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마주하기
K
여고시절
부모님은 가난했으나, 나는 가난한 줄을 몰랐어.
나에겐 다락방이 있었기 때문인데, 다락방은 나의 왕국이었거든.
다락방에는 작은 창이 있었고 창밖에는 별이 빛났지.
30촉 전등아래서 <어린 왕자>를 읽다
일기장이 젖도록 펑펑 울던 날이 생각나.
어린 왕자 6번에서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이었어.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
K
어느 날,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는 슬플 때 해지는 걸 봐.
어떤 날은 마흔네 번이나 해가 지는 걸 봤어."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뭐라고 대답하겠어?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해는 하루에 한 번만 진다는 걸.
그런데 마흔네 번이나 해지는 걸 봤다는 게 말이 돼?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걸 위로할 수 없어.
"거짓말!"
"뻥치는 녀석!"
아마 난 이렇게 외쳤을 거야.
하지만 아저씨는 다르게 말했어.
"마흔네 번이나 해가 지는 걸 본 날은 얼마나 슬펐던 거니?"
아, 누군가의 슬픔을 먼저 바라본 아저씨.
그날 이후, 난 종종 아저씨를 떠올렸어.
슬픔이 강물처럼 넘쳐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때면,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오늘은 얼마나 슬펐던 거니?"
나의 슬픔을 이해하는 아저씨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슬픔이 두렵지 않았거든.
K
그대에게도 그런 날이 있을 거야.
보아뱀 속에 갇힌 듯,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날.
그럴 땐,
그대의 슬픔을 이해하는 아저씨를 기억해.
슬픔은 우리를 집어삼키는 바오바브나무가 아니야.
슬픔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보아뱀이 아니야.
슬픔을 밀어내지 마.
슬픔을 감추지 마.
그저 바라봐.
그 슬픔이 네 곁에 앉아도 괜찮아.
슬픔을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것이
그대로의 그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해.
언젠가,
그대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단단한 빛이 남아 있음을 보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