더군.
피부가 투명해지니까 실핏줄이 보이고
오줌보에 오줌이 차는 것이 보이고
뇌가 뇌수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이고
심장이 퉁탕퉁탕 튀는 것이 보인다는 거야.
아무튼 박사는 거울을 유심히 보며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내부에 흥미를 갖게 되는 부분이 나오거든.
이렇게 모든 것이 보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눈에 보이면 나는 나를 알게 되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무척 흥미롭게 읽은 것은 사실이야.
K
며칠 전 아저씨는 어린 왕자와 장미가 다퉜던 일을 내게 말해 주었어.
어린 왕자는 장미를 꽤 좋아했던 것 같아.
그래서 장미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었는데
여전히 장미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대.
제멋대로 날아온 씨앗이
내 별에서 허락 없이 꽃이 피더니,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그런 꽃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
꽃은 허영심이 있었나 봐.
호랑이 발톱은 무섭지 않지만 바람은 질색했다는 거야.
감히 해님과 맞먹을 수 있다고 약간 거만스럽게 말하면서
저녁에는 둥근 덮개를 씌워달라고 했대.
어린 왕자는 꽃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꽃에서 나는 향기와 꽃의 말이 달랐거든.
결국 이것이 이별의 원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어.
어느 날, 어린 왕자는 아저씨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해.
"꽃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걸. 꽃이 하는 말은 절대 귀담아들으면 안 돼."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해.
"발톱 이야기에 너무 약이 올랐거든......"
왕자는 꽃을 떠나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었던 거야.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후회할 짓을 한 건 맞아.
모르면 물어봤어야지.
K
세상에는 아주 간단한 진리가 있는데
그건
모르면서 안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심지어 내 몸속도, 내 마음도,
잘 모를 때가 있잖아.
안다고 전부 안 것도 아니고.
그럴 땐 나일지라도 나에게 물어봐야 해.
꽃들에겐 더욱더 물어야 해.
그런데 K
가끔은 내 마음도 모르는 것이 있대.
물어도 물어도 대답이 없을 때도 있어.
그럴 때 나는 기다려.
기다리는 동안, 아름다운 결말을 상상하지.
질문하고 기다리는 이 시간을
'코끼리 한걸음'이라고 이름을 붙였어.
아무튼, 어린 왕자가 빨리 꽃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