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K
'내 마음의 보석상자'라는 노래가 있었어. 해바라기가 불렀지.
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지 서로를
가슴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햇빛에 타는 향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기에
더 높게 빛나는 꿈을 사랑했었지.
이 노래를 끝까지 불러봐도 제목과 다르게 상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상자 이야기를 해주었어.
어린 왕자는 아저씨에게 다짜고짜 양을 그려달라고 했대.
사막에서 죽을 둥 살 둥 비행기를 고치고 있는 아저씨에게 말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친절한 사람이기 때문에
코끼리를 그리던 솜씨로 양을 그려줬다는 거야.
그런데 어린 왕자는
이 양은 이래서 싫고, 저 양은 저래서 싫고,
늙어서 싫고, 숫양이라 싫고, 어쩌고 저쩌고 요구사항이 끝도 없었다는 거야.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이해해도 이런 경우 지치고 짜증 날 수 있어.
사람이라면 말이야. 특히 사막에서 비행기를 고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야.
아저씨는 마침내 상자 하나를 그려주며
이 안에 너 있다. 아니 아니, 이 안에 네 양이 있다.라고 했더니
어린 왕자는 그제야 자기가 원하는 양이 상자 안에 있다며 좋아했대.
K도 그런 상자를 가지고 싶다고?
사실 상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어.
마음은 상자 속에 있는 것이고, 상자는 마음에 있지.
그러니까 상자와 마음은 같은 거야.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상자 안에 있으니까.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이런 secret 같지 않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모든 상자가 어린 왕자의 상자 같지는 않아.
때로 상자 안을 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껄끄러울 때도 있으니까.
이별과 상처.
실패와 좌절.
이루지 못한 꿈 조각과 얼룩진 기억들이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거나,
아직 모르는 것들이 잡동사니처럼 상자에 가득할 수 있어.
보아뱀 속에 갇힌 코끼리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서 말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나의 마음과 만나는 일을 피하지 말라고 했어,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라는 구호보다
솔직하게 나의 상자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secret의 첫걸음이라고 말했어.
그래야 정말 소중한 것을 내 마음의 상자에 담을 수 있다면서 말이야.
K
어린 왕자는 상자에 담을 것을 찾기 위해 지구에 왔다고 했어.
나는 아저씨의 말대로
상자에 무엇인가를 담는 것보다
역시 상자를 비우는 일이 먼저인 것 같아.
상자를 비운다는 건 아마도
보아뱀 속에 있던 코끼리가 마침내
한걸음 옮기는 일과 같을 거야.
K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 꿈과 사랑이 가득한 날,
예쁜 상자를 가슴에 품고
나는 초원으로 갈 거야.
초원은 내가 꿈꾸는 곳이거든.
우리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의 암호 '코끼리'
잊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