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만의 가시
K
어제는,
책을 읽다가 그만 책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어.
마침, 어린 왕자가 아저씨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장면이었지.
왕자는,
꽃은 수백만 년 전부터 가시를 만들어 왔다고 했어.
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양은 여전히 꽃을 먹었고,
그럼에도 꽃은 계속 가시를 만들었다는 거야.
가시를 만드는 일이 꽃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래.
어린 왕자의 격분한 표정 앞에서,
절절매고 있을 아저씨를 떠올리니,
조금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어.
K
나는 선인장을 좋아해.
작고 당찬 가시.
선인장의 매력은 바로 그 가시에 있지.
하지만, 모든 가시가 같은 가시는 아니야.
어린 왕자가 말한 장미의 가시는,
어쩐지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그런 비릿한 이중성을 싫어해.
빨간 입술에 이슬을 품고,
파리하고 작은 가시를 잎새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기면서,
"내 매력은 이 가시거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사실,
장미의 가시는 줄기 껍질의 변형일 뿐이야.
먹히는 것을 방지하는 강한 무기가 되기엔,
너무 여리고 부드러워.
가시의 목적이 정말로 "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면,
수백만 년 동안, 장미는 쓸데없는 노력을 했는지도 몰라.
어떤 가시는,
너무 뻔뻔할 정도로 무식해.
캐멀손의 가시는 9cm나 돼.
그런 가시 앞에서라면, 굶주린 짐승도 쉽게 다가서지 못할 거야.
산사나무의 가시도 그렇지.
몸 자체인 나뭇가지를 변형시켜, 강인한 무기로 만들었거든.
진짜 무기는 숨기지 않아야 해. 그래야 확실히 먹히지 않아.
하지만,
내 마음을 빼앗은 건
장미의 가시도, 캐멀손의 가시도 아닌, 선인장의 가시야.
선인장의 가시는 찰랑이던 잎이 변한 거야.
가시는,
차갑게 빛나는 흔들리지 않는 언어.
가시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의지의 메시지.
포기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아는 지혜.
K
가시를 만들 거라면,
장미의 가시가 아니라, 선인장의 가시를 선택하길 바라.
파랗던 잎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막과 같은 삶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지키는 길이 될 거야.
젊은 K,
아저씨는 아직 어린 왕자에게
이 말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언젠가, 조용히 편지를 쓰겠지.
“수백만 년이 걸리더라도, 너만의 가시를 만들어야 한다.”
"너를 잃지 않을 사랑스러운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대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어.
"두려워하지 마.
그대가 내딛는 한 걸음마다,
가시는 빛이 되어 그대를 지켜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