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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임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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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Feb 25. 2019

[임신일기 #8] 태아보험이 도대체 뭐길래

종합 보험? 실비 보험? 선택 특약인데 고정부가?

태아 보험은

기본적인 실비나 암보험 같은 것에 태아를 위한 특약이 들어간 보험이다. 태어난 이후 선천이상 보장, 신생아를 위한 보장(인큐베이터 등), 산모를 위한 보장 등 특약이 있는데 이런 특약을 선택해서 가입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태아, 신생아 관련 특약이 종료되고 어린이 보험으로 유지된다. 내가 구체적으로 알아본 보험은 H보험, K보험, M보험, 우체국 보험이었다. 만기가 30세, 100세 있고 1년 주기 갱신이거나 10년 주기 갱신이다. 임신 주기 22주 전에 가입해야 한다.




2018.12.06


임신 확정을 받고 병원에 있는 보험 설계사를 통해 H/K/M 보험사의 태아 보험 상품을 소개받았다. 3사의 어린이 보험 태아 특약 상품들의 보장 내역을 표로 정리해 둔 페이지가 맨 앞장에 위치했고, 그 뒤에 각 보험사마다 만기 기간, 보장 내역, 갱신 주기 등 조금 더 상세하게 적힌 페이지가 1~2페이지 정도씩 덧붙여져 있었다. 맨 앞 페이지 표 제일 위에는 각 보험사마다 월 납입 보험료를 수기로 적어 노란색 형광펜으로 강조해두었다. 설계사는 보험사마다 아주 미세하게 차이가 있으나 내용은 거의 같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월 납입금이 가장 적은 보험사를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이 설계사가 적어준 곳 중에는 K보험이 가장 저렴(2018년 12월 기준)했다. 추천받은 상품 중에는 원하는 보장 내역이나 특약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각 보험회사에서 정해놓은 것 중에 고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보험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가입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자료를 받아 들고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보장 내역을 꼼꼼히 따져보니 이름은 태아 보험이지만, 산모와 태어난 아이를 위한 보험이었다. 뱃속에 아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 드는 것이 태아 보험인 것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에 문제가 생겨서 산모가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은 보장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기형아 검사를 했을 때 위험군 소견을 받아서 비싼 추가 검사를 받게 되면 보험료 지급을 받는다거나, 조산이나 유산 위험이 있어서 특별한 치료를 해야 할 경우에 보험료 지급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가입 시기가 늦어져 기형아 고위험군 진단을 받으면 보험 가입이 거절된다. 태아일 때 미리 특약을 골라 들어 놓으면 선천적으로 이상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 얼마를 지급해 준다거나,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를 지급해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보험 설계사들은 종합보험(실비+암 보험 종합)으로 무조건 추천을 한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면 평균적으로 월 납입금이 대략 12~13만 원 정도였고, 가입을 하면 카시트, 유모차, 범퍼 침대, 아기띠 등의 제품이나 현금을 사은품으로 준다고 적혀있다. 어떤 곳은 몇 십만 원 상당의 유모차 사은품 지급!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하는 곳도 있었다. 대략 3~4개월 정도의 월 납입금에 해당하는 사은품을 준다는 것인가?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법적으로 그런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해서 사은품 지급 가능한 최대 금액 내에서 주는 것일 테지. 하지만 직접 설계사와 연락을 해보면 금액이 달라진다. 8만 원대 초반에서 9만 원대 초중반까지 설계사마다 부르는 월 납입금 차이가 있다. 30년 동안 비싼 보험금을 납입을 해야 하는데, 이 것이 과연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나는 내 보험도 매우 보수적으로 드는 성향이다. 애초에 병원비 명목으로 따로 돈을 모으고, 보험은 목돈 지출이 필요할 암이나 큰 수술비, 입원비 같은 항목만 별도로 들었다. 지금까지 생각해보면 30년이 넘게 보험비를 내고 있지만 실비 보험료를 수령한 경우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서른이 넘고 나서 암보험도 들었지만 2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는 동안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이다. 건강한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보험이 정말 쓸데없이 돈이 나가는 항목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보험'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정말 어쩌다 생길지 모르는 큰 사고를 대비해서 최소한으로 지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를 위한 보험도 정말 필요한 항목만 최소한으로 들고 싶은데, 잘 알려진 보험사에서 공개한 태아 보험들은 내 마음에 차는 상품이 없었다.


