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의 비밀-
K
"이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니?"
어느 날, 아저씨는 내게 한 장의 그림을 보여주며 물었어.
아저씨가 여섯 살 때 그린 그림이래.
누가 봐도 ‘모자’잖아. 그렇지?
그런데 아저씨의 설명을 듣지 않고,
이 그림을 보아뱀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있긴 있었어.
우연히 사막에서 만난 어린 왕자는 단번에 알아봤다는 거야.
그리고 사실은… 나도 알아봤어.
아저씨가 보여준 그림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는 걸.
자세히 보면, 모자 끝에 보아뱀의 눈이 보이거든.
나는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보아뱀과 코끼리 중, 누가 더 놀랐을까?’
"그 후 보아뱀은 어떻게 됐어요? 코끼리는 어떻게 됐어요?"
나는 궁금해서 아저씨에게 물었지.
그때 아저씨는 내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어.
"그것이 바로 네게 전해주고 싶은 진짜 비밀이야.
한 걸음의 비밀이지."
아저씨의 말을 듣자,
나의 상상은 다시 시작되었어.
나는 두 장의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았지.
변해버린 현실에 놀라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코끼리.
그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한 걸음 앞으로."
그것만이 살 길이었겠지.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해?
코끼리의 방향을 보니,
보아뱀에게는 새드엔딩이 맞을 것 같아.
"보아뱀의 명복을 빌자."
K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
원하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깜깜한 암흑 속에 갇혀버린 적이 있었어.
출구도 없고,
오던 길도 사라졌어.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지.
그저 막막해서,
숨이 막혀오는 순간.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떠올렸어.
그리고 기도했어.
"딱 한 걸음. 한 걸음만 앞으로."
보아뱀 속의 코끼리도
코끼리 걸음으로 딱 한 걸음 내디뎌보기로 했대.
오던 길처럼……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해 봐.
보아뱀은 코끼리를 가둘 수 없어.
두려움은 코끼리를 삼킬 수 없어.
K
내가 코끼리 한 걸음에 대해 말했을 때,
아저씨는 비로소 빙그레 웃었어.
그리고 조용히 말했지.
"한 걸음은 시작이란다."
그건 K와 나의 시작이기도 해.
너와 함께 하게 되어 너무 기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