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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나는 라면 박스를 발로 걷어찼다.
여자는 날마다 빈 박스를 여기저기 늘어놓는다.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종이박스를 한 번 더 내리쳤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여자가 늘어놓는 건 모조리 쓰레기다.
아니면 썩어서 코를 쥐고 버려야 할 음식물이다.

정작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사람은 여자인 듯했다.

“선생님!”
째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내 등을 할퀴었다.

나는 대꾸 없이 돌아보았다.
여자는 한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박스들을 한쪽에 가지런히 세워놓았다.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다 우뚝 섰다.

남자는 말없이, 종이박스와 씨름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도 엉겁결에 일어나 그를 마주 보았다.

“누구세요?”
남자가 여자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여보!”
여자가 울듯이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정말 울고 싶어서 악을 쓴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은, ‘저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그의 뇌 속을 알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의도하는지, 무엇이 엉켰는지—

여자가 몇 장의 사진을 남자의 발아래 뿌렸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은 있었으나

결혼사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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