폭풍 검색을 하는 동안에 알게 된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태아 보장을 하지 않는 이름만 태아 보험에 대해 문제제기가 되어 왔고, 금융위에서 여러 번 보험사에 시정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봄에는 실제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실손 보험료까지 태아인 기간에도 납입해야 한다는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었지만 특별한 대책이 발표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을 들어야 한다니 눈 앞이 깜깜하다.


인터넷으로 미친 듯이 찾아보기 전에는 태아를 위한 단독 실비(진료비+수술비 같은 것 보장 상품) 가입이 가능한지 몰랐다. 단독 실비 상품을 검색하면 잘 검색이 되지도 않는다. 각 보험사에 들어가서 깊숙이 숨겨둔 단독 실비를 일일이 검색해서 비교해야만 겨우 알 수 있었다. 대강 내용을 파악한 후, 몇 군데에 상담 신청을 남겨두었다. 단독 실비만 들고 싶다고 하니 몇 설계사는 자신은 가입 진행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보험을 설계하시는 지인 분께 문의를 했더니 단독 실비는 수수료가 별로 안 떨어져서 설계사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가입시켜 준다고 하는 설계사도 보장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단독 실비는 어느 보험사나 다 똑같으니 보험료 싼 데에 그냥 들라고 했다.




2018.12.20


2주간 보험 검색과 보험 설계사들과의 통화, 메신저 상의 실랑이로 많이 지쳤다. 진료 예약이 잡혀서 병원을 다시 찾았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에 상주한 보험 설계사 분께 태아 실비 보험 가입에 대해 문의했다. 나는 사은품 필요 없고 정말 딱 필요한 보장 내역에 대한 보험만 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 설계사는 모든 보험회사 보장 내용이 다 똑같으니 제일 싼 곳으로 그냥 가입하라며 재촉했다.



Q : "아니, 그 다 똑같은 보장 내용이 어떤 건가요?"
A : "실비가 다 그런 것 아닌가요. 입원비, 통원 치료비 이런 거죠."



구체적인 보장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고 귀찮은 듯 대했다. 그러면서 실비 보험을 들 바에는 종합 보험 드는 게 든든하다면서 H보험이 가장 좋다고 소문이 나 있었는데, 그건 과거 기준이고 지금은 K보험이 보험료가 가장 저렴하고 보장 내용은 같으니 K보험 종합보험으로 가입하라고 다시 권했다. 보험 설계를 하고 상품을 권할 때에는 정확한 보장 내역과 상품 설명서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실비 보험이니 태아를 위한 실비 상품에 대한 설명서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설계사는 내용은 다 똑같고 K가 보험료가 가장 저렴하니 본인은 K보험을 추천하겠다며 해당 상품 자료를 출력해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가 나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모두가 다 똑같이 보장내역을 맞춰놓고 보험료까지 10만 원대로 비슷할 수 있을까? 이 건 보험사들끼리 담합을 한 것 아닌가? 가입하면 카시트를 준다니, 유모차를 준다니, 현금 얼마를 준다니 하는데 몇 십만 원짜리 가입 선물을 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이 남는다는 뜻인가? 화가 났다.



집으로 돌아와 또다시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하다가 우체국 무배당 꿈나무 보험 발견했다.


우체국 무배당 꿈나무 보험(2018년 7월까지 내용)

아래의 내용은 2018년 7월까지의 상품 내용이다. 20세 만기에 23주 이내 태아의 경우 선천이상 특약을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입한 순간부터 3년 동안 특약이 유지되고 특약 기간 동안 성별에 따라 조금만 더 납입하면 된다. 남자아이 기준으로 월 21,500원이면 선천이상에 대한 대비와 암 등 종합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우체국 무배당꿈나무 보험(2018년 7월 이전까지의 상품 내용)


2018년 8월에 우체국에서 대대적인 어린이 상품 개편에 대한 홍보를 했던 흔적을 발견했다. 여러 곳에서 무배당 자녀지킴이 보험에 대해 기사를 냈는데, 이 상품 개편의 취지는 갈수록 출산 연령이 높아지는 현실에 맞춰 산모와 신생아를 특별히 더 보장하는 것이었다. 출산 중에 문제가 생긴 산모를 보장하고, 미숙아 인큐베이터 비용 등 신생아를 보장할 수 있다.



우체국 무배당자녀지킴이 보험(2018년 8월 이후 내용)

2018년 8월부터 무배당 우체국자녀지킴이보험으로 이름 변경되었다. 우체국자녀지킴이보험은 자녀 출생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꼭 필요한 암, 뇌출혈, 중대질병 진단, 장해, 입원, 수술, 골절 및 깁스 등 각종 일상생활 위험까지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어린이 종합보험이다. 기존에는 20세 만기였던 것을 30세 만기로 늘렸고 한 가지였던 특약을 세 가지로 늘렸다.


우체국 무배당자녀지킴이 보험(2018년 8월 이후 상품 내용)


우체국 무배당자녀지킴이 보험 보장 내용(2018년 8월 이후)


구체적인 보장 내용이 바뀌면서 주계약 보험료도 과거에 비해 올랐다. 몇 가지 항목에 대한 보험 지급액이 조금 상향 조절되었다고 했다. 주 계약을 위한 월 납입금은 25,600원, 선천이상 특약 1,500원, 신생아 보장 특약 5,400원, 산모보장 특약 8,400원으로 총 월 납입금은 40,900원이다. 이 보험도 통원 치료비를 제외한 종합보험인데 사설 보험사의 종합 보험에 비해 절반 이상 납입금이 저렴하다.




2018.12.28


통원 치료비를 실비로 지급받으려면, 예를 들어 1회 진료 당 15,000원 이상 진료비가 청구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조건이 있다. 나는 보통 감기나 급체로 인한 복통 같은 것으로 병원을 방문을 했는데, 이 경우 몇 천 원 선에서 진료가 끝나기 때문에 실비 보험료를 지급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편에게 물었더니 평생을 단 한 번도 자신의 진료 때문에 보험료를 지급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 아이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통원 치료비를 위해 월 납입금을 2배 이상 낼 필요가 있나? 차라리 그 돈을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우체국 보험으로 확 기울었다. 산모보장 특약을 제외한 나머지 특약을 선택하고 싶었다.


결심을 하자마자 가입을 위해 남편과 함께 집 근처 우체국을 찾았다. 우체국 직원 분이 다시 한번 상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특약 세 가지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서 나는 선천이상 특약, 신생아 보장 특약 2가지를 선택했다. 간단히 서류를 작성하고 보험 가입을 진행하는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상품 설명서에는 선택 특약이라고 적혀 있지만 셋 중에 하나라도 특약을 선택하려면 무조건 세 가지를 모두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시스템에서 산모보장 특약을 선택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직원 분이 결국 중앙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겠다고 해 잠시 기다렸다. 결론은 고정부가로 설정되어 있어서 낱개의 특약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약이란?

여러 부가적인 목적을 보장하는 계약

의무부가 특약 - 주 계약에 의무적으로 결합

선택 특약 - 보장을 추가하기 위해 가입자가 선택 가능한 특약

제도적 특약 - 보험료 부담 없이 가입자의 편의를 위한 특약


선택 특약은 말 그대로 선택이 가능해야 하는데, 특약을 추가할 것이냐 말 것이냐만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또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선뜻 보험을 가입할 수 없어 멈추고 우체국을 나왔다.


우리 부부는 다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왔다. 꼭 태아 보험을 들어야 할까? 부당하게 설계된 보험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들어야 하는 걸까? 혹시라도 태어날 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보험 상품들을 보니 분해서 화가 치밀었다. 만약 우리가 태아 보험을 가입한다면 우체국 무배당자녀지킴이 보험을 들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부당함을 호소하고 답변이라도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 신문고에 민원을 넣기로 했다. 민원 진행 사항은 다음 일기에 자세하게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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